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Jun 26. 2019

회사원과 소비

고민 없이 쿠팡을 한다는 것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이 우리 집으로 배달되는 세상이다.

몇 천 원 대, 혹은 1~2만 원 대의 상품들도 꽤 쓸 만한 것들이 많아졌고 

오늘 주문을 하면 내일 배송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야금야금 모아 온 쇼핑 리스트의 가격이 어느덧 몇 십만 원에 도달했다.

아직 월급날은 꽤 많이 남았는데 내 통장의 잔고는 벌써부터 가뭄이다.

     

프리랜서 시절에는 무언가를 사려면 쇼핑리스트에 넣어놓고 며칠을 고민하곤 했다.     


‘이게 꼭 필요할까?’

‘이걸 사지 않으면 생활비가 얼마가 남는데...’

‘이거 없어도 나 잘 살았는데 꼭 사야 할까’     


이렇게 수백 번 머릿속에서 고민이 오가고 

그러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도 사고 싶은 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서야 나는 결제를 하곤 했었다.     


나의 물욕보다 당장의 생계가 급할 때였다.

이번 달에 일을 해도 다음 달에 돈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많았고, 

약속한 날짜에 반드시 돈이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하루하루 아껴가며, 반드시 꼭 필요한 생필품이 아니라면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가둬두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회사원이 되니 이번 달에 일하면 다음 달 내 통장에는 반드시 돈이 들어온다.

언제 월급을 줄 거라고 계약서에 명시도 되어 있다.      


그러니 봉인해뒀던 소비를 드넓은 초원에 천방지축 뛰어노는 망아지처럼 풀어두게 된다.

사고 싶은 물건을 큰 고민 없이 사고 큰 고민 없이 결제한다.

왜냐면 다음 달에 반드시 돈이 들어올 테니까.     


'다음 달에 반드시 들어오는 돈'은 나의 여행 스타일도 바꿔줬다.

나는 가난한 여행을 했던 여행자였고 30분 정도 많게는 1시간 정도 거리는 충분히 걸어 다니던 여행자였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이 좋았고 내 발로 꾹꾹 밟으며 찾아낸 장소들이 뿌듯했으니까.


몇 주 전 다녀온 교토 여행에서는 택시를 제법 이용했다.

교토역에서 호텔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였는데 나는 택시 승차장에 줄을 서고 택시를 잡아타 호텔로 이동했다.


걸으면 한 시간 정도, 버스로 30분 정도의 음식점을 찾아갈 때도 나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엔 호기롭게 버스를 탔으나 반대방향을 탄 덕분에 길을 잃었고 아무리 구글맵을 봐도 

도저히 찾지 못하겠어서 (사실은 덥고 배고프고지쳐서) 결국 택시를 타고 이동했었다

택시요금은 한국돈으로 1만 2천 원 정도였는데 한국에서도 꽤 나오는 택시비임에도  

나는 이 정도의 택시비는 나의 시간과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전통식 스키야끼가 먹고 싶어서 혼자 5만 원 가까이하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1~2만 원대의 스키야끼 음식점이 있었음에도 아침 일찍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아침잠을 포기하고 예약했거나 그냥 그 음식을 안 먹었을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의 재미보단 호텔의 안락함을 선택하는 것도

(나는 주로 숙소에서 돈을 아끼는 편이다. 어차피 잠만 잘 곳이기 때문에가 이유였지만 

반드시 청결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곳을 선택하곤 했었다.)

호텔에 머물며 룸서비스를 시켜본 것도

고급 위스키 바에 들어가 한국돈으로 5천 원의 자릿세를 내며 우아하게 하이볼을 마신 것도

제법 가격대가 있는 초밥집에 들어가 초밥을 먹은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나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도 이제는 제법 내 나이에 맞는 여행을 하는 건가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음 달에 반드시 들어올 돈'때문이다.

그렇게 내 여행의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여행을 했음에도 나는 전혀 가계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반전은 나의 월급은 내가 프리랜서로 일할 때보다 조금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 달이면 반드시 들어올 그 돈'에 나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끼고 있나 보다.

이래서 안정적인 일을 하라고 하는구나.


그런 이유로 내가 회사원이 되어서 좋은 점은 어쩌면

'다음 달에 반드시 들어 올 돈'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돈에서 여유가 나온다는 말, 

(비록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무슨뜻인지 사사로운 변화들에서 느낀다.


2019년 6월의 교토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원과 술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