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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ug 06. 2019

한번쯤은 겪었을 면접 폭력

결혼유무말고 실력유무의 면접을 꿈꾸며

프리랜서는 일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직접 일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방송 구성작가로 일하는 동안 수도 없이 면접을 봤다.

면접을 보면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의 베스트 탑은 단연    

“결혼했어요?”이거나 “결혼할 거예요?”이다.    


프리랜서의 면접에서만 그런 질문을 받았는가 하면 지금 이 회사의 면접을 볼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나의 전임자가 회사 입사와 동시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서 육아휴직을 썼다는 트라우마 때문인 건 알겠으나

그다지 썩 유쾌한 질문은 아니었다.

지금의 이 회사를 올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도 면접 때 내게 결혼 계획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사생활에 대한 답변은 하고 싶지 않다고 정중히 말하고 싶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나의 그 한마디로 채용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던 남자 친구의 존재까지 숨기며 결혼 생각 따위 없다고 말한적도 있다.


거기서 끝나면 참 좋을 텐데 ‘왜 남자 친구가 없냐’ 라거나 ‘왜 결혼 계획이 없냐’ 라거나

“결혼하면 회사는 계속 다닐 거냐”라던가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그럼에도 성실히 답변을 하면 또 이어지는 질문.

‘아이 낳을 거예요? “ ”아이 낳으면 회사는 어떻게 다닐 거예요? “    

 

그런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입사하면 또다시 그 질문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주위를 맴돈다.

"결혼했어요?" "왜 결혼 안 해요?" "남자 친구 있어요? "왜 남자 친구 없어요?"


남이사.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 나조차도 모르는 일을,

더구나 우리 부모님도 묻지 않는 질문에

나는 그 어떤 유대관계도 없는 회사에 답변을 하고 있어야 한다.


나의 경력만으로 나를 판단할 수는 없었던 걸까?

나의 실력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나의 결혼 유무나 결혼계획이 면접 질문에 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언제 결혼할 거라고 하면 그때까지만 채용하려고?

아니면 미리 축의금 준비하시려고 그러나?

결혼을 할 건지 아닌지, 아이를 을 건지 아닌지를 미리 확인받고 싶은 걸까?

그렇게 확인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텐데.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기준 61%가 결혼 여부에 대한 면접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질문을 받은 남성 구직자의 퍼센티지가 반절인 것을 보면 여성들이 이런 질문을 더 받는 모양이긴 하다.

결혼한 남성은 임신과 출산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가정을 위해 더 책임감 있게 일할 거라는 생각 때문인가?


가정을 위해 일을 하는 건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남녀를 나누자는 건 아니지만 방송 일을 할 때 선배 언니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일을 쉬고 있거나

일을 그만두려고 하거나 일을 그만 둘 예정이었다.

일이나 회사,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남녀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결혼 유무나 결혼 계획에 관련한

‘면접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면접 폭력'에 나름대로 대응하기 위하여 이력서에 나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그리고 내가 다닌 방송아카데미와 경력 외에 사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적지 않았다.

나 혼자 나름의 블라인드 이력서를 돌렸던 셈이다.

하지만 그곳에 출신 학교나 나의 집주소, 결혼 유무가 적혀있지 않다고 해서 채용이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출신 학교를 적지 않은 이유는 나의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프리랜서를 탈피하고 회사에 입사를 결정하면서

구직사이트의 포맷에 따라 새로운 이력서를 작성하게 됐다.

작성하면서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싶은 점들이 꽤 많았고

과연 이런 내용이 나의 이력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까 궁금했던 점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제 이력서에 키나 몸무게를 적지 않고,

부모님이나 내 형제의 직업을 적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으로도 꽤 발전적이라 생각했다.     


올해 7월 17일부터는 채용 절차법이 개정되어

구직자에게 직무와 무관한 출신지역, 외모나 결혼 여부, 부모님 직업 등의 개인정보를 물을 수 없다.

만약 요구를 할 경우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내 키나 몸무게가 얼마인지, 내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내가 어디에 사는지, 내가 결혼을 할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내가 쌓아온 경력만으로 평가받고 싶다.

내가 이 경력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질문해 줬으면 좋겠다.


비즈니스 웃음을 지은 내 사진을 붙이지 않고도, 사사로운 개인정보가 없어도

완벽히 나의 이력만으로 평가받고 채용되는 세상을 꿈꿔본다.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업무능력이다.

그러니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갑지 않은 관심은 접어두시길 바란다.

회사만 구직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직자도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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