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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May 03. 2020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그냥 내 길을 가자구.


통역대학원에 합격하기까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처음 통역대학원 준비 학원 기초 반에 들어가 오바마 연설을 단 한 꼭지도 알아듣지 못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금방 도망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이후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TV에서 영어만 들리면 내 귀가 만화에서처럼 커지는 경험을 했다. 나도 모르게 영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 소리가 무슨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내 귀를 끌어당겼다. 결국 이것은 운명인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고, 다시 통역대학원 준비 학원에 등록하여 그 길고 힘든 과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솔직히 내 실력은 바닥이었고, 대학교 때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 9개월 다녀온 경험이 해외 경험 전부였다. 당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도 키워야 했다. 지금 같으면 그런 상황에 맞게 좀 더 스마트하게 공부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의욕만 활활 불타올랐다. 결국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효과적이었던 공부 법을 소개하자면 단연 받아쓰기(Dictation)와 영어 기사 정독을 꼽겠다. 특히 이 두 방법은 초급 실력을 중급으로 끌어올리기에 좋은 방법인 듯하다(물론 100%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지만.)


받아쓰기는 말 그대로 영어 스피치나 뉴스를 듣고 받아쓰기를 해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연사들이 말하는 스피드가 빨라,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해 들인 시간에 비해 속도가 무지 안 난다. 하지만 몇 개월 정도 꾸준히 하다 보면, 영어 문장의 구조가 익숙해지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발음 등이 교정이 되면서 듣기 능력이 조금씩 향상된다(절대로 급격히 향상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하루 한두 개 정도의 영어 기사(뉴욕타임지나 이코노미스트 등)를 완전히 샅샅이 파헤쳐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문장 구조, 시제 등 문법적인 요소까지 철저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 주제, 단락별 주제, 관련된 배경지식까지 파악해 보는 것이 좋다. 솔직히 혼자 이 과정을 전부 수행하는 것이 힘들 수 있으므로 학원의 도움을 받던지, 아니면 스터디 그룹을 짜서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가 통역대학원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격려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남편은 화려한 직업만 쫒는다며 못마땅해 했었고(화려하긴 개뿔), 엄마는 늦은 나이에 졸업하면 취직이나 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었다. 그래도 그냥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했다. 왜냐고? 뭐,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는 아니다. 아이는 커 가는데 집에만 있기는 싫었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 외엔 달리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공부한 덕분에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취직을 해 일을 하고 있다.


통역대학원 준비에서부터 대학원 입학, 졸업까지의 과정은 절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의 경우 언어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외 체류 경험이 많은 소위 '해외파'도 아니어서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밖엔 달리 길이 없었다(그렇다고 노력과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거북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는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통대입학이든, 졸업이든, 취직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도 그냥 한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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