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원 Feb 14. 2023

수치스러운 사람들

다음 소희, 2022


들어가며

누구나 ‘%’와 그래프에 익숙하다. 행동의 근거로 삼을 때도 내 주장에 힘을 실을 때도 가장 편하고 강한 수단이다. <다음 소희> 속 수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칠판을 보면 빽빽함에 숨을 쉴 수 없다. 수치 뒤에는 사람이 있다.




수치 뒷면의 사람, 수치 앞면의 사람

 <다음 소희>는 신기한 구조로 진행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소희가 일련의 사건을 겪는다. 2부에서는 1부의 사건을 형사 유진이 조사하며 실은 관객에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들려준다. 그러나 시점은 다르다. 1부는 수치 뒷면의 사람인 소희의 시점을 그대로 따라간다.


소희는 학교의 추천으로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그곳에서 해지 방어율, 실적, 인센티브 등 수치로 평가받는다. 1부는 소희로 대표되는 수치로 평가받는 사람들 심지어 임금이 달라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개인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소희는 생존자였다. 가혹한 시스템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비정상적이란 걸 알았을 때도 생존법을 찾아내 이용한다. 그런 소희가 무너진 건 인격을 무너뜨렸을 때다.


2부에서 유진은 소희를 평가한 그 수치를 다루는 ‘수치 앞면의 사람(들)’을 조사한다. 만날 때마다 그들은 자신도 수치로 평가받는 ‘수치 뒷면의 사람’이라고 호소한다. 관객은 분노하지만 공허하다. '그래서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구지? 결국 시스템의 문제란 건가?'




수치

영화가 끝난 후 화도 나고 답답했지만 일단 부끄러웠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부끄러워한다. 유진이 콜센터와 본사의 직원을 차례로 쳐다볼 때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선생님도 그렇다. 교육청 직원도 자리에 앉지 못한다. 그 정도와 진정성은 다르지만, 소희의 이야기 앞에서 누구나 부끄럽다.


영화는 유진을 필두로 용감무쌍하게 진실을 파헤치며 오로지 책임을 묻기 위한 여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유진이 없어진 우리는 소희의 이야기를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유진의 여정의 끝은 우리를 작게 만든다. 


“그래서 뭐 다음은 교육부로 가시게요?”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어떤 조직이든 역할이 정해져 있다. 직장이 효율적으로 굴러가기 위해 위계를 합의한다. 그건 역할의 위계다. 그 역할이 결코 인격의 위계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랑 님의 <늑대가 나타났다>에는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요’라는 가사가 있다. 빵을 만들고 와인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할 뿐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 호소한다.


<다음 소희>는 소희가 일하는 콜센터 상담원뿐 아닌 주변의 모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주차장 안내원, 제조업 종사자, 먹방 스트리머 심지어 아이돌. 안 힘든 일이야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비교적 인격이 안전하지 못한 역할이 있다. 시스템이 정상적이라면 그 속의 인격 또한 안전해야 한다. 만약 시스템이 비정상이라면 더더욱 인격이 안전해야 한다.


소희가 열고 유진이 닫는 듯 보이는 이 영화는 사실 소희의 춤으로 시작해 춤으로 끝난다. 그 모든 일을 보여주고도 소희의 인격으로 맺는다. 비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는 못할망정 이준호 팀장처럼 인격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 인격 보호자가 다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소희가 무너진 건 새로운 팀장의 ‘인신공격’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강철의 연금술사>에는 ‘아랫사람이 더 아랫사람을 지키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역할로 바꾸면 조금 더 다가온다. 하지만 <다음 소희>는 그런 세상을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성공사례를 제시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시스템을 제시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을 그 시스템을 기다리는 데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개인으로서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수치 뒤엔 인격이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희의 이야기를 ‘그런 사건’으로 덮지 않는 데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