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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r 06. 2021

'그의 기쁨과 슬픔'이 아닌 <그의 슬픔과 기쁨>



2013년 가을, 정혜윤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도중 그녀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인문학 열풍이 우려스럽다. 인문학 공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상품으로 만드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와인을, 인상파와 르네상스를 배우는 게 인문학인가? 평생 몸을 움직여 먹고 살아온, 팔이 두껍고 과묵한 사내를 인터뷰했다.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인생과 노동에 대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이게 바로 인문학이지! 하며 감탄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인문학을 '인간과 세상은 무엇인가?'란 커다란 질문에 답하려는 오래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란 질문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지혜로운 이들이 답을 구하려 애써온 질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적이며 통찰이 담겨있는 책들은 이 질문이 대한 나름의 대답을 담고 있다. 정혜윤씨의 감탄처럼 나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구술이 진정한 인문학에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런 존재인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란 질문에 자신의 삶과 선택을 통해 대답해야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혜윤은 쌍용차 선도투 노동자들과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주의깊게 듣고 있다고 느꼇던 걸까? 노동자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 , 학교 생활, 쌍용차에서 한 일, 파업과 투쟁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나눈 대화를 따라가는동안 잠시나마 수십명의 삶을 언뜻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쌍용차 노동자 각자에겐 고유한 성격과 살아온 삶이 있었다. 투쟁에 참여한 이유와 느낀 감정과 고통도 저마다 개인적이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노동자 3000명 구조조정'이란 삭막한 서술에는 담어낼 수 없는 '개인'이 있었다. 노동자 3000명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가꿔왔을 테지만 회사의 가차없는 해고로 산산이 부서졌다.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목적은 기술빼먹기였다. 그들은 헐값에 쌍용차를 인수한 후 자동차 기술과 핵심연구인력 등 알맹이만 중국으로 빼갔다. 쌍용차가 거추장스러워진 상하이차는 분식회계로 쌍용차의 재정상태를 조작해 부실기업으로 둔갑시켰고, 기업 매각에 적절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자 3000명과 그 가족의 피말리는 고통이 시작된 이유는 단순했다. 상하이차가 이윤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자본이든 자신을 더 크게 부풀리는 것외에는 관심이 없다. 사십대 중반의 노동자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 자본은 개의치 않는다.



쌍용차 청문회가 열렸을 때 진압을 지시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증인석에 출석했다. 한상균 노조위원장의 검게 그을린 얼굴과 지친 표정, 후줄근한 노조조끼가 경찰청장의 번지르르한 얼굴과 고급양복에 대비됐다. 고시를 통과해 엘리트의 삶을 살아온 그는 땀에 젖은 몸으로 하루종일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감각을 모를 것이다. 반찬값을 걱정하는게 어떤 기분인지 모를 것이다. 쌍용차 시위진압건으로 이명박 정권에서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그는 시종일관 노동자들을 폭도로 단정짓는 발언을 해 노동자 가족들의 가슴에 재차 칼을 꽂았다.



노동자들이 도장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시작했을 때 사측은 경찰력과 용역깡패를 동원했다. 유난히 비도 오지 않던 무더운 여름, 회사는 갈증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물과 음식물을 전달하려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막았다. 야간에는 헬기를 띄워 파업중인 사람들이 잠들 수 없게 했다. 헬기로 공중에서 최루액을 살포하고, 사람을 향해 테이져건을 쏘았다. 헬기에서 옥상으로 투입된 경찰 한명이 무방비 상태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곤봉으로 힘껏 내려쳤다. 바닥에 뒹굴며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누군가를 경찰 세명이 둘러싸고 곤봉으로 마구 때렸다. 그런 짓을 해도 뒷탈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 모습을 보면서 광주가 생각났다. 80년 5월, 팬티만 입고 무릎을 꿇은 채 곤봉을 맞던 어떤 남자가 떠올랐다.



80년의 광주처럼,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으로 이명박 정부는 하나의 본보기를 남기려 했다. 파업하지 마라, 저항하지 마라. 자르면 그냥 잘려라. 길러지는 짐승처럼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따라라. 그렇지 않으면 특공대가 휘두르는 곤봉을 맞게 될거다. 산산조각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80년의 광주의 시민들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파업중 규율을 만들어 그들 스스로의 생활을 통제했다. 복직후 자신들이 돌아갈 공장이기에 작은 장비 하나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환기도 되지 않는 공장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냈다.



 사측과 국가의 야만적 대응은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산산조각냈다. 해고로 인한 생활고는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한편 그 고통의 시간동안 노동자들의 마음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해고투쟁의 끔찍한 시간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내적 성취를 이뤘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던 어떤 이는 타인의 아픔을 제것처럼 여기게 됐다. 그들은 고된 투쟁의 시간을 동료를 생각하며 견뎠고, 자신의 복직만큼이나 동료의 복직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됐다. 생각하는 걸  싫어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다는 한 노동자는 투쟁을 하는 동안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순응하며 살았던 이들은 투쟁이후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그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라 '그의 슬픔과 기쁨'인 것은 그들이 슬픔속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몇년전 쌍차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시 분노했던 나는 그 아픈 이야기를 차츰 잊어갔다. 일상에 매몰돼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쌍용차는 너무 거대한 일이라 나로서는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같은 부끄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너무 고통스러워보여 이 일을 생각하기가 꺼려졌다. 사실 커다랍고 어려운 문제라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건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철탑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다주었고, 그저 철탑밑에 오래도록 머물다 떠나기도 했다. 쌍차노동자들이 오랫동안 버티는데에는 시민들의 작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연대가 큰 힘이 됐다. 작다며 무시했던 낼 수 있었던 마음은 결코 작은게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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