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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ug 16. 2019

인사팀이라는 가해자

인사팀이 권력이라 믿는 사람들

정규직 전환 문제로 인사팀과 면담을 할 때였다.

나의 상사가 나에 대해 도대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격파탄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 내가 성격파탄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정확한 상황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인사팀은 나의 워딩이 어땠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본인들이 듣고 판단하겠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1인극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싶어 좀 황당했다.


그러면서 점점 불쾌한 마음이 커져갔다.

예를 들어 내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는데 그게 어떤 상황인지 너의 말만으로는 모르겠으니

어떻게 성희롱을 당했는지 재연하면서 말해봐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었다.

내가 성격파탄자가 아님을 계속해서 증명하던 중 나는 자기 재능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실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더니  

인사팀은 “실력만 필요하면 프리랜서를 쓰지 직원을 왜 뽑겠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다가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프리랜서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사회생활이나 회사생활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구나.     


솔직히 그 말에 나는 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고용형태가 프리랜서일 뿐, 회사에 출근하는 상근 프리랜서였다.

작가팀만 10명이고 나의 위치는 서브작가였기 때문에

보통 내 위에는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선배 작가들이 4~5명은 있었다.

거기에 피디팀도 작가팀과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위에 책임프로듀서님 부장님 국장님 등등등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때로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고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일을 했다.     


그런데도 나는 방송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이런 태도에 대해 지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방송국에는 “프로”들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쿵’하면 ‘짝’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러니까 그곳의 우리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방송국 안에도 신입은 있다.

선배들은 그 신입을 어떻게든 ‘초짜’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연예인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 뿐 아니라 심지어 방청객 어머니들까지

딱 봐도 신입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태도부터 달라진다.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는 위치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들을 할 때도 있고

대놓고 무시하며 “네 선배 불러와. 내가 왜 너랑 얘기해야 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눈에는 한없이 부족할지언정,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티가 나서는 안됐다.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 팀 전체를 우리 프로그램을 무시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가끔 눈물 콧물 쏙 빼게 울리기도 하고

나는 막내 때 너보다 더 못했었다고 너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지금은 자료나 찾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주는 자료가 이 방송을 만드는 뼈대가 되는 거라고

달래주고, 응원해 주고, 웃겨서 눈물이 쏙 들어가게 해주기도 했다.

막내는(신입)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이 회사는 달랐다.

실력은 점점 쌓아가면 된다. 팀 분위기, 회사 분위기, 화기애애한 그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팀 분위기를 망치는 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피드백하는 나라고 했다.     


하지만 영상으로 밥을 먹고 산다는 사람이 영상 관련 용어도 모르고

영상 편집 기술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이렇게 촬영해 달라 요구하면 안 된다는 말부터 먼저 하질 않나,

(영상에 대한 욕심은 나보다 찍고 편집하는 사람이 더 있어야 하는 것을....)

잘 모르면, 못하겠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매번 웃어줄 수가 있을까.

같은 지적을 몇 번씩 해도 고쳐지지 않는 사람에 어떻게 자상하게 끝까지 말할 수 있으며,

업체에 보내는 폴더를 ‘직박구리’로 보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우쭈쭈 해주며 실력이 쌓아지길 기다리냐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프로답지 못한 행동들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나도 막내이고 신입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누군가 알려줘서 방송용어를 알고 이 일의 순서와 이치를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쪽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방송은 신입에게 일일이 하나하나 다정하게 알려줄 만큼의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회사의 시간이 널널한건 아니다. 회사에는 마감이 있으니까.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아서 답답한 내가 나선 것 뿐이다.

나는 내 이름으로, 내 회사 소속으로 공개되는 영상을 그런 수준으로 둘 수는 없었다.


그런 내가 성격파탄자라면 인정하겠다.      


다만,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내 경력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내 경력이 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했는데 나는 이 회사에 아주 많이 실망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구성을 내놓아도 그걸 실현시켜 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란, 이력서에 한 줄 더 써넣는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경력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실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영상이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내 직업이 특성상,

나의 구성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가 실력의 증거가 된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사람들과 함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실력은 뒷전이고 본인들 친분을 과시하는 것에만 급급한다면

도대체 실력도 없는 이 회사는 어떤 매리트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해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인사팀과 나의 상사는 나를 팀 분위기 흐리는 성격파탄자로 만들었다.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는 나의 말에

여전히 팀 분위기, 회사 분위기만 강조하며 인사팀은 앞으로 나를 '감시하겠다'라는 말을

‘겪어보겠다’라는 말로 순화하며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상사는 나에게 정규직 전환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아서 기어 다녀라’라는 메세지를 보낸 셈이다.


인사팀과 상사는 정규직이라는 미끼를 나에게 던졌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정규직에 별 관심이 없으며 회사에서 친분을 과시하기보다는

일을 제대로 하는 프로와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상사는 실력으로 나를 이길 수 없음을 나에게 들키지 말았어야 했고,

인사팀은 그 상사가 얼마나 무능한지 알았어야 했다.

나는 이 상사가, 이 회사가 점점 더 우스워지고 있고 회사의 수준을 의심하게 됐으니까.  

   

나의 상사와 인사팀은 나에게 2차 가해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업무능력이 아닌 나의 성격을 문제 삼으며 (정말 열 번 참고 한 번 화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에게 정신적인 충격과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나는 그날의 면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심리 상담을 예약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인사팀이라는 권력에 나의 몸과 나의 경력과 그 경력으로 지켜 온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을 숙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프로가 되고싶고, 프로와 일하고 싶으니까.      


PS-

직원의 태도와 업무능력을 인사팀이 평가한다면 인사팀의 업무능력이나 태도는 누가 평가하는 것일까.

정규직이면서 무엇보다 대표의 가족인 그들의 그 우월감이 가끔은 참 재수 없다.

그래, 대표 가족인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고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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