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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Apr 26. 2020

왜 하필 나인 가요?

너도 두렵지만, 나도 두려워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귀신이 보였다. 자다 새벽에 깨면 방구석에 낯선 여자가 서있거나, 커다란 녹색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종종 밤마다 가위에 눌리기도 하였다. 눈을 감기가 무섭게 침대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나를 쑥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몸에 마비가 온다. 꿈속에 귀신이 나타나는 것은 거의 일상이었다. 밤에 소리를 질러 엄마, 아빠가 뛰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다니던 학원의 젊은 수학 선생님이 차 사고로 급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전날까지도 수업을 했던 터라 나는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죽음은 내가 인생에서 경험한 첫 죽음이었다.


아마, 선생님도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나 보다. 돌아가신 다음 날부터 내 꿈에 지겹게 찾아왔다. 그리고 선생님 꿈을 꾼 밤이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 당시 선생님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혼자 가기 싫다는 것. 거의 3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죽는 거 별거 아냐, 같이 가자, 나랑 같이 가자.’


거의 일주일 동안 선생님에게 시달리다 보니 나중엔 ‘그래, 같이 갑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론 꿈속이지만, 그를 따라나섰다. 선생님이 살아생전 타던 빨간 소형차를 타고 끝도 없이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선생님은 광활한 하얀 사막과 같은 곳에서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나보고 내리라고 소리 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사막에 버려진 나는 근처 모래언덕을 허겁지겁 올라갔었다. 그런데 모래 언덕이 웬일인지 물컹했고, 나는 그것이 모래 언덕이 아니라 커다란 하얀 쥐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악몽에서 깨어났다.


며칠 후 엄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드려 내 방에서 제사를 지냈다. 정확히 무슨 제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석구석 팥을 뿌렸던 기억이 난다. 제사 때문인지, 아니면 혼자 가기로 결심을 한 건지, 이후 선생님은 내 꿈에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주변에 누가 돌아가시면 어김없이 내 꿈속에 찾아온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것도 여러 번. 한번은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어머님이 꿈에 나타나 생전 쓰시던 방을 정리하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사시던 집에 도둑이 들어 어머님 패물을 다 훔쳐가기도 했었다.


좀 안보였으면, 죽은 이들은 그들대로 그들의 세상에서 지냈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 산날보다 살날이 적어진 나이가 되니, 이젠 그들이 짠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때론 나를 찾아와서 본인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도 괜찮겠다, 그 정도는 뭐 어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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