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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시옹 Feb 01. 2020

우한에 역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하니

신종 코로나 역병이 만들어 낼 결과는

출처: 형주에 역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하니


우한은 이전에 초나라 들어섰던 곳입니다. 진나라와 함께 전국칠웅의 7개 국가 중 하나였던 초나라가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전국시대 이후 진나라의 멸망 이후에 이 지대 인근에 터를 잡아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한쟁패의 항우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후한시대 우리가 아는 삼국지 시대에는 손견과 손권이 다스렸던 오나라의 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흔히 산둥성 인근의 중원이라 생각되는 큰 평야 지대의 길목이자 이 지대를 차지하면 그 평야 지대 정복을 준비하고 쉽게 차지할 수 있는 크나큰 지리적 이점이 있는 지역입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1911년 신해혁명의 시작지였고 중화민국의 성립과 전제적 군주 중심의 왕조를 무너뜨린 쑨원도 이 지역 출신입니다. 우한에서 시작한 만주족을 무너뜨리고 한족 왕조를 세우자는 우한 봉기는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근대 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조가 들어선 이후에는 중국의 바이오와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역이 이렇게 봉쇄되고 하루아침에 생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아이러니도 아이러니일 수가 없니다. 아마 도시 중에 이렇게 뚜렷하게 인상이 각인된 도시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왕조의 연장, 일본은 막부의 연장, 우리나라는 붕당의 연장, 러시아는 차르의 연장, 동유럽과 남유럽은 지역 귀족들의 도시 공화국의 연장


각 나라를 이해할 때에는 그 나라에 전통적으로 자리 잡힌 정치적 시스템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나라가 특별히 발전하지 않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깊숙이 자리 잡힌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넘어선 오랫동안 형성돼 문화로 자리 잡힌 정치 시스템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전통 왕조의 연장에 가깝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문명의 수많은 왕조들 중 현대 왕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예측을 훨씬 정확하게 해 줍니다. 근대 왕조의 시작은 중화민국이었고 그 왕조가 힘을 잃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교체되게 된 것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보다 더 큰 개념인 중화문명이라는 틀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틀 안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집어넣으면 앞으로 중국의 방향이 더 정확히 예측될 수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절대적인 중국인을 대표하는 그런 국가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잠시 중화문명을 대표하게 된 왕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틀이 있어야 상식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붕당에 기초한 민주주의 틀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중화인들)의 사고를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형주(우한)에 역병(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 돌아 민심(중국인들의 여론)이 흉흉하니


각성(중국 지방성들)의 백성(중국인)들이


성벽(중국 각 지방의 통합력과 단결력이 강화, 하나의 중국 의식이 약화)을 쌓기 시작하고


건장한 이들을 모아 무기를 들고(지방 군대 즉 지방 군벌의 탄생) 고을을 지키기 시작했으니


허베이 성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화북지역왕조인 즉 장강 이북의 중원이라 불리는 북쪽 지역 기반의 왕조라 볼 수 있는 중화인민공화정의 장강 이남 영향력이 통행이 크게 제한되며 약화)


고을 안의 하북인들을 모두 압송 하노라(하나의 중국이라는 인식의 와해 및 지역마다 뭉쳐야 할 큰 이유를 만들어줌)




형주 역병은 실제 삼국지에 형주(우한 지역) 쟁탈전에서 벌어졌던 실제 일입니다. 이러한 사건과 삼국지를 거치며 중국이 한 왕조가 완전하 분열되고 다시 제대로 된 하나의 중국이라 볼 수 있는 왕조(수나라)는 580년 그러니깐 이 사건 이후 거의 3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형성될 수  있게 됩니다.


중국이 유래 없는 전염병을 겪으며 이 시대에는 무의미하다 생각했던 지역적 경계에 의한 분열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공항은 실질적으로 통행이 매우 제한되었고 중국의 남북과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와 철도가 모두 우한으로 통하는데 그 도로들이 감염의 공포로 각 지역주민들에 의해 막히면서 사실상 하나의 중국 하나의 권역이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문제도 중국의 큰 고민거리였는데 베이징에서 홍콩으로 대규모 인적 개입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우한을 거쳐야 하는데 우한을 거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중국은 지역색으로 중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부 지역을 진압할 때에는 남부지역 공안을 동부 해안지역을 진압할 때에는 서부 내륙지방 공안을 동원하는 식으로 지역으로 분리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근데 이 우한 사태로 북남부지역의 교류가 막히고 또 동서부 지역의 교류가 막히게 됩니다. 따라서 이전처럼 지역적으로 공안을 배치해 지역감정을 억누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제 홍콩을 제압하려 하면 이전처럼 북쪽이나 내륙지방 출신의 공안이 아닌 광둥 성 지역의 공안을 동원해야 합니다.

홍콩과 광둥 성은 다른 지역이지만 그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아 자식은 홍콩에 부모는 광둥 성에 있는 경우도 많고 사촌은 광동 동생은 홍콩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광동지역 공안들이 홍콩에 친구나 친지가 있는데 중국 정부가 그 공안들에게 홍콩의 자기 친구와 공안을 때리고 제압하라고 지시하기 시작하면 중화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던 중국 공산당을 정당한 왕조 세력으로 받아 들 일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경우 중화문명이라는 틀과 이민족에 여러 번 점령당해 본 경험 덕분에 우리보다도 더 유연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산당 왕조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의외로 중국인들은 우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왕조 교체를 이루려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중국의 각 성은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하거나 더 많습니다. 당장 광둥 성 만 봐도 인구가 1억 후베이성은 5천5백만 명에 육박합니다. 만약 각 지역으로 가는 도로와 철길이 막히면 사실 여러 개로 분리되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중국입니다. 또 도로와 철길이 막히면서 베이징의 통제력이 제한되는데 이럴 경우 소위 그 지역의 토호들이라 불리는 세력이 베이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 구축을 하기 아주 좋은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홍콩 사태로 이미 어느 정도 기름이 부어져 있다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각 지방이 끊어지며 각 성들끼리 알아서 자급자족을 시작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공산당 없이 안될 줄 알았는데 자본주의로 구축된 각 성들의 공장과 시스템으로 운영하다 보니 자기들이 직접적으로 먹고사는 것에는 공산당이 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중앙당이 방역에 실패했는데 지역 세력이 전염병을 막고 자급자족까지 성공한다고 하면 그 지역의 주민들은 이제 자신들의 왕조를 중국 공산당에서 그 지역 세력의 왕조로 바꿔도 된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중앙당이 민감하게 받아들여 각 성을 더 강하게 통제하려 하면 반대로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무능한 정권(세력)이 뭔데 각 성에게 명령 질이냐라는 반발에 휩싸이고 이는 중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왕조 교체의 발단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온갖 디지털과 카메라 감시가 만연해진 중국에서는 이러한 억압에 눌려진 감정이 관성을 크게 튀어나 갈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것도 못해주고 공갈협박에 소리 지르는 무능 투성이 세력은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중국인들은 각 성마다 지역마다 중앙의 통제 없이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경험을 체득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단련된 세대는 결국 시간이 지나서 무능하거나 쓸모없는 정권을 무너뜨리는 주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우한 사태와 홍콩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연계적 발화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질병에도 잘 대응해 해쳐나 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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