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도연 Sep 28. 2024

겜알못의 게임로그 #14: <에디스 핀치의 유산>

What Remains of Edith Finch (2017)

|타이틀|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최초출시일| 2017년 4월 25일

|개발사| Giant Sparrow

|유통사| Annapurna Interactive

|구입처| App Store (iOS/iPadOS)

|사용기기| A12Z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에디스 핀치의 유산>
이 모든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영원히 산다면 이런 것들을 이해할 시간이 있겠지. 지금으로선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이상하고 짧은 삶을 감사히 여기는 수밖에.
이 일지는 너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절대로 볼 일이 없으면 좋겠다. 단지 널 만나고. 이 이야기를 직접 해주고 싶다.
(…)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는 것 자체를 네가 경이롭게 여겨줬으면 한다. 행운을 빈다.


첫 번째 첫인상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2017)>을 처음 구입한 건 딱 1년 전입니다. 10월에 중국에서 열린 세계과학소설컨벤션(월드콘)에 참석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플레이를 했고요. 별다른 배경 지식 없이 그저 짧고 평가가 아주 좋다는 얘기만 듣고 시작을 했었는데 금방 그만뒀습니다. 일행과 함께 앉아 있었다 보니 아이패드를 꺼내서 혼자 게임을 하기에는 좀 애매해서 아이폰에 컨트롤러를 연결해서 했는데, 손바닥 크기의 작은 화면으로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비행기 안이라서 그런지 집중이 어렵기도 했던 데다 도입부의 전개가 잘 이해되지도 않기도 했고요.


특히 목적이나 목표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가족 이야기를 하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로는 다시 꺼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제 갑자기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물론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유는 여유롭게 써야지요. 책을 읽기에는 집중력이 소모되어 있고 영화를 보기에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게임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는, 복잡하거나 빠른 조작이 필요하지 않는 가벼운 걸로요. 뭘 할까 고민하던 중에 떠오른 게 도입부만 하고 그만둔 <에디스 핀치의 유산>입니다.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평가가 좋은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게임의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이 나서 1년 만에 다시 시작해 봤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만에 끝냈습니다.


두 번째 첫인상

다시 시작하니 게임 속 이야기에 금방 몰입을 할 수 있더군요. 주인공 에디스 핀치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돌아다니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가족들의 마지막 순간을 다시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노트 속에 가족의 그림이 하나둘씩 채워지는 걸 보니 얼른 다른 이야기도 찾아 노트를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엔 아무래도 비행기 안에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작은 화면에서 했었기 때문에 집중을 못했나 봅니다.


주인공의 나레이션 목소리도 아주 좋았고 텍스트를 이용한 다양한 연출도 모든 장면을 담아두고 싶어질 만큼 훌륭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물론 이것만으로는 이야기도 게임도 성립하지 않겠지만, 그만큼 좋았습니다.

나레이션과 텍스트의 매력적인 활용

아이패드 프로에 컨트롤러를 연결해서 했는데,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방법이 독특해서 조작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오르골을 돌리거나 잠금쇠를 풀고 창문을 여는 등, 게임 속 현실과 물리적으로 묘하게 연결된 느낌이었지요. 터치 스크린이었다면 화면 속 동작과의 물리적 연결감이 더 컸겠지만 화면을 문지르는 감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계속 컨트롤러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만화책 그림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고양이나 바다 괴물이 되기도 하며, 카메라의 시선이 되기도 하는 등 짧은 플레이타임에도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한 것도 좋았네요. 상황에 따라 조작법이 달라지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방들

가족들의 다양한 방을 탐색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저택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방마다 그 방에서 살던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요소가 가득해 자세히 보고 살피는 재미가 있었어요. 굉장히 디테일했습니다. 널브러진 물건, 장식물, 책 제목, 그림, 메모, 사진, 달력 같은 것들까지 모두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어요.

가족들의 다양한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방들
독특한 구조로 확장된 핀치 가문의 집

그리고 후반부에 기존 집 위에 성 혹은 트리 하우스처럼 확장된 방들에 들어서면 정말 이런 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집에서 핀치 가족들은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라며 상상을 굴려보기도 했고요.


핀치 가문의 저주

원래 노르웨이에서 살았던 핀치 가문은 5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저주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에디스 핀치의 고조할아버지인 오딘 핀치는 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통째로 배에 실어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오르카스 섬으로 이주를 했고요. 도착 직전에 배가 침몰해 옛 집을 잃고 오딘은 세상을 떠나지만 오딘의 딸 에디가 남편 스벤과 함께 침몰한 옛 집의 일부가 보이는 바닷가에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에디스 핀치가 그린 핀치 가문의 가계도

하지만 핀치 가문의 저주는 바다 건너까지 따라왔나 봅니다. 새로운 집에서도 핀치 가문은 여지없이 대를 이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갑작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요.


핀치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주인공인 에디스 핀치는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를 들고 오래전 떠났던 집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집에서 5대에 걸쳐 일어난 상실의 기억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한 시선과 목소리로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요. 이 대상이 누구인지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직접 언급되지만 게임 플레이 중 에디스의 몸을 내려다보면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른 체형에 비해 부자연스럽게 나온 배. 에디스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 거죠.

에디스 핀치. 오른쪽 그림은 스팀 커뮤니티에 올라온 Byo의 작품


저주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에디스는 5대에 걸친 가족 열두 명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갑니다. 모두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고요. 하지만 그저 막연히 슬프거나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인상에 남는 것 같아요. 인물 모두가 개성적이고 눈을 쉽게 뗄 수 없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슬프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며 무섭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며 안타깝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해요.


<에디스 핀치의 유산>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해 가족들의 이런 마지막 순간에 깊이 이입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인공은 에디스지만, 각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는 그들 본인의 시선과 나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에 앞에서 이야기했던 텍스트를 이용한 연출이 맞물리며 굉장히 높은 감정적 몰입감을 이끌어내요. 그리고 모두 예정된 죽음을 맞이하고요. 그들의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에디스의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서정적 분위기가 더욱 증폭되어 마치 직접 겪은 일 회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에디스 핀치의 마지막 유산>이라는 게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그들의 시선에서 경험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그레고리 핀치의 죽음이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는 비극을 그려내요. 그래서 욕조를 보자마자 그레고리의 운명이 짐작되었습니다. 그레고리에게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그레고리의 시선으로 즐겁게 놀이를 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적인 경험이 주는 기묘한 체험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저 화면을 바라보거나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조작해야만 하는 게임이기에 가능한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레고리가 실제로 그런 '놀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목격자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레고리의 마지막 놀이는 부모의 바람이자 희망이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레고리는 행복할 거야. 그레고리는 너도 행복하길 바랄 거야.
- 샘 핀치


그레고리의 이야기를 마친 후, 가족 중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그레고리의 얼굴을 보니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저주의 실체

그런데 핀치 가문의 저주가 정말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증조할머니 에디 핀치는 가족의 비극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재능이 있으니까요. 드래곤 미끄럼틀을 만들다 죽은 남편이 용에게 잡아 먹혔다고 하거나, 지하실에 숨어버린 아들을 두더지 인간 이야기로 풀어낸 것처럼요. 에디는 이 모든 걸 진심으로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가문의 저주도 에디가 가족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견뎌내기 위해 꾸며낸 뒤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으며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요.


게임 속에 가끔 그런 암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족의 저주를 너무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저주를 실현시켰다.
- 에디스 핀치
그들의 상상력과 고집과 광기의 역사
- 에디스 핀치
우리 가족의 역사: 진실 혹은 꾸며낸 이야기?
- 던 핀치


저주의 실체는 게임이 끝난 뒤에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저주의 정체가 무엇인지, 바다에 침몰한 집에 감춰진 비밀이 무엇인지 끝까지 드러나지 않아서 불만인 사람도 많다고 하고요. 저도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에디스 핀치의 유산>의 게임 플레이는 저주의 비밀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죽음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경이와 경외, 불가사의를 느끼게 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핵심은 죽음의 저주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던 거죠.


에디, 던, 그리고 에디스

게임의 마지막은 증조할머니 에디와 어머니 던, 그리고 주인공 에디스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에디스는 핀치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고, 겨우 저주에서 도망친 것 같던 에디스는 왜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져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접어두겠지만, 에디와 에디스의 이름이 비슷한 이유가 이것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적당한 반전도 있는 좋은 결말이었어요.

에디스 핀치의 노트와 에디 핀치의 노트



다음 게임?

원래는 <바이오쇼크 리마스터(Biochock, 2016)>를 해 볼 예정이었지만, (분량적으로) 좀 더 가벼운 게임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사이드(Inside, 2016)>와 <언피니시드 스완(The Unfinished Swan, 2012)>도 후보에 넣었습니다. <언피니시드 스완>은 실종된 에디스의 오빠인 밀턴 핀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특히 궁금하기도 합니다. <언피니시드 스완>이 개발사 Giant Sparrow의 첫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단순히 이스터 에그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러고 보니 같은 유통사에서 나왔고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사이버펑크 고양이 게임 <스트레이(Stray, 2022)>에도 밀턴 핀치에 대한 이스터 에그가 있다는 얘기가 있네요. 나중에 <스트레이>를 다시 해보게 되면 찾아봐야겠습니다.

왼쪽부터 <바이오쇼크 리마스터>, <인사이드>, <언피니시드 스완>


지금까지 해본 게임들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겜알못의 게임로그 #13: <데드 스페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