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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May 24. 2020

컵라면의 위로

조금 긴 파리 여행을 떠나던 날, 

공항에 가족이들이 함께 왔고 다행히 아무도 울지 않았다.

아니 애써 눈물을 참았던 걸까.

더 있으면 내가 펑펑 울것만 같아서 서둘러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설레는데 무섭고 두려운 행복하다.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마음을 안고 12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12시간 내내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나는 파리에 도착했고, 그러니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여행이 아닌 살러 온 나의 짐은 비교적 간단했다.

캐리어 두개와 배낭하나. 

그럼에도 53kg이라는 무게는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다니던 내게 버거웠다. 


차를 타고 임시 숙소로 가는 동안 으레 하는 질문 인듯, 

파리에 와봤는지, 왜 왔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파리에서 살 때 유용한 몇 가지 팁도 알려주셨다.


"11월의 파리는 맑은 날의 거의 없어요. 매일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리니까 우울증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해요"


기사님의 조언이 괜시리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깨닳았다.


'아... 나 진짜 여기 살러 왔구나..'


몇번이고 와봤던 파리인데도 문득 낯선 느낌에 왈칵 겁이 났다.

택시에서 내려 한국에서 받은 임시숙소의 열쇠로 대문을 여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낡은 열쇠로 초록색 대문을 열때의 그 아찔함을 잊지 못한다.

제법 밝은 골목길이었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너무 무서웠다. 

몇번을 돌려서 열리지 않는 열쇠때문에 무서움이 더  커지자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거기 누구 없냐고, 좀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기사님께 다시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까 찰나 생각했던 순간 덜컹- 대문이 열렀다.


임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한달 반을 지내면서 나는 거주할 집을 알아봐야 한다.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의 나에게 맡기고 어쨋든 일단 배고 고프니 밥을 먹자.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비상식량으로 가져왔던 컵라면을 끓였다.

스산한 파리의 날씨와 컵라면의 따뜻한 온기가 제법 잘 어울려서 금새 또 기분이 나아졌다.

컵라면이 주는 위로가 있다.


다음날,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에펠타워를 보러 가는 것도, 몽마르트를 거니는 것도 아닌, 

핸드폰 유심을 사러 가는 것이었다.

여행했을때의 기억을 더듬더듬거려서 찾아가는 길, 별안간 우박이 떨어졌다.

잠시 우박을 피해 들어간 어느 건물이 처마 밑에서 고개를 들고 풍경을 바라봤다.


파리구나.

이곳이 그토록 나를 그리움에 사무치게 했던 파리구나.

잘 왔다.  잘했어. 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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