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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31. 2022

날을 잡았다

결혼, 그리고 제주

전에는 이 말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온 제주행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진지하고 묵직해졌고 그렇게 나는 남자친구와 결혼 날짜를 잡게 되었다.


지금까지 평생을 서울에서 산 내가 뜬금없이 왜 제주를 가겠다고 하냐고? 본인도 놀랄 노릇이다. 이 생각의 시작은 겨울 내내 체를 자주 하고 핫팩을 달고 사는 추위에 약한 몸뚱아리 때문이었다. 겨울의 온도 때문에 매년 이렇게 고생하고 몸 사리며 살바에 더 따뜻한 곳에 가서 살면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제주 섬을 떠올렸고 난데없는 이 아이디어는 점점 진지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 도심, 시끄러운 이곳에서 한 가지 일만 하며 한 동네로만 출퇴근하며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살았다. 10년을 가까이 채운 걸 보니 나도 참 머무르고 안정된 걸 좋아하고 은근 끈기가 있다. 내가 약 2년간 만난 남자친구는 다양한 일을 해오다가 미래의 결혼을 고려해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시기. 내가 서른에 막 발을 내디딘 시기. 2022년은 그런 해였다. 30대를 시작하며 나는 지금까지는 해보지 못했던 당찬 시도를 해보고 싶었나 보다. 꽤나 오래 답답했던 마음을 박차고 나아가 있는 힘껏 부딪혀보고 나의 세상을 이제는 넓혀보고 싶었다. 그곳이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남쪽 도시 제주라면, 자연과 더 가깝고 소란하지 않은 제주라면, 대단한 기술이 없더라도 시골보다 우리에게 내어줄 일자리가 있는 제주라면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세상 쫄보인 나는 머리를 굴려 재고  쟀다. 그럼에도 결단(?)  있었던 까닭은  옆에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런 우리 둘이서 이때에만 특별하게 경험할  있는 좋은 기회 같아서, 놓치기 싫어서였다. 더군다나 내가  10년간 함께 해온 팀과 앞으로 계속 이어갈지 말지 결정해야 했던  해에 이런 마음이 갑자기 치고 올라온 것도 어쩌면 타이밍이  알맞았다. 어쩌면 새로 시작해야 하는 , 어차피 새로 자리 잡아야 하는 남자친구, 서로 함께  미래를 꿈꾸는 우리니까 그럼 도전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제주행을 결정하면서 결혼할 시기를 결정했고 날을 잡았다. 정말  걸음을 뗐다. 하지만 제주행을 준비하고 꿈꾸기에 앞서  폭풍 같은 결혼 준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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