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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09. 2019

가끔 상사에겐 엿을 선물할 필요도 있다

부당함을 참지 않을 권리

예전 나의 썸남은 나에게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하지? 누구를 위해서?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한다거나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지나친다던가 하는 

감정 불구는 아니다.

그저 부당한 일을 좋게 좋게 넘기는 성격이 못 될 뿐이다.

그게 착하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딱히 착해지고 싶지 않다.     


얼마 전 회사에서는 사업을 따내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사업에는 시나리오가 필요했기 때문에 내 업무가 아니었지만 나는 순전히 호의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겠다고 했다.

애초에 나에게 “시나리오만 쓰면 돼” “그냥 말만 바꾸면 돼”라고 해서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돌려 말하는 성격도 못돼지만, 돌려서 생각하는 성격도 못된다.


선배들이 나에게 항상 말하는 게 너는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누가 주식하자고 하면 하지 말고, 누가 좋은 사업 소개해준다고 하면 절대 하지 말라고 할 만큼 

나는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말을 믿어 버리는 편이다. 

0 아니면 1, 단순한 성격이라는 뜻이다.

 

준비 기간도 얼마 없는데 자료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초안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말만 바꾸면 되는’ 수준이 아니라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이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으니 쌓여만 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내가 맡은 업체에서는 

급하게 콘텐츠 촬영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상사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시나리오가 손이 많이 가더라,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했다, 어쨌든 이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설명드릴 거고 시나리오까지만 책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은 한 이유는 당신이 우리팀의 상사이니 이 꼬인 스케줄을 정리하라는 뜻이였는데 상사는 

누가 들어도 삐진 말투로 “그럼 하지 마”라고 말했다. 

거기에 나는 “이제 와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안되죠”라고 반박했다.

이제와서 하지 말라고 할거면 나는 그동안 왜 뻘짓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시나리오만 쓰면 될 거라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그 상사는 내가 이번 건에 대한

전반적인 서류 작업도 도왔으면 했던 모양이다. 

아니, 서류라고는 구성안이나 대본을 쓰기 위한 자료 프린트물 밖에 만져 보지 않은 내가, 

대체 무슨 서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나는 사업을 따내기 위한 TF팀이 구성된 사무실로 올라갔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설명한 후 수정사항이 있으면 수정할 테니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다.   

   

“왜 수정사항을 알려줘야 하지?     


“왜라뇨? 제가 쓴 시나리 오니까요”   

  

“김 작가 이름 안 올라갈 거야”     


“왜요? 그럼 저는 제 이름도 올라가지 않는 영상물을 위해 왜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시나리오를 쓴 거죠? “ 

    

“회사에서 하는 일이니까”     


“이건 원래 제 일이 아닌데 회사 소속이라고 제 아이디어를 뺏어 갈 이유는 없죠.”     


“너만 일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일 없어서 이거 하고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나는 이 시나리오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아이디어는 내 거고 사용할 시 저작권으로 문제를 삼을 거라고 말해버렸다. 

상사는 고소를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나가버렸고.

     

실제로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도 나의 본래 업무가 아닌 그 외 영상물 제작에 내 시나리오가 쓰이면 

내가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도 나의 저작권으로 인정된다. (너무 열 받아서 저작권 협회에 물어봤다) 


물론 이건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긴 했지만 작가, 창작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의 저작물과 나의 아이디어를 뺏기는 일.

내가 비록 회사원이라고 해도 나는 작가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건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아무리 자존심이 없다지만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나의 일로 나를 건드리는 건 절대 참지 않는다. 

내가 내 일에 자부심이 강하다는 걸 상사도 알고 있었고 이건 나의 실수라거나 나의 능력이 부족해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날이 서서 말하는 건 의도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 길로 대표님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표님이 회의를 하자고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표님께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시나리오만 작성하는 걸로 들었는데 이렇게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내가 아무리 회사소속이라고 해도 내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를 뻇어가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그 상사의 발언은  나를 무시하는 것 밖에 안된다고.

 

대표님은 차분하게 이 상황이 발생한 것, 내 이름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고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으며 상사 대신 나에게 사과를 해주시기도 했다.

결론은 그 상사가 이런 상황설명 없이 앞뒤 잘라먹고 감정적으로 나에게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대표님 앞에서 대성통곡을 해버렸다.

눈물로 무기를 삼을 생각은 절대 없었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내가 내 성질을 못 이겨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 소리가 대표실 밖의 사무실 분들에게도 들렸는지 내가 우리 팀 사무실로 내려오자 

카톡들을 쏟아졌다. 괜찮냐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놀랐다며,

오늘 집 가서 매운 거든 단거든 술 빼고 다 먹고 풀라고.

어떤 분은 나에게 초콜릿 과자를 주고 가시기도 했다. 

이런 위로를 받으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좋은 사람들 덕분에 기분이 좀 풀렸다.


퇴근길에 그 상사에게 찜찜한 사과를 받긴 했지만 나는 이 건에 대해 더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이번 건에서 빠지겠다고 그 상사에게 말했다. 

호의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돼서 많이 당황스럽다고, 그런 일을 겪고 이번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고 

혼자 일하는 건 아니지만 당장 눈 앞에 닥친 급한 일들을 처리를 하긴 해야 할 것 같다고.   

뒷끝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곱씹을수록 열받긴 한다. 

  

그 상사가 나에게 왜 그랬는지 짐작은 간다. 

'가오'에 죽고 '가오'에 사는 스스로도 허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 '허세'에 동참해줄 생각이 없고 그 '허세' 때문에 늘 부당한 일들이 발생되는데 나는 거기에 항상 

"No"라고 말했기 때문에 고깝게 보일 것이다. 

나한테 자주 삐지는 이유도 그 '가오' 떄문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삐짐을 위로해주거나 풀어줄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보여주기식'으로 일하는 것이고 나는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결과로 나와 우리팀과 우리 회사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 

일은 허세가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거니까.

일 못하고 착한 사람보다 싸가지 없어도 일 잘하는 편이 낫다.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한 곳이다.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상사가 하는 말에 무조건 네네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앞으로도 네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당한 것을 참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것이고 지금 내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추가 업무를 할 것이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이건 노동자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돌아가는 이유는 결국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흔드는건 회사의 잘못이다.


방송판에서 일할 때도 딱히 참지는 않았지만 내가 작가라서, 작가이기 때문에,

방송판의 불합리한 조건들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에,

대응할 수 없는 위치였던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회사로 온 것이다. 

노동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3.3%의 세금을 떼는 일용직 노동자의 처지가 질려서 회사로 온 것이다.


이쯤에서 그렇게 꼬장꼬장해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냐고 생각하고 있던 당신!

그동안 사회생활 잘했으니 본인 걱정이나 하시길 바라며   

이번 일을 통해 유명한 명언이 하나 떠올랐다.     


“나까지 나설 필요 없다”   

  

앞으로도 굳이 나서서 일하지 않기로 했다. 

호의로 시작됐던 이번일이 상대방의 권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겠다. 

이번일은 나에게 "굳이 나설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내 자리에서 내게 맡겨진 업무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부당함을 강요하는 상사에게는 가끔, 엿을 선물할 필요도 있다.

그 엿이 얼마나 더럽게 맛이 없는지, 

치아 사이사이 알알이  낀 진득한 엿이 얼마나 기분을 나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지 

상사도 가끔은 알 필요가 있다.

상사는 상사일 뿐 권력이 아니니까.

.

.

(나도 누군가에게는 상사임을 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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