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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Sep 24. 2024

비틀즈를 들으며 달려라

어제 아침에 주방에 서 있는데 문득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심하게 아프진 않았는데 발목이 구부러질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 신경이 쓰였다. 어젯밤에 달리기를 했지만 무리하거나 접질리진 않았다. 아마도 심리적인 요인일 것이다. 작년에도 별 까닭 없이 발목이 아파서 삼주 정도 끙끙댔다. 생활에 존재하지만 내가 정확히 파악 못한 마음의 부담과 혼란이 통증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이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생각할 시간이 잘 안 난다.


오늘 저녁에는 좀 쉬어야 했다. 지난 주말에 밀린 일을 처리한다고 제대로 쉬질 못했다. 어제도 퇴근하고 글쓰기수업을 한다고 쉬지를 못했다. 이렇게 계속 못 쉬면 퓨즈가 나가버려서 놀지도 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오늘도 지친 정신과 몸으로 근근이 하루를 보냈다. 그렇지만, 쉬고 싶지만 달리기를 안 할 순 없다. 건강이 망가진 적이 있어서 하기로 한 운동을 빼먹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1년 넘게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다. 


집 이곳저곳을 뒤지다 간신히 발목보호대를 찾았다. 오른 발목에 발목보호대를 감고 운동화를 신는다.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수강하고 있는 온라인 강의 음성파일을 들으려다 그냥 음악이나 듣기로 한다.


걷거나 달리면서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100%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같은 노래라도 가만히 앉아서 들을 때 느끼는 감흥과 큰 차이가 있다. 아마도 몸을 움직일 때, 특히 달릴 때 우리는 자기 몸을 뚜렷이 자각함과 동시에 자기 몸을 의식하지 않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사는 낙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인생을 참듯이, 견디듯이, 숙제하듯이 사는 사람이다. 뇌에서 도파민 나올 데가 별로 없는데, 달리면서 비틀즈 노래를 듣는 순간은 내 생활에서 몇 안 되는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는 순간이다. (사실 여러분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이 비틀즈 음원은 내가 10년 전에 웹하드에서 2000원 정도의 포인트로 불법다운로드한 것이다. 비틀즈의 전 앨범을 다운받아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가 엠피3에 담았다가 옮기고 옮겨 지금의 폰까지 오게 되었다. 비틀즈의 노래는 정말 신나지만 그 신남이 중용을 벗어나지 않는 절제된 신남이다. 그래서 듣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난 영어를 잘 몰라서 가사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비틀즈가 전달하고자 했던, 신나서 몸을 흔들고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느낌은 여러 번 느껴보았다.


오늘의 앨범은 Hard days night 다. 전주 부분의 "챙~" 기타 소리가 울리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달리면서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일주일정도 산책을 안 한 기운 넘치는 개처럼 앞으로 마구 달려 나가고 싶어 진다. 나는 목줄을 당기는 주인처럼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6-7킬로를 뛰어야 하는데 지금 마구잡이로 달려버리면 나중에 뛰기가 어렵다. 


먼 거리를 달릴 때는 호흡을 일정하게 하며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음악을 들으면 자꾸 드럼소리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게 된다. 발을 내딛는 것도 나도 모르게 드럼소리를 따라간다. 비틀즈의 박자로 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워낙 좋아 입이 저절로 웃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렇게 툭툭툭툭 걸음을 내딛다 보면 달리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와 음악만 남는 순간이 있다. 아니, 음악만 남는 순간이 있다. 나란 사람이 그대로 워크맨이 된 것 같다.


산책로의 체육공원까지 갔다가 뒤돌아 달려온다. 이때쯤이면 지치게 되는데 비틀즈의 새로운 노래 Can`t buy me love 가 재생되니 다시 신이 나고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나오고 달릴 힘이 난다. 이래서 중2 학생들이 '음악은 나라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했던 것일까? 평소였다면 지쳐서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을 때인데 음악의 힘으로 신나게 달려간다. 산책하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를 지나치고 리트리버를 데려나온 여성을 지나치고 잡초밭을 지나치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달리기 전에 속도 더부룩하고 발목도 아팠는데 어느새 그런 건 까무룩 잊었다. 땀이 잔뜩 나서 티셔츠가 등에 찰싹 달라붙는 게 느껴진다. 그제부터 비가 와서 힘차게 흐르는 회야천 옆을, 역풍을 맞으며 힘차게 달린다.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는 지치고 심장이 쿵쿵쿵쿵 뛴다. 살아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게 참 기분 좋은 일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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