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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15. 2019

회사원은 '을'이 아니다

그놈의 '갑' 그놈의 '을'

나의 상사는 클라이언트를 '갑'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 오고 일의 진행에 있어 할 말을 제대로 못 해

빠릿빠릿하게 일 처리를 못할 때가 있다.

상사가 망설이면 아랫사람들이 힘들어지는 법인데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보다

클라이언트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나는 클라이언트에게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쓸데없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드는 대신 해야 할 일들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내가 그렇게 클라이언트에게 돌직구를 날릴 때마다  

클라이언트를 갑이라고 생각하는 상사의 가슴이 덜컹하는 게 보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쓸데없는 일을 배제하고 최대한 힘들이지 않으며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기가 먼저니까.


상사는 대표에게 보고를 할 때도 "클라이언트가 '갑'이라..."라고 말하고

쓸데없는 일을 쳐내는 나에게도 "클라이언트가 갑이라서"라고 말한다.

요즘에 그런 게 어딨냐고 자꾸 그렇게 갑을 관계를 만들지 말라고 하면

그런 게 있다며 내가 자꾸 쓸데없다고 일을 쳐내면 자기가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여기서 나의 상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받는 월급에는 '그런 일'도 처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

그래서 '그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는 그 상사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처리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할 테니 나에게 돈을 더 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클라이언트를 '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쪽은 이런 영상물들을 만들어 줄 업체가 필요해 공고를 냈고,

우리 회사는 그 공고에 제안서를 내고 경합을 통해 선정됐다.

그러므로 서로 필요에 의해 맺어진 '상호보완 관계'이고 때문에 '협력사'이지 '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클라이언트가 나와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 의미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회사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했고 나는 그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면접을 통해 회사는 나를 선택했고 나는 회사에 나의 전문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이것 역시 '상호보완 관계'이지 '갑을관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는 회사에서 공짜로 월급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을'이 아니다.

회사에 정당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

서로 주고받는 게 있는데 왜 회사는 '갑'이고 왜 우리는 '을'이 되는 것일까?


도대체 '갑'이란 무엇일까?  '을'이란 무엇일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관계는 대체 누가 만든것일까?


프리랜서 시절엔 분명한 '갑을 관계'가 있었다.

노동법에 보호받지 못하는 3.3%를 떼는 일용직 신분이었던 나는 '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언제든 자를 수 있는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처지였다.

방송 구성 작가들은 갑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 채소를 야채로 쓰는 오타를 내서,

1인 1 내비게이션 시절이 아닐 때 톨게이트 이름을 잘못 써서 잘리기도 했다.

잘리는 이유는 다양했고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해도 나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우리는 어디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비록 부당한 이유일지라도 말이다.

그야말로 작가에 대한 방송사 혹은 제작사어쩌면 선배들의 '갑질'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노동법에 보호를 받는 4대 보험 가입자이다.

주 40시간을 일하며 정해진 날짜에 월급을 받고

부당해고와 불합리한 업무지시를 받았을 경우에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비록 그 법이 내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노동자로써 법적인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나보다 더 먼저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은 말한다. 

'갑'에게 잘 보이고 '갑'의 기분을 맞춰주고 '갑'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사회생활이라고.

'갑'에게 한번 고개를 수그리면, '갑'에게 그깟 자존심 한번 죽이면

우리 회사가, 내 가족이 편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다 그렇게 해왔다고, 그래서 회사가,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중한다. 그러나 그것을 나에게 강요하지는 마시라.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고 자존심은 '갑'이 아닌 나의 노동력을 인정해 주는 곳에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선에서 버릴 순 있지만

나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나에게 노래방 탬버린처럼 굴라고 하는 '갑'에겐 그럴 수 없다.

그런 불합리한 악습은 이제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버릴때도 됐다.


사회란,

실력이 있으면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아도 인정받는 법이다.


'갑과 을'은 계약서상 법률 용어일 뿐,

회사와 회사가 일을 하는 건,  또 노동력이 필요한 회사와 노동력을 갖고 있는 우리가 일을 하는 건,

협의와 협력이지 갑과 을이라서가 아니다.

나와 협의를 하는 상대가 회사이고 상사이고 클라이언트라고 해서

그들이 '갑'이고 내가 '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을 '을'이라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을'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전문성으로 일을 하는 프로다.

우리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우리의 '갑'이 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우리를 '을'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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