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시옹 Feb 02. 2020

세대론과 젠더 담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신앙 공동체라 불리는 교회에서의 경험

왜 신앙 공동체라 불리는 교회를 다니고 시간이 지나 이것저것 하다 보면 소위 '세상' 사람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신기한 시선을 받게 된다.


왜 저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없는데 저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찮기만 한데


근데 이러한 신기한 시선은 곧 '이용해 먹기 딱 좋은 대상'이라는 프레임으로 귀결된다. 교회에서는 이것저것 다 하니 세상에서 소위 '자기들한테 이익이 될 만한 것'들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 사람들이 하겠거니 하면서 '무슨 돈이라도 맡겨둔 마냥 명령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태에 화가 나서 무시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저게 무슨 태도냐"라는 적반하장 격 태도를 목격하게 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자기 아래라고 생각될 때 이러한 행태는 더 심해진다.


근데 그렇다고 교회가 또 소위 편안하고 안락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작은 교회로 가면 갈수록 혼자서 거의 3~4명의 업무를 끌어안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목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연로하고 은퇴한 소위 '옛날 사람'이라 업무적 분담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그저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안다. (실제로 해결이 된다. 그 문제를 우리같이 그 아래쪽 실무진들이 일을 더 해서 해결된다). 그럼 또다시 무언가 해보자는 식으로 일이 늘어나는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소위 실무진 일들을 맡다 보니 왜 여성분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하는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남성한테 잘 보이려 하면 착취당하다 죽고 무시하고 저항하면 온갖 조리돌림에 품평을 당하며 인신공격을 한다. 거기서 뭐 실수라도 하면 무슨 하이에나가 고기라도 발견한 듯 물어뜯는다.

이 남성이라는 단어를 우리 윗세대 남성으로 바꾸면 동일한 상황이 우리 20대 남자에게도 벌어진다. 사실 우리야 뭐 육체적으로는 밀리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또 각자 다르지만 이 정도이지만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은 상당했을 듯싶다 (짐작이 간다고 해야 하나). 물론 내 성격 자체가 그렇게 무리 짓는 편도 아니고 남한테 크게 관심을 가지는 편이 아니라는 조금 예외적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다. 그래서 사실 미투 운동으로 우리 윗 세대 남자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회사나 업무에서는 민주화 세대에 치이다 교회 같은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산업화 세대에 치이는 20대의 군상이 그대로 옮겨와 있다


세상에서는 롤, 피파만 주야장천 해대며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20대 남자로 욕먹고 (본인은 축구도 안 좋아하고 게임도 안 좋아한다. 더러운 일도 필요한 일이면 책임 소재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교회에서는 20대가 드물고 또 수적으로도 다른 세대에 비해 밀려 진짜 잘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른 세대가 차지해 가보지도 못하고 육체노동, 즉 그냥 막일 같은 일만 주야장천 한다. 맞다, 여기서 그 육체노동은 없어도 되는데 교회 윗분들이 불편해서 시켜서 만들어진 일이 대부분이다. 꼭 필요한 건 진작에 끝내 놨다. 


학력이 어떻든 경제력이 어떻든 성격이 어떻든 어떤 일을 잘하는지와 관련 없이 20대가 무조건 육체노동을 맡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여성들이 결혼만 하면 그 어떠한 조건에 상관없이 가정주부 역할 겸업을 강요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거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 그냥 사회 깊숙이 부조리가 관습화 되어 있는 것이다).


필요한 일은 진작에 알아서 한다. 문제는 윗 세대들이 자기 편의에 의해 시켜서 만들어지는 육체적 일이다. 교회는 인력이 한정돼있는데 예배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다. 특히나 저출산으로 새 신도가 더 줄어서 필요 없는 일을 쳐내지 않으면 예배 그 자체가 문제가 생긴다. 또 과도하게 일을 하는 것이 관습화 되면 그걸 본 새 신도들은 오고 몇 주 지나고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끼리 알아서 꼭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진행하는 것이다. 근데 이러한 규칙을 아무런 상황에 대한 이해 혹은 노력 없이 그냥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니 하라고 한다. 그 일을 해서 예배에 차질이 생기면 그건 또 그거대로 훈계하는 것 마냥 문제의 본질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망각한 체 실무진들한테 돌려서 뭐라고 한다. 이걸 보고 또 그렇게 우리 또래 실무진들이 점점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러고는 또 그 신도가 오지 않았다고 기도하자고 종용하는 것을 보면 마음 한편에 깊은 응어리가 질 때가 있다.


하나님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근데 우리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원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할 수 있지 않는가? 교회가 그 정도의 합리성과 계몽성은 지녀야 하지 않는가?


저출산으로 나이 많은 감독은 늘어나는데 선수가 없다. 나이가 많다고 다 감독인 것은 아니다. 나이가 많아도 소위 서열의식 없는 사람이면 그 누구도 그를 옛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깊은 나이 서열 문화가 나이 많은 사람이 모두 감독이 되어 버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팀에 선수는 10명이 안되는데 감독. 코치는 20명에 육박한다.


이러한 환경을 미리 군대에 가서 겪은 20대 남성은 대부분 자기에게 일 시키고 부려먹을 것을 아는 곳에 잘 안 가려고 한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그 인력적 공백을 여자들이 맡는다. 남자가 없으니 나이 많은 남자가 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걸 여자한테 그것도 5~60대의 연세가 드신 여사님들한테도 일을  맡긴다.


나도 사실 잘 안 하다가 자취하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대부분 직접 하게 되었고 그런 소위 '분위기를 낸다라고 불리는 일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너무 잘 깨달아서 일을 안 만드려고 한다. 근데 그걸 모르는 소위 윗 세대 남성들은 "그거 그냥 그거 조금 옮기고 치우면 되지 그걸 귀찮다고 하기 싫어하냐?"라는 내가 들었으면 멱살 잡았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들에게 하더라. 그거 조금 옮기고 치우는 거 말고도 지금 분위기 내려고 하는 일 자체가 원래 업무량의 몇 배의 스트레스와 강도라는 것을 모르나 보다. 일을 벌이는 사람은 재밌지만 치우는 사람은 그저 또 다른 지옥이라는 것을 모르나 보다. 가끔 눈치는 있는지 툴툴대며 하는데 기름통 200ml짜리 하나 치우고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여기 왔냐"라는 말을 할 때에는 내가 "그럼 당신 학력, 경제력, 외모 다 따져서 한번 정해볼까?"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소위 서열에 밀리니 내세울 것이 나이 서열 밖에 없는 베타 메일 (Beta Male) 남성이 제일 심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교회에서는 마치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증오하면서 교회에 다니며 신도의 신앙심을 해치는 '적그리스도' 마냥 바라보는 품평을 할 것이 뻔 하기에 항상 잊으려 한다. 근데 하나님이 현상적 사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기도만 하라고 하셨나?


하나님은 늘 기회를 주었고, 행동하는 믿음 있는 인간이 그 기회를 잡으며 하나님의 의가 이뤄져 왔었다.

교회가 나이가 들어간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나이 서열 문화를 해결하지 못한 체 나이가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진취성, 합리성, 계몽성이 없어지고 있다.


교회도 사람 사는 공동체이고 교회도 교회만의 소위 세대론과 젠더 담론을 아우를 조직 담론이 필요하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으려면 더 합리적이고 포용성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세상과 독립되어 진취적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줘야 할 교회가 세상의 골칫거리 혹은 암덩어리로 인식되어 수십 세대를 걸쳐서 겨우 만들어 온 신앙이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왜 그리 교회나 종교 같은 것에 그리 매몰되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안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난 근데 진짜 미안한데 그게 안 된다. 교회가 뭐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이득이 가는 것도 뭔가 이성을 많이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근데 내가 살아왔던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이 존재하고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고 명확하게 비춰주고 보여준다.  지점이 아마 내가 소위 비 신앙인과 신앙인으로 갈라지는 경계이다. 하나님이 죽으라고 하면 소위 이제 세상을 뜰 때가 되었다고 하면 로또 당첨되어 수천 수 조원에 당첨이 되어도 세상을 뜰 것이다. 여긴 내가 잠깐 머무는 환승 정류장이지 내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약에 절어 사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겉으로는 똑같다. 그저 그 머릿속에 담긴 생각의 틀이 다를 뿐이다.




요즘 점점 더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기존의 신앙 공동체는 고령화되며 진취성이 없어지고 20대마저 떠나기 시작하며 세상에 빛을 비추기는커녕 스스로 유지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으로는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이제 세상의 책임과 억압의 굴레를 벗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주신 땅에 예쁜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안에도 이쁘게 꾸미고 기타 연주하고 이것저것 만들며 살고 싶다.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맘충'이라는 단어 뒤에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