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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성 May 02. 2021

그리고 다시, 봄

3개월. 마지막 글을 쓴 흔적을 더듬어 보니 그만치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요약하자면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첫 학기가 지났고, 처음으로 교회에서 일을 시작했고 여러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 헤어짐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돌이켜 보면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처음 글을 쓰기로 했던 이유는 새로운 곳에서 나에게 오는 경험과 느낌을 기억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후로 당장 오늘과 내일을 사느라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기약 없이 미루기만 했었다. 이 딜레마에서 깨어진 것은 정말 의도치 않은 일이었는데, 얼마 전 교회에서 받아든 작은 병안에 담긴 이름 모를 식물이 시작이었다. 창가에 둔 그 작은 것이 처음엔 혼자 있기 쓸쓸해 보여 다른 식물 몇 개를 사다 옆에 두었는데, 그 후로 꽃집을 지나거나 나무와 풀들을 보면 이름이 궁금해지고 눈길이 가게 되었다. 흔하디흔한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꼈을 때 나는 어떤 진리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 밖에서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기대하던 새로움은 사실 주어진 현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었던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을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그는 덧붙여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 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이 이야기를 인생에 빗대어 볼 때 왜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춥고 길었던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자연스레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지내고 나면  다시 봄이  거다. 그저 그렇게 흐르는 자연의 순리임에도 우리가  봄을 반기는 이유는 예측 못한 현실에 실망하더라도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무언가를 새로이 알게  기대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기대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닌 받아드릴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봄이라는 단어는 '본다'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봄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기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질  있는 선물이 아닐까. 가끔씩 인생이란 기나긴 여행길이 지루한 고역처럼 느껴져 지치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때마다  옆의 동행들과  선물을 꺼내며 다시금 나누며 걸어갈  있는 삶이 되기를,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길을 뒤돌아 봤을  함께여서 감사했던 기억으로 남겨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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