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싫어하나봐 ㅜㅜ
세상을 살면서 난 참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할까?' '나를 좋아할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게 남의 생각을 종종 살핀다. 나도 안다. 이렇게 남의 시선에 연연하는 것이 참으로 한심하고 못났다는 것을. 나라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않겠는가. 나도 나를 마뜩잖아하는 시선에 당당히 'Fuck you'를 날리고 쿨하게 마이웨이를 걷고 싶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도 읽어보고 강연도 들어보지만,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슬을 끊어 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 번역 및 통역과 관련하여 교수님들로부터 가슴 시린 소리를 종종 들었다. 고수들이 보기에 이제 막 통번역 세계에 입문한 조무래기의 실력은 얼마나 가소로울 것인가. 뭐 굳이 조목조목 말씀을 안 하셔도 결국 실력이라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마련이다. 동기들과 비교해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몇 달만 공부해보면 다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떻게들 생각하는지, 참 무던히도 눈치를 보았다. 교수님의 뼈 때리는 소리에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기도 하고, 지나가는 격려에 의기양양해지기도 하였다. 동기들은 그런 나를 참으로 신기해했다. 아마 속으로는 나이 마흔에 저러고 싶을까, 하고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통역사가 되고 나서도 나의 이런 눈치보기는 계속되었다. '내 통역이 맘에 들었을까?, 별로였을까? 어떻게 생각할까?'를 묻고 싶어 병이 날 지경이다. 실제로 통역이 끝난 후 주춤주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오늘 통역 괜찮았나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통역사 내 친구는 이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제발 그러지 마, 통역 끝나면 통역사는 그냥 인사하고 사라지는 거야. 통역 어땠냐고 묻는 건 정말 없어 보여."
"그으래? 난 정말 궁금해서......"
"통역이 별로였으면 앞으로 너 안 부를 거야. 통역이 괜찮았으면 계속 부를 거고, 서로 그렇게 아는 거야."
사실 이 바닥이 이렇게나 정이 없다. 아니, 통역이 좀 별로라도 '오늘 통역은 좀 아쉬웠는데, 이런저런 점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토닥거려주고, 다음에도 몇 차례 기회를 더 주며 격려해 준다면 얼마나 인간적인가. 직장에서 이런 인간적인 태도를 기대하는 내가 바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과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인사를 받지 않은 경우, '날 싫어하나?'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지만 곧 '아냐, 못 봤겠지'라고 전환하려 노력한다. 또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경우, '나 왕따인가 봐'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들끼리 재밌나 보지'라고 무시해 버리려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면 '헐, 나 좋아하나 봐'라고 착각하는 대신 '시력이 안 좋구나'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렇게 감정의 중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말이다. 타인을 향한 민감한 더듬이에 두꺼운 양말을 씌우는 듯한 이런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남의 시선에, 남의 평가에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안 그런 척, 쿨한 척한다고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초미세 신호에도 잘 반응하는 이 고성능 더듬이의 능력이 왠지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