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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Feb 28. 2024

단식이 나에게 준 선물

단식 2일 차, 단식이 끝나더라도 이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단식원 입소 3일 차, 본단식 2일 차 날이 밝았다. 풍욕을 하고 글을 쓴 후 내려가 사과당근 즙을 먹었다. 금식 중 먹는 사과당근즙의 맛은 각별하다. 사과와 당근에서 이런 맛이 난단 말이야? 하고 놀랄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각종 화학첨가물과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혀가 미각을 회복한 것도 있지만 텅 빈 장에 들어가는 순수한 사과 당근즙의 맛은 100배나 강력하게 느껴진다. 내가 평소에 먹던 사과와 당근이 아니다. 신맛, 단맛, 짠맛, 쓴 맛 등은 물론이고 둘이 어우러져서 내는 맛의 향연이 입안을 감싼다. 사과와 당근 속에 내재해 있는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느낌이다. 단식이 끝나더라도 이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음식을 절제하고, 엄선하여 감사하게 먹어야겠다. 음식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이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오게 되었는지 감사하며 그 생명을 온전히 느끼며 받아들이고 싶다.




원장님이 오늘도 오셔서 돌며 몸상태를 물으셨다.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암'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무 중에는 나무의 주인이라는 살아서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주목나무라는 것이 있다. 식물은 인간처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더위나 추위, 위험과 상처에 대한 방어책이 없다. 그래서 천연적으로 이를 물리칠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이 있는데, 100년 된 주목나무는 그 방어 시스템이 특별하다고 한다. 100년 된 주목나무 4그루에서 추출한 텍솔이라는 물질이 있으면 암환자 1명을 완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중국에서 밝혀져 주목나무들이 마구잡이로 벌채되고,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이 텍솔이라는 성분을 인공적으로 배양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는 회사가 있어 관련 주식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배양은 실패했고, 암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성장한다고 한다. 아기 나무든 천년 된 나무든 똑같이 세포분열을 하고 새로운 아기세포를 생성한다. 나무가 굵어지는 것은 껍질 바로 아래의 형성층에서 새로운 세포를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나무는 생명이 하나가 아니라 가지(생장점), 뿌리(생장점), 형성층마다 수백, 수천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어 설사 한 두 개가 죽는다 해도 바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항산화 성분을 쉬지 않고 만들고, 새 살을 만드는 자연 치유능력, 외부의 위험에 대비하는 자체 저항능력도 타고났다고 한다.


인간보다 더 강력한 생존 시스템을 가진 나무가 대단해 보인다. 인간이 지구에서 멸망하더라도 나무는 살아남지 않을까. 100년을 사는 인간이 그나마 건강하게 주어진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그들과 공존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길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고.


아침 사과당근즙을 먹고, 모관운동과 붕어운동, 온열요법을 한 후 점심으로 당근씨앗즙을 먹고 작은 걷기 여행을 나섰다. 오늘은 단식원 뒤 숲이 아니라 남해 바래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마침 숙소 바로 근처에 바래길 2코스(비자림 해풍길)가 있어 이 길을 걷기로 했다. 총 9.3km로 길지 않은 길이지만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아직 단식 초기인데 너무 무리하느라 탈이 나지는 않을지, 아침에 마그밀을 먹어서 화장실이 급해지진 않을지 등. 하지만 걱정과 불안은 내려놓고 그냥 출발!


가방에 허기에 대비한 효소물과 생강차, 죽염소금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걷기 여행을 즐기는 나는 항상 중간에 점심 식사 해결하는 것이 곤욕이었는데 단식을 하니 간단하게 해결된다. 앞으로도 걷기 여행을 할 때 이렇게 미니 단식을 해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염과 효소물



남해 바래길의 시작, 이곳엔 벌써 봄이 찾아와 있었다. 봄꽃들이 기지개를 피고, 말간 얼굴을 저마다 내밀고 봄햇살을 즐기고 있다. 아직 조금 바람이 차긴 하지만 확실히 봄의 기운이 가득하다. 지난번에 원장님이 말씀하신 죽방멸치를 잡는 죽방렴 구경도 하고, 천천히 바닷길을 걸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기분 좋고, 온몸이 상쾌했다. 신체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다. 사실 단식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단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음식을 먹지 못하니 방 안에서 축 쳐져 누워만 있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걸으면서 나는 나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을 가득 집어넣고 든든하게 걸을 때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빈 속에 걸을 때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몸이 가볍고 에너지가 넘친다. 평소에는 만보를 쉬지 않고 걸으면 피곤함을 느끼는데 단식 중에 걸어보니 오히려 쌩쌩하다. 다만 계단을 오르거나 근육을 순간적으로 쓸 때는 힘이 달린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평지를 가볍게 걷는 것은 오히려 기분 좋고, 단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상의 에너지 상태로 이른 봄을 느끼며 바닷가길을 걸으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몸을 비우니 생각이 비워진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가 되어 아무 상념도 잡념도 들지 않는다. 잡념이 생겼다가도 이내 금방 바람에 실려 사라지고 만다. 길을 걷다 정자를 만나면 신발을 벗고 드러누워 햇살을 받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콧소리를 흥얼거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훌훌 비우고 걸으니 자유롭다.

자유. 단식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갈급을 벗어나니 내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자연과 세계와 하나 되어 그냥 흘러가는 느낌이다. 잡생각이 사라지니 뇌가 투명해지고, 내 몸도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단식을 하면 먹는 것을 참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단식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참 놀랍다.







종교적 단식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영적 고양감을 맛본다고 한다. 이것은 '케톤'이라는 물질과 관련이 있다. 케톤은 분해된 지방조직이 전환되는 물질인데 뇌나 근육 등에서 포도당을 대체하는 원료로 쓰인다. 음식을 끊어 뇌의 주 연료가 포도당이 아닌 케톤으로 바뀌면 불안과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과 의식이 또렷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줄어드는 단식일이 아쉬울 정도로 단식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남해 바래길을 모두 완주하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의 14000보를 3시간 동안 걸었다. 샤워를 하고 깨끗한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으니 그냥 숨 쉬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랑말랑한 팔도 만져보고 배도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몸에게 속삭였다.


"사랑해. 고마워."


단식이 나에게 준 두 번째 선물은 바로 내 몸을 사랑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세상을 걷는 기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이 쉬어지고 살아지는 감사함.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숨 쉬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행복감. 나를 향한 사랑과 고마움이 흘러넘친다. 단식이 나에게 준 이 선물을 감사하게 품고 남은 기간을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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