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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12. 2020

<나는 기러기다> 5화 외로움은 언제 찾아오나

<나는 기러기다> 5화 외로움은 언제 찾아오나

    
    기러기 5일차.
    기러기 생활의 제일 큰 난관은 아무래도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외로움은 고독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다.
    고독이 자의적인 감정이라면 외로움은 타의적인 감정이다.
    기러기 생활에서 애들을 맡은 쪽이 육체적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면 홀로 남은 쪽은 심리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외로움이란 것이 고약스러운 이유는 불규칙성과 예측 불가능함 때문이다.

    외로움은 언제 찾아올까?
    진부한 표현 같지만, 기러기의 외로움은 불현듯 찾아온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집에 인적이 없을 때,
    밤에 자다가 목이 말라 깼을 때,
    새벽에 뒤척이다 팔을 뻗었는 데 아무도 없을 때,
    물 마시러 냉장고를 열었는데 냉장고가 텅텅 비었을 때,
    샤워를 하고 수건이 없어 습관처럼 '나 수건 좀'을 외쳤을 때,
    아직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애들 베개를 봤을 때,
    술 마시고 들어 왔는데 거실 불이 꺼져 있어 아무것도 안 보일 때,
    애들 방에 물건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레고 파츠를 밟았을 때,
    로봇 청소기에서 와이프 머리핀이 나왔을 때,
    아빠 보고 싶다고 징징대던 애들이 날 찾지 않을 때,
    영상 통화를 마치고 '종료' 버튼을 누를 때,
    ...

    끝도 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이런 순간들을 비집고 외로움은 찾아온다.
    글자 그대로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은 좀체 적응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외로움을 피하려고 몸부림치지만, 썰물같이 부지불식간 밀려오는 외로움을 피할 길은 없다.
    외로움을 잊으려 즐거움을 쫓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봐도 순간의 틈만 있으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모래사장의 짠물처럼 외로움은 집요하다.
    그래서 피하는 대신 맞서 보기로 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외로움을 마주 보는 거였다.
    '왜 외로운지', '언제 외로운지', '얼마나 외로운지'를 화두로 삼고 깊이 생각했다.

    왜 외로운가는 답이 쉽게 나왔다.
    항상 연년생 아들 둘로 시끌벅적하고, 어질러졌던 집이 이제는 깊은 산속 이름 없는 암자보다도 더 고요해졌다.
    같은 공간의 이질적인 느낌이 외로움을 불러들인다.
    언제 외로운지는 그때그때 달라서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봤으나 앞서 말한 대로 규칙성이 없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외롭지 않다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 외로울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온종일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얼마나 외로운지는 운동이 필요할 때와 술이 필요할 때로 강도가 나뉘었다.
    문득 외로움이 마음속에 파고들 때면 두 가지 선택지가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는 '운동이나 가자'이고, 또 하나는 '술이나 마실까'이다.
    운동이 떠오르면 참을만한 외로움이고, 술이 생각나면 바이주 도수만큼 독한 외로움이다.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내 나름의 솔루션은 세 가지다.
    1. 외로움이 깊어진 날에는 집에 늦게 들어가기.
    2. 잡생각이 들지 않게 바삐 몸을 움직이기.
    3. 외로움이 찾아오기 전에 운동하거나 술 먹기.
    해결책을 쓰고 보니 소박맞기 딱 좋은 행동 같지만, 이제는 잔소리해 줄 사람이 옆에 없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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