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 전시장
프리랜서였던 나에게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은 새로운 경험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본능과 분노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출근은 8시 15분 지하철을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점에서 타기 때문에 앉아서 갈 수 있고 일정 시간 동안은 나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첫 번째 노선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두 번째 노선은 지옥의 분당선.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꽉꽉 채워진 열차 하나를 보고 있자면 과호흡이 올 것 같아
다음 열차를 이용하는 편이다.
다음 열차가 딱히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숨 쉴 공간 정도는 있다
사람들 틈에 비집고 서 있다 보면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란 이런 걸까 싶을 만큼
분노 게이지를 상승하게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몇가지 유형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1. 무조건 밀고 보는 사람
만원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이다.
밀지 않아도 알아서 내릴 거고 밀지 않아도 당신이 내릴 수 있도록 비켜줄 건데
아직 멈춰 서지도 않은 지하철에서 뭐가 그렇게 급한지 당하는 사람이야 어떻든 일단 밀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앞사람이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나에게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허리를 잡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고
놀라서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그렇게 내 허리를 만진 여자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난 것이 패턴.
정말 끔찍하다. 우리 엄마도 내 허리를 만지지 않는데.
2. 분노를 유발하는 새치기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새치기를 하는 것이다.
한참 혈기가 왕성하던 시절, 새치기하는 사람을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을 정도다.
아침 출근길에서는 보통 어르신들이 새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누가 봐도 서 있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노약자라면 백번도 양보할 수 있지만
간혹 나보다도 기운이 더 팔팔해 보이시는 분들이 무턱대고 새치기를 할 때면 솔직히 좀 얄밉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내 성격상 새치기하지 마시라고 해야 하는데 그랬다간 동영상으로 찍혀
'지하철 패륜녀' 뭐 이런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갈까 봐 그냥 속으로만 말한다.
어르신. 저도 시간이 많고 한가해서 줄 서 있는 건 아닌데요...
새치기하셔서 먼저 타셔도 지금 이 시간대에는 자리에 못 앉으세요...
3. 백팩은 앞으로!
또 하나 참을 수 없는 건, 백팩 군단들.
본인이 멘 백팩이 얼마나 뒷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단 1초도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백팩이 내 시야에 있어야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으며 뒷사람이 좀 더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데
백팩 군단은 그저 자기가 편한 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백팩을 뒤로 메고 당당히 지하철에 타지 않겠지.
4. 걸을 땐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으세요.
사실 제일 짜증 나는 건, 핸드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다.
나의 지하철 여정 마지막 노선에서 내리면 양방향 열차가 한 번에 들어와서 개찰구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하필 다른 출구가 공사 중이라 나가는 출구가 하나인데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출구는 두 곳이다)
양 방향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빠져나가려면 정체가 생기게 된다.
나는 여기서, 핸드폰을 잠시 눈에 떼고 앞만 보고 걸어도 그 정체가 금방 풀릴 거라 확신한다.
실제로 핸드폰을 보고 걷느라 걸음이 느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사람들을 앞질러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회사까지 걷는 그 짧은 시간에 핸드폰을 안 보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아침부터 핸드폰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될 만큼 바쁜 일이 있는 걸까?
회사까지 가는 시간만이라도 핸드폰을 놓고 하늘도 좀 보고,
비록 사각형의 빌딩들 뿐이지만 풍경도 좀 보고 사람들도 좀 보고,
삭막한 빌딩 숲 사이에 핀 꽃들도 좀 보고 그러면 안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누구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구는 프로 불편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이 이기적이고 프로 불펀러라면
누구나 힘들고 지치는 출근길에 남 생각은 안 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단
공중도덕을 지키는 이기적인 프로 불펀러가 더 나을 것 같다.
조금만 배려하면 훨씬 더 수월한 출근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과 바람과 희망을 담아
나는 오늘도 인간의 이기심들이 전시된 콩나물시루 같은 출근길 지하철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