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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Nov 22. 2024

일단 붙고 생각하자(2)

이주쯤 지나 다시 수험서를 보려는데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펼쳐 글자를 읽으려 하면 명치가 조여오며 진져리가 쳐지고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억지로 참고 책을 보려 하면 갑갑함이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소설책을 읽는 것도 힘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물리적 증상 때문에 책을 볼 수가 없었다. 한 주, 두 주후에 다시 수험서를 봐도 여전히 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책을 볼 수 없다면 더 이상 시험준비를 할 수 없다. 내 수험생활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이렇게 끝났다.


무기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이 즈음이었다. 이전까지 뭔가를 시도하고 잘 안 되는 경험을 수차례 해왔지만, 그럼에도 뭐든 늘 열심히 해오긴 했다. 군무원 시험 준비할 때도 몸은 계속 아팠지만 꾹 참고 꾸역꾸역 노력은 할 수 있었다. 시험에 떨어지고부터는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게 어려웠다. 한 시간쯤 뭔가를 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집중도 안 돼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하려 하면 명치의 갑갑함이 심해졌다. 몸에 힘이 없는 건 아닌데 내부의 기력이 고갈된 느낌이었다.


이 무기력은 내게 무엇을 말해주려는 것이었을까? 왜 군무원 시험을 치고 나서 이런 증상이 생겼을까? 이전에는 직업을 얻는 게 뜻대로 안 됐을 때 몸이 '아프기'만 했다. 무기력증상까지 더해진 건 왜였을까?

은행취업을 1년 넘게 준비하다 어렵다고 생각해 입사원서 한번 안내 보고 포기했다. 처음 준비한 소방공무원 시험은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나타나 몇 개월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군무원시험은 몸상태는 안 좋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시험까지 쳐본, 끝까지 노력해 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리 아프고 속 안 좋은 걸 견뎌가며 끈덕지게 책상 앞에 붙어있었다. 화장실 문에 암기거리를 붙여놓고 양치할 때마다 외웠다. 일주일에 반나절만 쉬며 책상 앞에 붙어있었는데도 성적은 합격선에 한참 못 미쳤다. 나는 이 시험에서 '나는 정말 정말 열심히 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체감한 게 아니었을까?


이제까지는 뭔가를 열심히 하다가 제풀에 그만두거나, 몸이 아픈 증상이 나타나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면 이번에는 노력을 끝까지 해보았지만 안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마음깊이 자리하고 있는 '해봤자 안된다'는 명제를 실제 체험으로 확인한 셈이다. 해봤자 안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현실에서 명백하게 확인했다면 이제 뭔가를 시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기력은 내가 의미 없는 노력을, 노력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어준다. 무기력이 생겼기 때문에 뭔가를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해봤자 안된단 걸 확신하니,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니, 무기력한 증상이 생긴 게 아닐까? 어차피 안될 텐데 뭔가를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냥 무기력하게 가만있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겪어왔던 통증은 아무 맥락 없이 나에게 떨어진 인과관계없는 불행이 아니었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진로를 탐색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 번듯하게 보이는 직장에 들어가려 한다. 그 직장에 들어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알지 못하고 제대로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이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는 내가 원했던 것은 어차피 번듯한 직장인이라는 간판이었기 때문이다. 그 직장에 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도 아니다. 나는 취업을 간절하게 바랐다기보다 번듯한 간판을 가지지 못할까 봐,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손가락질받을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취업을 간절하게 바라지 않았다면 내가 간절하게 이룰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게는 간절하게 바라는 무언가가 없다.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돼 있는 나는 취업준비를 열심히 한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가 아파와 취업준비를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 된다. 몸이 아픈 까닭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해봤자 안된다'는 생각이 나의 '죽어라 열심히'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해봤자 안된다'는 살아오며 경험으로 체득한 나에 대한 확신이다. 해봤자 안 될 것이라 믿으므로 내가 하는 노력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의미 없는 노력을 하지 못하도록 몸이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스스로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몸이 아픈 것을 신체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건강을 회복하려 병원과 운동센터를 들락거린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대한 생각이 없는 채로 맹목적으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목표를 좇고, 한편으론 그걸 이룰 수 없을 거라고 믿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 허우적댄다. 나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몸 아픈 것에만 주목하고 병을 고치려고 애썼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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