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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연 Nov 06. 2024

겜알못의 게임로그 #17, 18: <림보>, <네바>

Limbo (2010), Neva (2024)

내년 3월까지는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일단 쓸 거리가 머릿속에 있으니 그걸 뱉어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결국 씁니다. 글쟁이들이 대개는 그렇죠.


왼쪽: <림보>, 오른쪽: <네바>




#15 <림보(LIMBO, 2010)>


|타이틀| 림보(LIMBO)

|최초출시일| 2010년 7월 21일

|개발사| Playdead

|유통사| Playdead

|구입처| App Store (iOS/iPadOS)

|사용기기| A12Z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시대와 배경을 짐작할 수 없는 낯선 공간을 가로지르는 소년

<림보>는 <인사이드(Inside, 2016)>를 개발한 Playdead의 첫 작품입니다. 그런 만큼 <인사이드>의 원형이 된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실제로도 굉장히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많은 위험과 장애물을 뚫고 목적지로 나아가는데, 목적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필사적이라는 느낌이 전해지는 건 <인사이드>와 똑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후에 나온 <인사이드>가 같은 스타일의 게임으로서는 좀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달리 말하자면 <인사이드>를 경험한 이후에 플레이하는 <림보>는 아무래도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이유지요. <림보>라는 게임 자체는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짙은 안개가 낀 것 같은 음산한 흑백의 숲 속에서 소년은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몸을 산산조각 내는 위험한 함정도 만나고 소년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다른 아이들도 만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미 형태의 거대한 괴물도 만납니다. 중력의 방향을 바꿔주는 장치도 있고 분명한 목적 없이 움직이는 듯한 거대한 톱니바퀴도 있지요.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파괴하는 기관총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인사이드>와 거의 동일합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크게 차이 나지 않고요. 그렇다고 차별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림보>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일상적 요소들이 가득 등장하며 온갖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인사이드>에서는 그 세계에 대한 힌트를 품고 있는 물리적 구조로서 존재했다면, <림보> 어떤 세상이나 경험에 대한 상징에 가깝게 나타나고 있어서 더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가 존재해요. 거대한 거미가 등장한다는 것이나 운동신경이 뛰어난 소년이 수영은 하지 못한다는 걸 공포증으로 해석한다거나, 소년을 공격하는 아이들은 사실 현실에서 소년을 괴롭혔던 아이들이라거나, 거대한 톱니바퀴와 불타는 타이어 그리고 마지막에 소년이 뚫고 지나갔던 유리벽을 통해 소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추정한다거나 하는 거죠. <인사이드>와는 조금 색다른 방향으로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소년과 소녀

이야기로서 <인사이드>와 가장 큰 차별점이자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큰 궁금증을 던지는 건 소년이 절실히 다가가고자 하는 어떤 소녀의 존재입니다. 중후반부 정도에 환영처럼 잠깐 모습을 비추고 사라졌다가 마지막에 가서 다시 등장하는 소녀는 이 소년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가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림보'가 신을 몰랐던 이들을 위한 평화로운 지옥이라는 걸 생각하면, 소녀는 소년이 죽음마저 가로질러 만나고자 했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소녀를 소년의 여동생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년은 이미 죽었고 사후세계인 림보 속에서, 혹은 림보를 탈출해 여동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거죠. 여동생이 살아있는지, 죽었다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또 의견이 다양한 것 같고요.


<림보>의 상징과 캐릭터,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는 것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건 게임 속에서 소녀를 찾아가는 소년에게서 애절함이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검은 그림자 속에서 눈만 하얗게 빛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어있는 표정과 선명한 눈빛이 감정 표현에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고 있는 아이의 표정처럼 다가왔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반복하는 경험에서 절실함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게임이니까 죽으면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림보>는 죽어보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함정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대개 굉장히 끔찍해요. 흑백의 단순한 그림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그렇게 끔찍하게 죽을 때도 소년은 왠지 담담해 보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애초에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굉장히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소년이 게임 플레이 속 모든 죽음을 기억하고 있고 모든 죽음을 이미 감수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싶어 졌어요. 림보는 이미 죽음을 겪은 이들의 세상이니까요. 그렇게 순수한 이들의 지옥 속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도 소녀를, 여동생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그만큼 애절하고 절실하며 필사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랬더니 <인사이드>에 비해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던 게임이 곱씹을수록 더욱 깊은 감상을 남기게 되는 것 같네요.




#15 <네바(Neva, 2024)>


|타이틀| 네바(Neva)

|최초출시일| 2024년 10월 15일

|개발사| Nomada Studio

|유통사| Devolver Digital

|구입처| Steam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여름밤, 얕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알바와 네바

<네바>는 아름다운 미술과 음악,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그리스(Gris, 2018)>를 만든 Nomada Studio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Nomada Studio의 <그리스>와 <네바>의 관계는 Playdead의 <림보>와 <인사이드>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첫 작품이 훌륭한 완성도와 개성으로 큰 호평을 받았는데 비슷한 스타일의 차기작에선 더 발전된 모습으로 이를 뛰어넘어버리는 거죠. 게다가 이들 모두 어떤 대사나 설명도 없이, 오직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만 세계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리스>를 중간에 그만뒀습니다. 제게는 맞지 않았어요. <그리스>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서정적인 음악과 눈을 뗄 수 없는 수채화풍의 미술은 정말 훌륭했어요. 다양한 퍼즐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소녀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 심정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론 결말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기는 하지만, 적어도 게임 플레이 당시에는 느끼기 어렵고, 알고 싶다는 욕망도 그다지 생기지 않았습니다.


 <림보>나 <인사이드>도 주인공의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고 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점에서 <그리스>와는 달랐어요. <그리스>는 세계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고, 스토리텔링이 상징에만 너무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가 죽음을 수용하는 다섯 단계를 담아내고 있고, 거기에 슬픈 이야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순간순간의 게임 플레이나 세계관에 잘 녹아있다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한참을 진행을 해도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퍼즐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인물의 감정과 경험에 몰입하고 이야기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제게는 흡인력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네바>는 달랐습니다. <그리스>와 비슷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훨씬 균형이 맞춰진 느낌이었어요. <네바>의 세계는 구체적이고 단단한 물리적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캐릭터들의 연대와 세계와의 관계,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입체적이고 역동적이고 다채로웠고요. 주인공 알바의 정체와 적 검은 존재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하면서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게임 플레이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어요. 심지어 <림보>나 <인사이드>, <그리스>에는 없는 액션까지 있었어요. 가끔 제법 난이도가 있는 전투가 나올 뿐만 아니라, 최종 보스와의 승부는 심지어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검투입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홀로 남은 겨울

<네바>는 회색 머리 소녀 알바(Alba)와 어린 사슴늑대 네바가 숲을 집어삼킨 어떤 검은 존재와 맞서며 숲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숲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극적이고 절묘한 선율의 음악은 알바와 네바의 여정에 감정적인 몰입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큼 훌륭합니다.


변하는 건 숲의 모습뿐만이 아닙니다. 자그만 강아지 같던 네바도 계절의 변화와 함께 성장합니다. 처음엔 알바의 보호가 필요했던 네바는 어느새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더니, 언제부턴가는 알바를 돕게 됩니다. 그리고는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어엿한 성체가 되어 함께 적과 맞서고는 이윽고 알바를 떠나요.

강아지 같던 시절의 네바(왼쪽)와 어엿한 전사가 되어 검은 존재와 맞서는 네바(오른쪽)

게임 속에서 알바의 대사는 네바를 부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지정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알바가 다양한 톤으로 네바를 불러요. 평화로울 땐 다정한 목소리로 네바를 부르고 위험할 땐 다급한 목소리로 네바를 부르지요. 네바가 바로 옆에 있을 때는 쓰다듬기도 하고 꼭 안아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바가 떠난 뒤, 겨울 풍경 속에 홀로 남았을 때 네바를 부르는 버튼을 누르면 알바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네바를 부릅니다. 하지만 네바는 돌아오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아요. 그곳에 없으니까요.


게임의 주인공은 알바이고 플레이어의 캐릭터도 알바지만, 네바 역시 게임 속 서사의 주인공입니다. 봄에서 다음 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네바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삶의 순환을 담아내고 있어요. 개발사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부모이자 양육자로서의 두려움을 게임 플레이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읽고 게임 속 경험을 다시 되돌아보니 확실히 그랬던 것 같아요. 굉장히 축약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분명 세상을 뒤덮고 있는 많은 위험을 뚫고 자녀를 보호하고, 자녀는 그런 보호 속에서 성장하고 변하며 떠나가는 과정이 알바와 네바의 관계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알바와 네바, 이별의 순간

그렇다고 그저 일반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아닙니다.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작지만 큰 울림을 남기는 서사적 반전과 엔딩 크레딧에서 밝혀지는 알바와 네바의 관계는 게임을 더 감동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가 훨씬 더 다양한 관계와 연대를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게임 속 모든 선택적 업적을 달성했을 때 볼 수 있는 히든 엔딩을 포함하면 더욱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는 <그리스>처럼 상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네바>는 그런 상징을 내려놓더라도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와 서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모든 것을 상징에 의존한 <그리스>와 차별되고, 그런 차이가 제가 <그리스>는 그리 즐기지 못했지만 <네바>는 아주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습니다.


매력적이지만 퍼즐과 분위기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구조물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어요. 퍼즐 중 많은 부분, 특히 인공 구조물을 이용한 것들은 그 작동 원리가 너무 작위적이고 세계관에 녹아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 속에 그런 독특한 인공물이 있는 이유는 일단 내려놓더라도 왜 그렇게 작동하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남았어요. 오직 퍼즐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 게임을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게임 속 세계의 구조 역시 특별한 배경이나 서사가 녹아있다기보다는 그저 몽환적이고 신비로워보이는 우주관을 미적인 이유만으로 가져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림보>, 특히 <인사이드>에서는 퍼즐 자체가 세계관에 대한 힌트이자 묘사였고, 세계의 구조 역시 서사의 일부였다는 걸 생각하면 <네바>의 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조금 김이 빠지는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영향이 너무 많이 묻어난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감염된 야생동물, 특히 감염된 거대 멧돼지는 <원령공주>의 재앙신 멧돼지 나고를 떠올리게 하고, 하얀 가면을 쓴 검은 괴물들은 일부 장면에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수준입니다. 오마주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그렇다고 <림보>나 <인사이드>보다 못하냐면, 그건 결코 아닙니다. 이 두 작품에는 없는 것 역시 <네바>에는 있으니까요. <네바>의 미술과 음악은 훨씬 아름답고 다채롭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선 두 작품이 선명하지만 평면적인 캐릭터 1인의 활약극이었다면, <네바>는 더욱 풍부한 감정과 서서 속에서 두 캐릭터의 깊은 관계와 연대와  담아내고 있어요.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런 관계와 연대가 더욱 확장되고요.


결과적으로 <네바>는 눈과 귀, 마음이 모두 황홀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이드>에 비해 조금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 아쉬움을 대신 충족해 줄 다른 매력이 있고요. Playdead의 신작이 기대되는 것처럼, Nomada Studio의 신작도 기대가 되네요. 이제 막 <네바>가 나왔으니 많이 기다려야 하겠지만요.


지금까지 플레이한 게임들

이 다음엔 여담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그게 끝난다면 진짜 당분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은 해보고 싶은 게 혹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컨트롤: 얼티밋 에디션(Control: Ultimate Edition, 2020)>의 맥 버전이 올해 중에 나온다는데 예정대로 나온다면 또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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