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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pr 12. 2022

"여행자니까 다 용서해줄게요"

< 호주의 추억>

나는 산을 좋아했고 그는 바다를 좋아했다.

적당히 타협하기 힘든 이 극명한 취향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항상 머뭇거렸다.  하지만 으레 썸 타는 연인이 그러하듯 그때는 그가 순순히 내 욕구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아이 둘 낳고 인간 삶에 맥없이 주저앉은 나무꾼의 선녀처럼, 나 또한 결혼 후 사랑의 양보는 거래로 바뀌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한창 딸기 픽킹 시즌이 시작되는 2006년 8월의 퀸즐랜드에서였다.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Caboolture.

그곳은 워홀들에게 딸기농장의 성지로 불리는 도시였다.


나보다 5개월 먼저 호주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한 친절을 베풀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는 그에게 빠르게 마음이 갔다.

그린라이트를 반짝이며 약간의 썸을 타던 어느 휴일 저녁. 그가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야호!! 딸기농장에서 흙 묻은 작업복을 벗고 처음 시내로 나가는 데이트였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옷에 공을 들였다.  우선, 하늘하늘한 상아색 원피스에 당시 유행하던 저고리 정도의 짤 둑만 한 하얀색 볼레로 가디건을 걸치고 한껏 멋을 내고 나왔다. 

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나도 따라 멋쩍게 웃으며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숲길을 달려 군데군데 낚싯대가 설치된 다리 밑에 차를 주차했다.


오늘 드디어 두툼한 호주산 스테이크를 썰어보는 것인가 나는 발을 동동거릴 만큼 온몸으로 신이 났다.

사거리를 기준으로 기념품 가게나 커피숍, 레스토랑이 촘촘히 보이는 로드를 좀 걸었을까.

그는 딱 봐도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문 입구에 중국집에나 있을법한 비닐천이 촌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그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 여기 정말 유명한 데야. 워커 버거라고 들어봤어?? 

    정말 ~~ 끝내주게 맛있어!!! "


사진 출처 - Goodtime Burgers

여기서 " worker burger" 란 이름 그대로 고강도 노동을 하는 워커들을 위해 특별 맞춤된 버거다. 계란, 베이컨, 상추, 토마토, 비트로, 소고기 패티 등등  8층으로 겹겹이 솟아올라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쩌~억 벌어지는 특대 사이즈다.

특히 농장이 밀집된 Caboolture에서는 경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특화된 버거를 선보였다.


아니, 이걸 오늘! 여기서!  지금! 먹겠다고!!!!


그는 나를 잠시 세워두고, 회색빛 재활용 종이를 한 아름 쥐고 나왔다.


넌 뭐니?? 이렇게 5개월 만에 진짜 Farmer 라도 된거?


나름 멋을 낸 나는 성질 낼 타이밍을 살짝 놓쳐 혹은 연애 초반의 착한 호르몬 때문인지 그에게 쌍욕을 날리지 못하고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의 미소로 그를 응대했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벤치로 나를 이끌었다.

입을 최대치로 벌려 그가 워커 버거를 와그작 씹어 삼켰다.

엄지를 치켜세우 내게도 빠르게 권했다.


아 씨,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여기는 호주고 택시를 잡아탈 줄 모르는 나는

에라 모르겠다, 워커 버거를 손에 쥐고 한입 베어 물었다.

빵에서 내용물이 냅다 튕겨나갔다.

비트로에 물들어 살짝 보랏빛이 감도는 계란이 치마에

툭 떨어졌다.  어어 하는 사이,

토마토소스가 쭉 흘러 하얀색 볼레로 가디건을 흥건히 적셨다.  마치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사람처럼

나는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어이없게도 깔깔대며 웃었다.

너무 더러워서, 웃는 내가 또 웃겨서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소리 내어 웃었다.


짜증의 정점을 찍을 만한 모든 요소가 총출동한 이 데이트가 지금도 나는 꽤 낭만적이었다고 기억된다.

멀리 조명에 반짝이는 호주의 깊은 밤바다의 어스름이

마음을 풀어헤치게 했고,  향긋하게 올라오는 초록 잔디의 푸르름이 꽤나 이국적이었다.


호주여서 가능했다.

에어컨 고장 난 폐차 직전의 차를 덜덜 끌고 호주 전역을 누벼도, 며칠 감지 못한 머리를 박박 긁으며 다녀도, 모든 것이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포용력으로 이해되었다.


여행이 주는 일종의 특권이랄까.

냉소적인 사람도 비현실적인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고,

내 허용치에서 벗어난 이탈적인 미친 짓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깨끗하게 덮어주는 것.

우리가 충분히 여행에 미치게 되는 이유다.


나는 감성이 지배해버린 호주 여행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곧 이민을 준비했다.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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