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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Apr 30. 2021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

2018년 12월의 기록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놀랍게도 찍은 사진은 한 장 뿐.

 내 오랜 로망이었던 크리스마스 캘린더. 12월이 시작되는 1일부터 24일까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매일 작은 선물을 열어보는 달력이다. 크리스마스가 그저 특별한 휴일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구하려고 하니 꽤 가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아주 큰 행사인 이곳에선 구하기도 아주 쉬웠고, 가장 기본인 초콜릿부터 화장품까지 종류가 너무 많아 결정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의 픽은 록시땅의 크리스마스 캘린더. 화장품이라 실용적이면서 프랑스 제품이라 특별함 한 스푼 더. 할로윈 때부터 사두고 12월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11월 한 달간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어떻게 버텼는데 막상 뜯기 시작하니 궁금해 미칠 노릇이다. 하나하나 열어봐야지 매일같이 다짐하지만 12월에 일주일간 파리에 없을 예정인 날들은 기회를 노리며 야금야금 열어보는 중. 매일매일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대하며 설레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요즘이다.


See you, Everybody


 첫 해외 생활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9월, 프랑스가 익숙해졌던 10월, 유럽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에 아쉬웠던 11월, 그리고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12월이다. 우리나라보다 늦게 시작해 일찍 기말을 치는 프랑스의 학교. 시험이 너무 싫어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가도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르는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운 요즈음이다. 많은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더 정이 들어 버렸는걸. 다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면 언젠가 새로운 장소에서 반가운 얼굴로 만나는 장면들을 상상해본다.

 A bientot!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방법


 자다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열어보는 그런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왠지 25일 아침은 선물을 기대하게 된다. 세상 어딘가엔 분명히 산타 할아버지가 있을 거라고 믿는 나에게 크리스마스가 아주 큰 행사로 여겨지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는 이 기회는 정말 큰 행운이다. 많은 행사들 중 가장 최고는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 따뜻한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여기저기를 구경하면 정말 유럽의 중심에서 크리스마스를 느끼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먼저 즐겼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부다페스트 곳곳에 있던 마켓이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많이 팔던 그곳에서 깃털이 달린 잉크 펜과 잉크를 샀다. 돈을 더 환전하면 애매할 것 같아 그냥 두고 온 양털 양말과 트리 장식들, 감성적이었던 그림엽서들이 가끔 생각난다. 

잉크의 최후


그 다음은 튈르리 정원의 크리스마스 마켓. 파리에서 즐겼던 첫 번째 마켓이다. 부다페스트의 마켓들은 기념품들 위주였다면 이곳은 놀이기구 위주다. 평소의 튈르리 정원에선 전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대관람차, 공중그네, 스릴러 귀신의 집. 심지어 아이스링크까지 들어섰다. 풍성한 먹거리는 덤. 가까워서 자주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번 쓱 훑어보고 왔는데 시위에 파업에 기말고사가 겹쳐 아직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다. 다음에 갔을 땐 놀이기구를 열심히 타고 오리라.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 시험을 치기 직전에 언니한테 라데팡스 크리스마스 마켓 갈래?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콜. 저녁 시험까지 마치고 종강한 나 그리고 아직 종강하지 않은 언니와 함께 라데팡스 크리스마스 마켓을 다녀왔다. 놀이기구는 없었지만 마켓의 면적은 왠지 더 큰 느낌. 하지만 크리스마스 마켓보다는 그냥 시장 같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생각보다 마켓이 일찍 닫아 아쉬운 마음에 소원을 적어두는 트리에 한글로 쓴 쪽지를 끼워두고 왔다. 


첫 라데팡스 나들이


시험이 끝나고 찾아갔던 라데팡스.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간 곳이었지만 나의 첫 라데팡스 나들이였다. 파리 시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라데팡스. 파리가 아름답고 오래된 건축물을 가진, 골목 감성의 도시라면 라데팡스는 신도시다. 내가 좋아하던 도시 감성. 파리의 골목들을 누비며 골목 감성이 진짜 내 취향이구나 했지만 라데팡스를 본 순간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숨이 뻥 뚫리는 느낌. 비록 밤에 가서 신 개선문에는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불 켜진 고층건물을 보는 순간 숨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골목 감성도 내 취향이긴 하지만 도시 감성 역시 나의 곧은 취향이었음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위해 밤에 찾은 라데팡스였기에 많은 것을 둘러보진 못해 아쉬웠다. 첫 번째 학기엔 학교가 끝나면 오페라 역으로 가곤 했는데 다음 학기는 라데팡스가 될 것 같다.


12월 23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

크리스마스를 이틀 남겨둔 12월 23일. 아직 돌아보지 못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포르투갈을 갔다가 1주일 만의 파리라 파리의 공기가 그립기도 했거든. 나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열리는 마켓들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둘러본 곳은 샤틀레 역과 hotel de ville, 노트르담 성당이었다. 그중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곳은 노트르담. 노트르담 성당 맞은편, 셰익스피어 서점 옆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열린 마켓이었는데, 가장 작은 규모였지만 다른 마켓에서 본 적이 없었던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다. 


Hotel de ville은 상점은 거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잘 꾸며져 있었고, 샤틀레 역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그저 그랬다.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가와 마켓의 막바지라 상인들이 많이 빠져서 휑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츄러스를 사 먹으며 크리스마스 마켓 투어가 끝이 났다. 


파리의 크리스마스 마켓 중 최고는 역시 튈르리 정원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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