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대신 '가치순이익'을 실현하는 기업들
2019년 9월, 마켓컬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모든 포장을 '종이'로 바꾸겠다는 선언인데요.
우리가 쉽게 접하던 기존의 EPS박스(스티로폼 박스)에서 종이박스로 변하게 됩니다.
아래와 같이요.
사실, 계속해서 영업이익과 매출액에 대한 챌린징을 계속해서 받는 마켓컬리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속 가능한 포장재 도입에 대한 애로사항의 압도적 1위로 '비용 상승'이 꼽히기도 했거든요.(출처: 아시아경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리가 100% 종이포장을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이유가 회사가 생존하기 위함입니다.
옳은 일을 해야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슬아 CEO, 2019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은 이해관계자(주주, 임직원 등)를 위해 이윤을 내야 하는 게 응당 맞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매출'과 '영업이익'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들도 있는데요. 마켓컬리를 시작으로 몇 기업 더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던 기존의 안전벨트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은 50년 전부터인데요. 그 전엔 허리만 받쳐주는 2점식 안전벨트가 대중적이었습니다. 아직도 2점식 벨트는 항공기, 고속(광역)버스, 기차 등에 쓰이고 있습니다. 2점식 안전벨트는 튕겨나가는 탑승자를 막아줄 수는 있었지만, 상체가 앞으로 쏠려 장기에 충격을 주는 현상까지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당시 볼보 엔지니어였던 닐스 볼린(Nils Bohlin)은 쉬우면서도 안전한 벨트를 만들기 위해 1년간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한 손으로 쉽게 매면서도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3점식 안전벨트를 만들게 되었죠.
모의 충돌 시험 등을 통해 3점식 안전벨트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1963년부터 미국 외 여러 지역에서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특허권으로 얻을 수입만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1. 어린이의 안전을 위한다는 점
2. 인명과 관련된 기술이라는 점
3. 이익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점
위와 같은 이유에 따라 특허권을 포기하고, 더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천문학적인 특허비용을 포기한 대가로 우리는 3점식 안전벨트를 오늘날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도 꼽히기도 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만 약 30만 명, 5만 명 중 1명 꼴로 선천선 대사 이상 환아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유는 물론 분유마저도 먹을 수 없어 아이와 부모 모두 큰 고통을 겪습니다. 매일유업 김복용 회장은 1999년 이 질환을 앓던 한 아이를 만나 특수분유 개발과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대사질환인 만큼 제품 개발과 공정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요.
일반분유에 들어가는 50가지 원료에 20가지 수입재료가 추가로 들어가며, 제품 생산을 위해 전 공정을 중단하고 오로지 이 제품만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특수분유 자체가 12종인 만큼 분류 등 섬세한 손길 역시 필요하겠죠?
실제로 특수분유 라인업은 일반분유 생산보다 10배는 더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산량보다 판매량이 적어 폐기하는 양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매일유업은 이렇게 매년 3-4억 가량의 손해를 보면서도 김복용 회장의 유언에 따라 특수분유 생산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단 한 명의 아이도 건강한 삶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합니다.
- 매일유업 창업주 故김복용 회장
손해를 보면서도 특수 분유를 만드는 이유는 '이 땅의 아이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이지만, 누군가에겐 독이 되기도 합니다. 페닐케톤뇨증(PKU) 환자 역시 평생 저단백 식단을 유지해야 하는 고충을 안고 있습니다. 신생아 6만 명 당 1명 꼴로 위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며, 평생 동안 저단백 식단을 유지해야 합니다.
CJ제일제당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직원의 건의로 시작하여 총 8억 원의 투자와 7개월의 연구 개발 기간을 거쳐 저단백밥을 출시했습니다.
저단백밥 역시 일반 햇반과 비교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배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쌀 도정 후, 단백질 분해에만 걸리는 시간이 무려 꼬박 하루. 거기서 끝이 아니라 특수 공정 과정 등을 거치기 때문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200여 명을 위한 저단백 제품이지만, 밥 맛은 그대로 구현해 벌써 누적 판매량이 150만 개가 넘어간다고 하네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기업들을 가리켜 우리는 '기업윤리경영'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3가지 사례만 가져와 봤어요. 사실 이 밖에도 정말 사례가 많습니다.
1. 남영비비안의 유방암 전용 속옷: 가슴 일부분 또는 전부를 절제한 환자를 위한 속옷
2. 정식품의 특수 전문 식품들: 당뇨, 신장 질환자를 위한 특수 전문 식품 생산
3. LG유플러스의 고독사 방지 IoT: 전기 사용 패턴 측정을 통한 고독사 예방
4. 스튜디오 크로스 컬처의 '효돌이': 치매 예방 AI 돌봄 로봇
5. KT의 동작 감지 전등: 동작 감지 센서를 통해 고독사 예방
6. 유한킴벌리의 이른둥이 기저귀: 인큐베이터 보살핌이 필요한 신생아를 위한 기저귀
7. 창작과 비평의 점자책: '책 읽는 손가락'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점자촉각 그림책 출시
정말 많은 사례들이 있죠?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마무리를 잘 못하는 편)
앞서 말했듯이 기업이라면 응당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죠.
하지만, 기업이 가진 가치를 한 수 앞으로 두었을 때, 나타나는 시그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볼보는 덕분에 '안전'이라는 단어를 가져갔으며,
매일유업은 '착한 기업'으로 자리 잡아 업계 1위에 이어 89%의 긍정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처럼 항목에 넣을 수 있다면 '가치순이익'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하수정 기자, 볼보와 사브, 다른 출발 같은 운명?,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45669.html
- 임경업 기자, 3점식 안전벨트, 에어백 개발... 안전 기술의 기준 세우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8/2020030800731.html
- 김흥식 기자, 볼보의 3점식 안전벨트, 100만 명을 살린 위대한 발명품, 오토헤럴드, http://www.autohera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01
- 정연수 기자, "매일유업은 훌륭하다"... 특수분유·親환경에 긍정평가 89%, 시장경제,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965
- 매일유업 공식 홈페이지, https://www.maeil.com/contribution/formula1.jsp
- 이서현 기자, 매일유업이 '특수분유'만들며 20년간 '손해 보는 장사'하는 이유, 에포크 타임스, http://asq.kr/74CIZXIzI
- 송화선 기자, 팔수록 손해... 그래도 만든다, 주간동아,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8541/1
- 전다희 기자, 팔면 손해지만 '생명을 살리는 제품', 이코노믹리뷰,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0631
- 변재현 기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 착한 기업을 소개합니다,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1VFD061L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