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순천에다녀왔는데,날씨도 좋고, 볼 것도 많고, 풍경도 너무 좋았다.만족스러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저녁메뉴로 피자를 먹기로 정했다.
남편은 여러 가지 옵션 중에 사진만 보고도 가장 맛있는 집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메뉴 선정 후 배달 주문은 남편의 몫이었는데,남편이 운전을 하고 있어서 오늘은 내가 빈궁한검색실력을 영끌하여피잣집을 골라두었고 숙소 다 와갈 때쯤 주문하면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문득 피자 한판으로 세 명이서 먹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에 숙소에 거의 도착해 주변 떡볶이 집에 들러 떡볶이를 포장해 가기로 했다.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고, 나만차에서 내려 떡볶이를사 오기로 했다. 오늘따라 유독 떡볶이 포장도 꽤 오래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앱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를 픽업하러 갔더니 2판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보니 남편은 남편대로 떡볶이 포장을 기다리며 차에서 피자를 주문했단다. 항상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건 본인 몫이었으니 자연스레 주문을 했단다. 그러니까 둘 다 주문을 했고 서로 말을 안 한 것이다. (오 마이갓)
피자집 사장님도 안타까워하셨지만 가져가서 한 판은 냉동실에 넣고 천천히 먹으라는 말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는 게 당연했다. 명백한 우리 잘못이니 할 말은 없었다. 그리하여 똑같은 피자 두 판을 먹게 된 우리.
서로 떨어져 있었을 때 주문했다는 간단한 카톡만 해주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러겠지'라고 상황을 예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엄만 사진 찍을 줄도 모르고 돋보기도 안 들고 왔어. 네가 순천 풍경 사진 좀 찍어줘"
오늘 나는 하루종일 엄마의 폰을 들고 다니며 셔터를 마구 눌렀다.피자를 다 먹어갈 때쯤 엄마가 핸드폰을 달라 하신다.
낙안읍성
순천만습지
그런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엄마의 폰이 보이지 않았다. 맨날 알뜰폰 쓰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큰맘 먹고 젊은 사람들이 쓰는 최신형 휴대폰을 샀다고 좋아하시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가방 안에 넣은 것 같은데.. 어디 갔지'
전화를 걸어보아도 숙소에서는 아무런 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이쯤 되면잃어버린 게 확실했다.
들려오는 남편의 한마디.
"어쩐지. 요 며칠 순조롭다 싶더라니"
순천만습지 매표소로 전화를 해 분실물이 있는지 물었다.
"아 네, 핸드폰 하나랑 스타벅스 텀블러도 혹시 같이 잃어버린 거 맞으세요?"
"하.. 네 맞네요"
핸드폰은 찾아서 다행이었지만 어쩐지 조금 슬펐다. 텀블러까지 잃어버리고 심지어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니. 회사에서 최근 들어 현저히 깜빡깜빡하고, 기억력도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힘들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러다니.
다시 40분을 달려 순천으로 갔다. 순천 밤길은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어둡고 가로등도 없어 혼자 차를 몰고 왔으면 무서울 뻔했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자기랑 순천의 밤 드라이브를 해보네
다시 보니 깜깜하기만 한 순천 시골길이 굉장히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오늘처럼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그때마다 내 편에 서서 생각해 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그런 사람이 지금 옆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맞다.
인생은 '어떻게'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고마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