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파리스럽다는 16구에 살고 있지만 처음 파리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왔을때의 나의 집은 파리 3존 빌쥐프(Vilejuif)였다.
파리가 좋아서 파리에서 살기로 결심한 내가 파리 시내가 아닌 파리의 파워오브 외곽 3존의 빌쥐프를 선택했던 건 이전 여행의 영향이 컸다. 파리에서 살러오기 1년 전, 파리를 여행했을 때 내가 묵었던 숙소가 빌쥐프였다. 그 숙소를 구했던 이유는 딱 두가지였는데 하나, 숙소비용이 굉장히 저렴했다. 한인민박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한인민박처럼 아침이나 저녁을 챙겨주지 않았고 한국인들만 묵지 않았으며 오히려 게스트하우스에 가까웠다. 아침이나 저녁을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기억하기로는 1박의 숙박비가 20유로도 채 되지 않았다. 두번째 이유는 그 저렴한 숙박비에 내가 선택한 방은 독방이라는 점이였다. 이보다 더 전의 여행에서도 나는 항상 파리의 외곽지역에 숙소를 구했었기 때문에 빌쥐프에 숙소를 구하는게 고심해야할 일이 아니였고 일주일가까이 지냈던 이곳이 나는 왠지모르게 꽤나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에 정착하는 첫번째 집도 빌쥐프를 선택했다. 여행의 추억도 추억이었지만 가격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가격에 비해 집의 컨디션이나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외곽임에도 RER을 타지 않아도 되는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집을 구할때 염두해 두었던 것들 중에는 'RER노선을 타지 않는 지역' 그리고 외곽이여도 시내와 가까운 지역이여야했다. RER노선은 외곽지역과 시내를 이어주는 노선인데 열차의 분위기가 썩 쾌적하지 않다. 파리의 지하철들이 그렇긴 하지만 RER은 유독 어둡고 음침한(?)기운이 있어서 왠만하면 RER을 타지 않으려는 것이 여행할때부터 나의 습관이었다.
빌쥐프는 파리 3존임에도 파리지하철로 오고갈 수 있었고 빌쥐프가 있는 파리의 7호선은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노선이였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은 빌쥐프에서도 끝자락, 7호선의 가장 마지막 역인 "빌쥐프 루이 아라공"이라는 역이었다. 이민자들의 많은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프랑스인들보다는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았고 파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던 곳.
우리집은 역에서 5분정도 걸으면 나의 집이 있었는데 연두색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0층 (한국식 1층) 집으로 혼자살기에 꽤나 큰, 파리의 집들 중에서도 꽤나 크면서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780유로에 전기세와 수도세 인터넷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내가 내야할 공과금은 0원이었다. 중앙난방이라 한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냈으며 (이 사실은 전기세를 직접 내야하는 파리 16구로 이사를 온 후 중앙난방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됐다) 도로에 나 있는 0층이라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아침에 창문을 열 때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일도 꽤나 재미있었다. 더구나 우리집 맞은편은 주택이 아닌 큰 종합병원의 정원 담벼락이 있어서 앞집에서 우리집을 엿보거나 하는 불편함이 없었다. (종합병원이 정말 컸는데 우리집에서 버스로 2정거장은 가야 병원건물이 나왔다. 우리집쪽은 큰 정원이었고 그 주변에 의과대학이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0층임에도 햇볕이 제법 잘 들어왔고 그 큰집에 창문이 단 하나였지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창문의 갯수, 또 집에 해가 들어오는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상쾌한 일인지는 16구로 이사오면서 알게 됐다.) 욕실과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었고 원래는 공용이었으나 전에 살던 세입자가 혼자 쓰고 싶다고해서 이 집은 독채가 되었다. 감사한것은 집을 보러 갔을 때 전에 살던 세입자가 100유로를 깍아서 이 집에 들어왔으니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주인 앞에서 얘기해주어서 원래라면 880유로였을 집을 780유로에 머물게 되었다.
집과 10분거리에는 4개의 마트, 그중에는 까르프라는 대형마트가 있었고 15분쯤 걸어가면 리들이라는 대형마트가 하나 더 있었다. 외곽에 살아서 좋은점은 대형마트들이 있다는 것. (파리 시내에는 대형마트가 없다. 파리에 살면서 제일 불편하다면 불편한 점이다) 또 우체국 경찰서 소방서 도서관 등등 편의 시절들이 모두 있었다. 이 마트에서는 저게 없고 저 마트에는 이게 없어서 장을 보려면 한나절이 걸렸다. 먼저 까르프 대형마트에 가서 큰 장들을 본 후 까르프에 없는 것들을 프랑프리나 모노프리에서 장을 보곤 했다. 보통 평일에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주말에 일주일치 장을 보는데 그렇게 이 마트 저 마트 다니면서 장을 보는 일이 꽤나 재미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에펠탑도 센강도 파리의 풍경들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집에서 1년동안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았다. 코로나 시대가 돌입하면서 하나 둘 이 집을 떠나 3층짜리 집을 몇달간 나 혼자 사용한 적도 있다. (물론 나는 내 집에만 있었지만)
이렇게 애정이 많았던 집에서 나오게 된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 원래도 1년정도만 살고 파리로 이사를 할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지 모르는 매년 체류증을 갱신해야하는 외국인 신분으로써 파리가 좋아서 왔으니 한번쯤은 파리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가고 싶었고 두번째는 이 집에서 쥐가 나왔다. 쥐가 나올 수 있는 모든 구멍을 막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이사를 결심했고 결정적으로 한밤중에 쫒아 온 흑인 때문이었다.
우리집이 있던 동네는 파리와 외곽을 이어주는 새로운 지하철노선이 공상중이였고 역에서 우리집을 가려면 그 공사현장을 가로질러가는 어떤 통로를 지나야했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은 한 겨울에 패딩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역을 빠져나오는데 내 옆으로 어떤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은 쌔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더니 그 사람은 곁눈질로 나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왠지모를 이상한 느낌에 공사장을 가로지르는 통로로 들어가려다 통로앞에 멈춰섰고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 통로로 들어갔다. 내가 오해했구나 싶어서 안심하고 그 통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그 남자가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나는 그사람을 피하기 위해 횡당보도로 건너지 않고 횡단보도에서 대각선으로 건너서 그 남자와의 간격을 넓혔다. 이후 내 생에 가장 빠른 걸음으로 길을 가고 있다가 뒤를 돌아봤더니 그 남자는 여전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거나 뛰어가면 그남자를 자극할 것 같아서 더욱 더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흠짓 놀라서 쳐다봤더니 어떤 여자가 저남자 이상하다며 같이 걷자고 했다. 우리 둘은 있는 힘껏 길을 걸었고 드디어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우리집이 나왔다. 나는 이제 이쪽으로 가야한다고 너는 어디까지 가냐고했더니 그 여자는 조금 더 가야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과 안전을 빌며 헤어졌다. 집 현관문을 열쇠를 여는 동안 그 남자가 따라올까봐 손이 덜덜 떨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문을 잠그고나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걸 나는 그때 처음 알게됐다.
그 뒤로 집에 올때마다 긴장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 동네에 도착하면 9시 반이나 10시쯤이였음에도 한번도 그런 일들이 생긴적이 없었고 이 동네에 살면서 단 한번도 무섭거나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날 이후 이 동네가 너무나 무서워져서 급하게 새로운 집을 알아봤다.
그렇게 부랴부랴 이사 온 곳이 16구이다. 16구 첫 집에서도 1년을 살다가 지금은 같은 16구의 좀 더 중심가로 다시 이사를 왔다.
파리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빌쥐프에 한번쯤은 모두 살았다고 한다. 저렴한 집 값, 시내와 멀지 않은 거리가 넉넉하지 않은 유학생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곳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16구로 이사 온 후 우연히 다시 빌쥐프를 지나갔던 적이 있다. 내 여행과 내 첫 프랑스 정착지였던 곳, 아기자기한 주택들과 새로 재개발되어가고 있는 건물들, 그런것과 상반되게 어딘가 어둡고 지루한 느낌의 빌쥐프.
그곳이 가끔씩 그리운 건, 내가 프랑스에서 계약한 첫 집이였기 때문일까, 식재료부터 가전제품까지 왠만한 물건은 다 살 수 있었던 까르프 대형마트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