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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Jun 08. 2022

< 호밀밭의 파수꾼 >

" 사회 부적응자가 지키고 싶었던 구원 "

'호밀밭의 파수꾼'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 소련 냉전 시대인 1951년에 출간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당시 금서로 지정될 만큼 문제작이었다.

특히 이 책은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을 살해한 살인범의

서랍 속에서 발견되거나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 현장에서도 발견되어서 살인자의 책이라며 더 주목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호불호가 아주 많은 책이다.


거친 문장과 투박한 욕설이 군데군데 나오지만 지금의 중2병의 방황에 비하기엔 귀여운 수준이다.


그러나 반전과 자유를 갈망하던 젊은 세대와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대립하던 1950년대 시대 상황을 보자면

이 책은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세기를 넘긴 지금, 당시 젊음이들이 기성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지금까지 고전으로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



그 물음의 시작은 퇴학을 당한 16살 소년의 3일간의

방황의 시간을 쭉 따라간다.

상류층 집안에서 자라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홀든 콜필드는 세상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불만 투성의 아이다. 더구나 네 번의 퇴학으로 학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학교라는 규율과 질서 안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곳을 벗어나 만나게 되는 어른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홀든은 그 위선과 비열함에 현기증을 느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홀든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어른들을 흉내를 내지만 진짜 어른의 세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중간에서 홀든은 서부로 가서

멀리 오두막을 짓고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다.

진짜 뭐가 되고 싶냐는 동생 피비에게 순수한 아이들이 타락하지 않게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P. 229


스스로 타락했다고 여기는 홀든은 동생 피비는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잃지 말고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보수적인 기성세대에 맞서 반전 시위를 벌이던 젊은이들의 순수성도 곧 시간이 지나면  변질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대 미국은 획일성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는 모두가 집단주의에 순응하던 시대였다.


과거의 전통을 중시하던 보수적인 사회는 젊은이들이

개성과 다양성을 철저히 배척했다.

홀든처럼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학교 시스템에 순응하지 못한다면 역시 사회에서도 외면받는다.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인간을 원하는 사회 시스템에 떠밀린 홀든은 갈 곳이 없다.

사회 부적응자로 소외된 채 방황하는 홀든에게 한줄기 희망은 어른의 세계로 떠밀려 갈 다음 세대를 향한 구원이다.


정작 자신은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지만 순수한 아이들만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타락한 세상에서 지켜주고 싶은...

그 경계에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세대의 흐름에 반기를 제시한 채 어른의 세계로 흘러가길 거부한 홀든은 박물관에 박제된 변화지 않는 것에 매료된다.


늘 변해가는 우리가 두렵듯.


순수한 어린아이로 회기 하여 박물관에 박제되고 싶어 하는 바람은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홀든의 성장통은 아니었을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 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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