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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Nov 15. 2020

오늘 우연히 텔레비전과 조우하였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 완전한 사람과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명절날 지루하게 이어지는 식사 자리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본 적은 있었다. 헬스장에서 몸에 묻은 물기를 닦거나,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것을 잠시 응시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나였다. 때때로 우연히 - 대부분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나는 텔레비전과 조우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오래 보지 못한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텔레비전을 정면으로 보았다. 한 남자 연예인이 밥을 해 먹는 이야기였다. 조금 전 족발에 맥주를 먹지 않았다면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지나쳤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어정쩡하게 취해 그 앞에서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꽤 오랫동안 시청하였다.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지쳐 있었고, 샤워를 했고, 로션을 바르러 가던 길에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다. 세수한 얼굴이 건조하게 당길 때까지 나는 우둑서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텔레비전이 지껄여댔다.


"여기 완전한 사람과 라이프 스타일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린 여자들과 정돈된 삶이 있지. 그에 비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근사한 출연자를 보라고. 단순히 잘생겼다고 TV에 나오는 게 아니지 -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남자의 일상을 봐. 네 아이를 위해서라면 식사마다 야채를 갈아서 어떻게든 아이 입에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유기농 과일을 으깬 다음 설탕과 함께 조려서 잼을 만들어 먹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주일에 두 번쯤은 장을 보고 아침이면 육수를 진하게 고아서 그것으로 인스타에 올릴 만한 그런 밥상을 차려 먹는 게 정상인 삶이라고. 그게 당연히 일반적인 일상이지.


근데 너는 이 새끼야. 어제 넌 도대체 뭘 처먹은 거냐? 아이 입에 뭘 넣은 거냐고. 지방에 튀겨낸 탄수화물 덩어리였지. 설탕을 듬뿍 얹어서 말이야. 그게 네 삶이야. 네 책상 위를 봐. 널브러져 있는 오만 잡동사니를 보라고. 삶이 불공평하다고 징징대지 마. 삶은 불공평한 게 아니야. 그냥 완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 뿐이야. 너 자신을 봐. 그리고 스크린 반대편 이쪽의 완전한 사람들을 보라고. 벽은 존재해. 응당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매일 같이 내게 경배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


나는 항변하고 싶었다.


그냥 너무 피곤하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데 항상 다른 사람들은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한다고. 그래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아이에게 야채는커녕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게 하는 것조차 가끔은 너무 어렵다고.


그리고 나는 유기농 잼이나 야채를 갈아 만든 스테이크 소스보다 중요한 것들이 삶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예를 들어 아이와 함께하는 술래잡기가 그러한데 - 나는 어제 아이와 40분 정도 술래잡기를 했고, 오늘도 15분 정도 했다고. 달리면서 나도 아이도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우리는 달리기를 정말 잘하는데 놀이터의 누구도 우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고.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가 사교성이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지만 신체 능력만은 단연 최상이라고 말했다고 이 개새끼야. 

그러나 나는 항변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이라는 족속이 닥치지 않았으므로.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끊임없이 지껄여댔으므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 모두가 연출이고 사기라고 폭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 저것이 연출인지 혹은 한 달에 280만 원 받는 육아 도우미가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기에 가능했던 돈 지랄인지 알 수 없다. 최악은 어쩌면 정말로 출연자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가치체계를 가진 고귀한 인간이라 저런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항변이 불가했다.


그러므로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볼 수 없다. 내가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투와 분노를 함께 유발하기 때문이다. 제정신으로 그것을 계속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내게 검지손가락이 있어서 다행이다. 원할 때면 언제든 저 미치광이 상자를 입 닥치게 할 수 있으니. 가볍게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이렇게 글을 끼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내일은 아이가 먹다 남긴 시리얼의 우유를 텔레비전에게 조금 나눠줘야겠다. 아내에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살짝... 다시는 지껄이지 못할 정도로는 충분히... 우유는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이니까.




오랜만에 글을 쓰니 참 좋네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지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도 조만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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