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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민 Mar 08. 2024

40에 배우는 국어

다시 공부

 낭독, 토론, 글쓰기 공부방을 시작한 지 4년 차가 되었다.

"딱 3년만 해보자!"

큰 아이 4학년, 작은 아이 7살

아이들만 케어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건물을 사서 들어갈 형편도, 그럴만한 배짱도 없었다. 찾아보면 조금 외진 곳에 협소하고 낡은 건물로 들어갈 수는 있었겠지만 고민은 잠깐하고 집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적극적인 동의를 표했다. 10년 넘게 경력단절이 된 아내가 작게라도 자기 사업하겠다고 하니, 반대가 웬 말이냐, 마음속으론 쾌재를 부를 판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일찍 오는 날이 많으니 둘째 케어를 맡겨도 되었다. 첫째도 친구들과의 수업을 동의하여 즐겁게 '책 낭독'을 시작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떠오른다.

그동안 참 좋은 책들과 마음으로 호흡하고 나누는 귀한 시간들을 보냈다. 아이들도 나도 값진 시간이었다.


"딱 20명만 받자!"

3년 차쯤 되었을 때 30명이 되었다. 그런데 슬럼프가 왔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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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방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학부모 상담이었다. 토론 수업에 참여시키기 전 상담을 통해 선생님의  철학과 방향을 충분히 알려 드렸지만 학부모님께서 주 1회 수업에 너무 많은 기대를 품었던 것일까. 집에서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수업 태도도 좋지 않은 아이를 이곳에서 고쳐보려 하셨던 것일까. 책임 전가. 돈으로 책임을 묻고 싶으셨던 것일까.


 대형 학원은 입이 떡 벌어지는 커리큘럼에 감히 대들 수조차 없고, 작은 공부방은 선생님들께서도 대부분 친절하시니 잘못 걸리면 부모님들께 혼쭐 난다시는 다른 공부방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책 수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큰 변화가 없음을 말씀드렸건만... 토론 수업이라 다양한 주제와 그 속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이 많은데 아이가 어느 한 부분만 집에서 얘기를 하다 보면 부모님 입장에서 오해하시는 일도 종종 생긴다.

"수업 시간에 뭐 그런 말까지 해?"

(이야기에 꼬리를 달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있다. 곧 주제로 다시 넘어 오지만 주제에서 벗어난 의외의 말들 속에서 아이들은 재미를 느낀다.)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4명~5명 토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모두 조용할 수가 없다. 책 낭독 시간, 글쓰기 시간, 발표 시간을 제외하고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놓칠 때도 있다. 그리고 토론 수업의 특성상 조용한 수업은 아니다.)


 토론 수업의 진행 방식에 대해 너그러이 이해하시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어려운 분을 뵐 때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하나, 이것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학교 선생님까지는 아니지만 그 고충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안다. 내가 학부모이기만 했을 때, 나의 편협된 생각을 내려두기란 여간 쉽지가 않은 일임을...

 나의 자잘한 스트레스가 아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리저리 병원을 다니면서도 공부방에 다니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눈물이 났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고 아이들이 이렇게나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데...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아주 값진 말들이 오고 가는데 왜 믿지 못하실까? 이런 신뢰가 없이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 스스로를 탓했다가 학부모님을 탓했다가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처음부터 함께 시작한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다. 우리 공부방은 초등만 받을 거라고 호언장담 했는데 내 아이가 자랐고 그 친구들이 끝까지 함께하니, 자연스레 내 공부가 절박해졌다. 토론 수업은 국어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토론, 글쓰기만으로도 중학교 때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국어 문법이나 어휘는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학부모님들의 걱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하지 않으니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국어 학원을 보내자니 수학학원, 영어학원까지 벅찬 스케줄에 학원비가 만만치 않다. 내가 해야 했다. 그러려면 나도 공부가 더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학부모님께서 믿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격이 되느냐의 문제였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오류였다.


나의 독서 경력은 첫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영어, 한글 그림책에 빠져 쉬지 않고 매일 읽어 주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책 읽어 주는 봉사 활동에 성인 독서 모임을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본인의 아이를 맡기기에 불안하셨던 모양이었다. 물론, 집 거실에 내가 딴 독서 관련 자격증과 수료증들을 비치해 두었으나,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집구석 공부방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나, 여러 이유에서 공부가 더 하고 싶어졌다. 되짚어 보니 중학교 때 꿈이 국어 선생님이기도 했다. 지금은 학생을 더 늘리지 않고 내실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그 학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내 나이 40대에 국어국문학과 편입을 하여 만학도의 길을 걷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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