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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Mar 01. 2022

동생이 졸업을 했습니다

동생에게 바치는 헌사

며칠 전 동생이 졸업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졸업을 했다.

동생이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대학원을 가겠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동생의 학창 시절도 이제 끝이 난다.


동생도 올해로 어느덧 29살이다.

졸업을 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나이.

본격적으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나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나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여전히 나에게 어린 아이다.

철이 더 들고 덜 든 것의 문제도 아니고

나이의 문제도 아니다.


아마 동생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나에게 어린 나이의 기준은 동생의 나이이다.


제법 어른스러운 주변 동생들의 나이가

친동생의 나이보다 어릴 때

‘OO이보다도 어리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내가 동생을 마냥 어리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과 동생이라는 관계가 긴 세월을 거쳐 형성한

잠재된 의식으로 인한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동생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동생과의 관계를 물을 때,

나와 동생은 다른 형제들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것 같고

내가 동생을 때리거나 심하게 괴롭히진 않았다 말하곤 했다.

하지만 문득 스스로를 미화시키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럴 수 있겠단 확신도 생겼다.




기억 1


어릴 적 목욕탕을 가면

아버지께서는 목욕 후에

단지우유*를 사주셨다.

* 아버지는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이렇게 불렀다.


바나나우유는 정말 맛있었고

항상 하나로는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에게

독이 들어있는지 먼저 먹어보겠다며

동생의 바나나우유를 조금 뺏어 먹었다.

그리고 나의 바나나우유는 온전히 내가 다 먹었다.


참 순수한 어린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지,

다 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사기이다.

형의 이런 뻔한 거짓말을 동생은 어떻게 참은 것인지,

형의 말이라 정말로 믿었던 것인지,

나의 못된 심보에 그리고 동생의 순수함 혹은 착함에 놀랄 따름이다.




기억 2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이 3학년이었던 즈음

우리는 WWE 프로레슬링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교 뒷문에 있는 봉봉*에서만큼은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제법 멋지게 선수들의 기술을 따라 했다.

* 대구에서는 트램펄린을 봉봉이라 불렀다.


다만 항상 기술을 당하는 쪽은 동생이었다.

내 쪽이 덩치가 더 크고 힘이 더 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동생도 기술을 써보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프로레슬링 과몰입은 집으로까지 이어졌고,

부모님의 침대도 어느새 우리만의 링이 되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동생에게 파워밤이라는 기술을 시전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금 실수가 있었고

매트리스로 떨어져야 할 동생의 등이

침대 프레임으로 떨어졌다.


동생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고,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보였어야 할 적절한 행동은

걱정과 사과였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무마하고자 빨리 일어나라고 했던 것 같다.

못되고 이기적인 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위험하게 부딪혔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간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때 느낀 동생의 통증과

그것보다 더 짙고 깊은 기억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외에도 형이라는 지위로

동생을 아프고 힘들게 한 기억들이 더 떠오른다.

마냥 동생을 어리고 약하게 바라보았던

내 모습이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항상 나보다 어릴 것이라 생각한

그 동생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졸업을 했다.

더 이상 어린 동생이 아니다.

사회에서 어엿이 제 몫을 할 시기이다.


나의 29살은 일복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행복하고 가끔은 슬퍼도 했다.


내 동생의 29살은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고민도 걱정도 불안도 많을 시기겠지만,

지나 보면 제법 괜찮게 보냈다 회상할 수 있는

잔잔하게 멋진 그런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제 내 동생도 정말 다 컸으니깐.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아니 보지 않았던

동생이 아닌 성숙한 인격체로 바라보아야지.

(무언가를 뺏어 먹기엔 동생이 이제 훨씬 더 잘 먹는다. 입맛도 별로 없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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