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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Feb 18. 2020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환원주의자들과 그 위험

최근 30년 동안 특정한 이론을 토대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논문들이 쏟아졌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영문학에서 파생된 소위 '문화연구',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시각문화연구'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술사, 특히 현대미술사는 그러한 방식 없이는 논문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분야에서 프로이트에서 라캉, 푸코와 데리다, 니체는 성리학에서 공자와 맹자, 그보다 주희의 위상에 필적한 존재들로 여겨진다. 여기에 '힙한 좌파'라면 알튀세르, 더 나아가 랑시에르가 추가될 것이다.


이들이 누굴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설득하려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자신만의 롤 모델과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고, 연구를 통해 그들을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열망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자문해야한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게으른 나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는 것인지. 일생동안 4-5권의 책을 쓴 지식인에게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러한 유형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활용한 저작이 '이론적 도구'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거장의 통찰을 배우는 것과 거장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많은 논문들이 "~한 사건에 ~의 이론을 적용해본다"는 취지로 작성된다. 


나는 이들에게 '환원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 환원주의자들을 간단히 이해하고 싶다면 다음 그림을 참고해보자.



환원주의의 위험


환원주의는 주로 과학철학에서 이야기되는 주제지만,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다. 특정한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환원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이론적 도구'들은 연구주제와는 무관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미 주어진 틀이 있기 때문에 결론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환원주의자들이 이론적 도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이 내린 가설에 부합하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은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결론까지 꽉 짜여진 도식에서 벗어나는 변수들을 배제하고 수행한 연구다. 최근 필자는 '사회적 다윈주의'를 역사연구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하려는 연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예시로 '후순위 이론'을 소개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첫 째가 아닌 자식들이 보다 진취적이라는 이론이다. 그는 예시로 종교개혁을 지지한 성직자들이 대체로 차남, 삼남 등이었다는 어떤 연구를 언급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연구였는데, 장자상속권이 있던 중세에서 성직자는 상속권이 없는 자식들의 운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즉, 둘째, 셋째, 넷째만 모여있는 집단을 조사해놓고 내린 터무니 없는 결론을 과학적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논의를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여야할 이유는 없다.


 바로 앞에서 살펴본 '사회적 다윈주의'를 고수하는 연구자의 문제도 역사는 인간에 관한 연구고, 인간이 만든 역사적 사건은 유전자나 태어난 순서 같은 생물학적 요인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제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비판을 그는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가 보기엔 비판자들의 주장이 너무나 터무니없기 때문이었다.(왜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선 명확히 밝힌 바 없었다.) 


많은 경우, 이러한 환원주의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수많은 방법들 사이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소개한 짤방은 이러한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대학에서, 교단에서 이러한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들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애석한 것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 가운데 소위 '회의주의자'들이 있다는 점에 있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믿는 바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에게 회의주의는 샤넬 핸드백인 것인지,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인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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