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도연 Nov 13.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3: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Resident Evil Village (2021)>

|타이틀|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Resident Evil Village)

|최초출시일| 2021년 5월 7일

|개발사| Capcom

|유통사| Capcom

|구입처| App Store (Mac)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제게 <바이오하자드>는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찾아왔습니다. 게임 <바이오하자드(Biohazard, バイオハザード)> 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원래 제목으로 발매되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으로 발매되었고,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후자의 제목을 사용했거든요.


그나마 만족스러웠던 영화 <레지던트 이블> 1편과 2편

집 앞에 있던 영화 대여점에서 영화 한 편을 빌리면 2박 3일 동안 매일 보고 반납하며 또 다른 걸 빌려보던 제게 영화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의 주인공이 좀비를 때려잡는다는 내용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2002)>은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재밌게 봤던 걸로 기억해요. 꽤나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들도 있고요. 2년 뒤에는 속편 <레지던트 이블 2(Resident Evil: Apocalypse, 2004)>가 나왔습니다. 괜찮았어요. 볼만했습니다. <레지던트 이블 3(Resident Evil: Extinction, 2007)>는 형편없었습니다. 넘치는 액션 덕분에 지루하진 않았지만 내용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고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기억에서 완전히 휘발되어 버렸어요. 이후 속편들은 TV에서 가끔 보여줄 때만 조금씩 봤는데 안 보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니아 층이 확고한 덕분에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해서 6편까지 꾸준히 나왔더라고요. 하지만 <레지던트 이블>에 대한 제 관심은 3편 이후로 증발해 버렸어요.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원작이 게임 <바이오하자드>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보니 영화 2편까지만 게임과 설정이 좀 비슷하고 그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 정도만 영화 잡지를 챙겨보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그냥 좀비가 나오는 공포물 게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 WWDC에서 맥에서 AAA급 게임이 돌아간다고 자랑하며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를 소개했어요. 게임 <바이오하자드>가 아직도 나오고 있었어? 하는 반응과 더불어 왠지 멋있어 보이는 포스터 때문에 제법 인상에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죠. 그때도 역시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덕분에 더 많은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 글의 주제였던 <툼 레이더>와 함께 떠오른 게 WWDC 2022에서 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였어요. 바로 맥 앱스토어로 가서 구입했지요.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

아래의 내용은 조금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요, 어차피 게임 시작하고 5분이면 다 드러나는 내용이긴 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진짜 반전은 밝히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게임의 시작은 6개월 된 딸에게 조금은 괴기스러운 동화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미아 윈터스(Mia Winters),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이자 플레이어인 에단 윈터스(Ethan Winters)의 대화입니다.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총알 세례가 집안을 덮치고 웬 고릴라 같은 남자가 나타나 딸 로즈메리(Rosemary, 혹은 로즈)를 데려가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에단과 미아의 대화에는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고 집을 습격해서 미아를 확인사살하고 로즈를 납치하는 크리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에단과 잘 아는 사이인 듯하고. 


그래서 일단 멈추고 검색을 해보니 전편인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7: Biohazard, 2017)>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는 숫자는 붙지 않았지만 8편이었고요. 하지만 7편은 맥에서 플레이할 수가 없었어요. 콘솔과 윈도우 버전만 있는데 제겐 둘 다 없으니까요. 흠. 그래서 그냥 유튜브에서 스토리 요약 영상을 봤습니다. 아하. 그런 거였군. 에단과 미야의 과거, 크리스와의 관계가 대충 이해가 갔어요.


…근데 크리스가 미아를 죽이고 로즈를 납치를 한다고? 충격과 공포의 오프닝이었죠. 무슨 설명이라도 나오려나 싶었는데 주인공 에단이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마을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수상한 마을 풍경

마을, 혹은 빌리지

게임 속 배경의 중심에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방향에 있는 성이나 공장, 저택, 호수 등이 각 스테이지의 주요 무대가 됩니다. 중간중간에 마을로 여러 번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마다 마을의 상태가 조금씩 달라지고 시간이 지난 만큼 경치도 달라지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 마을의 모습이 궁금해질 정도였습니다. 신기한 점은 분명 2021년이 배경임에도 마을은 과거의 모습이었던 거예요. 현대적인 총도 있고 무전기나 라디오, 전기도 있지만 오랫동안 고립된 것처럼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중세와 근대의 중간 정도로 보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듯한 설정이 있었고요.


처음 마을에 도착하고 총을 손에 넣은 다음부터는 '라이칸'이라고 불리는, 한때는 마을 주민이었던 괴물들에게 정신없이 습격을 받는데요, 이때는 제법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정말 쉬지 않고 쏟아졌거든요. 첫 만남부터 왼쪽 손가락을 물어 뜯겼을 때는 정말 놀랬어요. 주인공이 시작부터 회복할 수 없는 신체 결손을 겪다니! 하면서. 하지만 이건 나중에 일어날 수많은 고생 중 일부에 불과했지요.

드미트리스쿠 성의 로비

첫 번째 스테이지, 드미트리스쿠 성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에서 스토리 예고편을 봤었어요. 알치나 드미트리스쿠(Alcina Dimitrescu)라는 거대한 여성과 세 딸들이 악역으로 나오더군요. 그래서 세 딸이 중간 보스고 드미트리스쿠가 최종 보스라고 생각했어요. 알치나를 쓰러뜨리면 되는 거구나!라고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알고 보니 알치나 드미트리스쿠는 첫 번째 중간 보스이고 알치나 외에도 3명의 중간 보스가 더 있었어요. 그리고 최종 보스는 마더 미란다(Mother Miranda)라는 인물이고요. 게임의 볼륨이 갑자기 4배로 늘어난 느낌이었습니다.


드미트리스쿠 성은 무서우면서도 멋졌어요. 크고 넓고 고상한 성의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좀비를 닮은 괴물들이 슬금슬금 다가올 때는 긴장감이 넘쳤고 알치나의 세 딸들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는 정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우아한 지상부와는 달리 끔찍한 고문과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지하 감옥의 디테일한 디자인은 고통스러운 상상을 자극했고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튜브에서는 알치나 드미트리스쿠와 세 딸들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본격적인 악역이기도 하지만 캐릭터 디자인도 매력적이었기에 이해가 갔습니다. 다만 세 딸들이 전 솔직히 잘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목소리의 톤도 다들 비슷했던 것 같고, 에단 윈터스를 대하는 태도나 전투 스타일, 최후의 순간도 유사했고요. 설정 상으로는 이런저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일부 대사를 제외하고는 차이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존재감이 뚜렷한 만큼, 각자의 개성이 크게 드러났으면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습니다.


알치나 드미트리스쿠와 세 딸들.

레이디 드미트리스쿠는 동작이 조금 느린 편이어서 회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아요. 하지만 총이든 칼이든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에서 나타날 때의 압박감은 상당했습니다. 어디서 나타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어어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해야 할 때 문을 나서면서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어요. 디미트리스쿠가 유일하게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인 상인 듀크의 방이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지요.


나중에 방문하게 되는 다양한 장소들도 모두 개성적이었지만 드미트리스쿠 성은 그중에서도 두드러졌어요. 공포스러운 지하실부터 시작해 정말 귀족들이 생활할 것만 같은 다양하고 고풍스러운 방들과 미로를 떠올리게 하는 비밀스러운 공간들, 그리고 중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옥상까지 정말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상징 같은 장소로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다만 세 딸 그리고 드미트리스쿠와의 전투는 기대한 것보다 조금 싱겁게 끝나버렸어요. 차라리 도입부나 후반부에서 만나게 되는 라이칸 물량 공세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난이도가 3단계 중 가장 낮은 캐주얼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폭포 옆에 있는 도나 베네비엔토의 집

도나 베네비엔토의 집

유튜브에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검색했을 때 드미트리스쿠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도나 베네비엔토(Donna Beneviento)였습니다. 베네비엔토의 집은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서운 공간으로 알려져 있고요. 확실히 공포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테마부터가 공포물의 단골 소재인 인형의 집이고요. 지하실에는 불쾌함의 골짜기를 이끌어내는 미아 윈터스 마네킹까지 있고. 게다가 무기가 모조리 사라져서 무력한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베네비엔토의 집에서 사람들을 가장 큰 공포에 빠뜨린 건 사실 인형이 아니었어요. 이 무대의 진짜 주인공은 '베이비'라고 불리는 끔찍한 괴물입니다. 기괴한 외형의 거대 태아 모습을 한 베이비는 기괴한 목소리로 엄마아빠를 부르며 다가오는데 회피에 실패하면 에단을 그대로 꿀꺽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무조건 도망을 치거나 옷장 혹은 침대 밑으로 숨어야 하는데…. 좀 익숙하더군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속 제노모프를 떠올렸어요. 하지만 멀리서 눈에 들어오기만 해도 바로 달려들어 플레이어를 순살해 버리는 제노모프와 달리 베이비는 느린 데다가 그리 똑똑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베이비는 공포 분위기 조성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존재감이나 난이도 자체는 제게 조금 식상했습니다. 이게 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때문입니다.


이 공간의 주인인 도나 베네비엔토는 4명의 중간 보스들 중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였어요. 자신이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잘못된 방법으로 갈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심각한 대인기피증 때문에 인형 엔지를 통해서만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과거가 엮이면서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혹은 딸)에 대한 그리움도 여기저기 묻어있고요. 영어판 성우(And Norris)는 인터뷰에서 도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더라고요. 

왼쪽: 도나 베네비엔토와 인형 엔지. 오른쪽: 지하실 침실에 있는 하얀 옷과 사진들.

베네비엔토의 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굉장히 일상적인 공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귀족 냄새 물씬 풍기는 드미트리스쿠 성의 방과는 달리, 진짜 보통 사람이 생활하고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 곳곳에 있었어요. 테이블 위의 빈 찻잔과 수많은 책 같은 것들. 어느 옷장에는 필름통이 가득했는데 마침 지하실에는 영사기와 스크린이 있었어요. 영사기에는 에단의 가족을 찍은 필름이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아마 옷장 속 필름에는 도나 자신의 가족 영상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 침실 벽에는 새하얀 옷이 걸려있는데요, 도나가 입기에는 작기 때문에 아마 8살에 세상을 떠난 동생(혹은 딸)의 옷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 옆에는 동생과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있고요. 또 어린 시절 자신을 도와준 집사에게 집사의 죽은 아내를 환영으로 보여주었다는 설정도 있었어요. 이런 것들 때문에 평소에 도나가 과거에 그리고 게임 속 시점에서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도나 베네비엔토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해 실험하고 살해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요. 옷장 속 필름에는 가족 영상이 아닌 마을 주민에게 자행한 실험 영상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도나 베네비엔토의 집은 전체적인 길이는 드미트리스쿠 성에 비하면 초라할 만큼 짧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왼쪽: 살바토레 모로(Salvatore Moreau). 오른쪽: 모로의 저수지

모로의 저수지

솔직히 말해 제일 귀찮았던 공간입니다. 길을 찾기도 어려웠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도구를 찾는 것도 번거로웠어요. 중간 보스 중에서 제일 끔찍하고 처량한 모습을 한 모로는 악역 캐릭터로서의 매력도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거겠지만 다른 세 명의 중간 보스에 비하면 불쌍해 보일 정도로 초라했어요. 미란다는 왜 이런 녀석을 부하로 데리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저수지 근처에 있는 낡은 간판을 통해 모로가 원래 마을의 의사였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과거가 궁금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공장

저는 처음에 이 게임을 일본어 더빙으로 플레이를 했어요. 일본에 오래 살았던 덕분에 일본어는 자연스럽게 알아들을 수 있고, 그렇다면 자막 대신 음성을 직접 듣는 게 더 몰입감이 커질 것 같아서요. 하지만 드미트리스쿠 성을 끝낸 다음에 영어 음성 한글 자막으로 바꿨습니다. 유튜브에서 하이젠베르크 영어 성우의 목소리를 들었거든요. 일본 성우 목소리도 좋았지만 영어 성우의 목소리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왼쪽: 칼 하이젠베르크(Karl Heisenberg), 오른쪽: 하이젠베르크의 공장 내부

하이젠베르크의 공장은 그때까지 거쳐온 공간 중에서 가장 어려웠어요. 적의 물량 공세가 엄청났거든요. 괴물의 종류가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드미트리스쿠 성의 적은 드미트리스쿠와 세 딸을 제외하면 두세 종류 정도밖에 없었지만, 하이젠베르크의 공장에는 일곱에서 여덟 종류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주 싸움을 벌이면서도 지겨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좀비와 기계를 결합한 듯한 디자인과 설정도 재밌었고요.


하이젠베르크는 중간 보스 중에서 독특하게도 에단에게 협력을 제안하는 캐릭터입니다. 자신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든 미란다에 대한 증오를 갖고 있었죠. 그 과정에서 로즈 윈터스를 무기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 에단은 당연히 거절하지만요. 또 바이오하자드 세계관에서 바이오테러 대응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BSAA와의 연관성이 암시되는 부분도 있어서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다른 중간보스들에 비해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였다보니 하이젠베르크의 과거보다는 What If가 궁금해졌습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미란다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면? 에단이 하이젠베르크에게 협력했다면? BSAA와 하이젠베르크가 정말 한 편이었다면? 등등.

아쉽게도 하이젠베르크의 공장이라는 공간 자체는 별 매력이 없었어요. 많이 헤매기도 했고요. 


크리스 레드필드

크리스 레드필드와 그의 동료들

하이젠베르크와의 전투 이후, 게임의 시점은 크리스 레드필드(Chris Redfield)로 바뀝니다. 1편부터 등장해 시리즈와 함께 나이를 먹어오며 바이오테러 대응에는 아주 이골이 난 베테랑 캐릭터라고 하네요. 전 이게 <바이오하자드> 첫 경험이니 대충 그런 줄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화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크리스는 에단이 온몸을 물어 뜯기는 고생을 하며 처리했던 라이칸들을 그냥 파리 잡듯이 쓸어버렸어요. 게임의 장르가 아주 달라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바이오하자드>가 어느 시점부터 공포 게임이 아니라 액션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를 받다가 민간인 에단 윈터스가 주인공이 된 7편부터 다시 공포 장르로 회귀했다고 하던데 그 차이가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반전의 순간

진실이 드러나는 충격과 공포의 순간

크리스 시점이 끝나고 나면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최고 반전이 등장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전체에서 최고의 반전이라고도 하더군요. 저는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배경 지식을 수집하다가 이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에 조금 노출되기는 했습니다만, 다행히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고 잘 설계된 연출 덕분에 제법 충격을 받을 수 있었어요. 7편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전작을 미리 공부해두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요. 게임 발매 당시에 실시간으로 7편을 플레이하고 이번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 같은 반전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플레이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그와 동시에 이 반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 에단 윈터스의 동기가 다시 한번 강조돼요. 에단은 딸 로즈 윈터스를 찾아야 합니다. 과거의 환영이 내뱉는 고통스러운 조롱을 이겨내며 에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역시 감동적이었습니다.


마더 미란다

마더 미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란다와의 최종 보스전.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조작에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플레이 중에 죽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결국 미란다와의 보스전에서는 한 번 죽음을 경험했어요. 전투가 제법 길었지만 미란다가 계속 변신을 하며 공격해 와서 다행히 지겨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미란다를 쓰러뜨린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로즈를 품에 안은 에단의 심정을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그렇게 구해낸 로즈를 크리스에게 넘겨줄 때 흘러온 에단의 울먹이는 목소리에는 눈시울이 붉어졌고요. 게임 전체를 클리어 한 이후로 유튜브에서 이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유튜버들의 리액션을 보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더군요. 스포일러라서 장면장면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에필로그

엔딩 크레딧이 끝난 후 나오는 에필로그 영상은 엔딩의 여운을 더 증폭시켜 줬습니다. 청소년이 된 로즈가 등장해요. 부모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상상 중 하나는 내 아이의 자란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잘 자란 로즈 윈터스의 모습을 에단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면, 에단이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토리가 훌륭한 게임이 있다는 건 들어봐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직접 체감해 보니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훌륭할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기까지 했고 강력한 여운을 남겼어요. 저 자신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고요. 아이가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자녀가 있다면, 특히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왼쪽: 평화로웠던 시절, 에단의 품 속에 있는 로즈. 가운데: 모든 역경을 이겨낸 에단의 품에 안긴 로즈. 오른쪽: 청소년이 된 로즈.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보다 더 훌륭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진 게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이 게임은 제게 고작 세 번째 게임이고요. 하지만 그렇기에 큰 감동을 선사한 첫 게임으로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는 오랫동안 제게 큰 의미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문득 영화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각색을 시도해 보니 이건 그냥 게임으로 남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화적 연출은 많이 있지만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옮긴다면 게임이기에 납득이 갔던 세계관의 설정과 인물의 동기, 행동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게임의 서사적 언어와 영화의 서사적 언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차이를 잘 해석하고 번역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더군요. 많은 각색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건데 그러면 게임 팬들이 쉽게 좋아하지 않을 테고요. 그래서 게임 원작 영화들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또 그래픽 기술의 발전 덕분이 이미 실사 수준의 영상이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마당에 이걸 굳이 인간 배우로 재현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이고요. 문자로 된 소설이나 그림으로 된 만화를 실사화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왼쪽: 미아 윈터스. 오른쪽: 듀크.

주요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앞에서는 언급을 잘하지 않았지만 에단의 아내인 미아 윈터스와 마을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상인 듀크(The Duke)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아는 따지고 보면 에단 윈터스가 그 많은 고난을 겪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만악의 근원은 7편의 에블린과 8편의 마더 미란다지만, 그 많은 사건과 사고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에단 윈터스를 덮친 건 미아가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사실 미아의 비밀과 거짓 모두 에단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냥 비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게임 속) 현실의 폭풍은 얄팍한 비밀과 거짓 따위는 산산이 부숴버릴 만큼 거칠게 몰아쳤지요. 한때는 위험한 조직에서 위험한 실험을 했지만 많은 고생을 겪은 후 남편인 에단과 딸 로즈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로즈의 진심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미아에게 닥친 비극 역시 가볍지는 않았고요. 


그리고 상인 듀크는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였어요.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모르는 게 더 좋은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이런 캐릭터는 각자의 상상 덕분에 더 흥미로워지니까요. 듀크는 그저 수레 뒤편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물건과 요리를 파는 게 전부이지만 어지간한 중간 보스들과 맞먹는 존재감과 비주얼을 보여 줬습니다. 게임 중반부터 요리도 해주는데 아이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두 가지 메뉴 밖에 먹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어요. 듀크에겐 크든 작든 분명 어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최종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상점을 이용했을 때 듀크가 “Amat Victoria Curam. Please, be well (승리는 준비된 자를 사랑합니다. 부디 몸 조심 하시길).”라고 했던 말이 묘하게 진심으로 다가와 낯선 우정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M2 맥북에어에서 클리어한 다음날, 같은 게임의 iOS 버전이 공개되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5나 엑스박스 X|S 같은 최신형 콘솔에서 돌아가던 게임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꽤나 화제가 되었지요. 아이폰은 최신형인 아이폰 15 프로에서, 아이패드는 M 시리즈가 장착된 모델부터 가능하다는데, 그래서 아쉽게도 제 아이폰 13 프로와 A12Z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년에 아이패드를 바꿀까 고민 중이었는데 일단 이유가 하나 추가되기는 했네요.


애플은 요즘 게임에 힘을 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기존에도 맥이나 아이패드, 아이폰에서 돌아가는 게임은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이 좀 지난 것이거나 조금 불완전하게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작년부터는 네이티브 AAA게임이 하나둘 씩 나오고 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로 시작해 시리즈 최신작인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Resident Evil 4 Remake, 2023)>과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Assassin's Creed Mirage, 2023)>, <데스 스트렌딩 디렉터스컷(Death Stranding Director's Cut, 2021)> 등이 차례로 공개 예정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관심은 갑자기 생긴 것인 만큼 또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 내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M2 맥북에어 기본형이라는 사양도 고사양 게임들을 언제까지 받아줄지 모르겠고요. 그래도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올해 12월에 나온다고 하니 그것까지는 아마 해보지 않을까 합니다.

왼쪽: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 오른쪽: <배트맨: 아캄 시티>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다음으로 해볼 게임은 조금 고민하고 있어요. 검토 중인 건 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Rise of The Tomb Raider, 2015)>와 배트맨 아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배트맨: 아캄 시티(Batman: Arkham City, 2011)>입니다.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는 리부트 시리즈 중 평가가 가장 좋다고 하고 <배트맨: 아캄 시티>는 게임을 좋아하는 제 친구가 오래전부터 제게 꼭 해보라고 권했던 게임입니다.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연말까지는 많이 바쁠 거 같아서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짧게 먼저 해본 게 하나 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DLC(Downloadable Contents)인 <섀도즈 오브 로즈(Shadows of Rose, 2022)>입니다. DLC 개념은 잘 몰랐는데 일종의 추가 컨텐츠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더군요. <섀도즈 오브 로즈>는 본편에서 에단이 지켜낸 딸 로즈의 이야기입니다. 해보지 않을 수가 없겠죠. 분량도 그리 길지 않아서 출장 때문에 이동하는 시간에 해봤어요. 그래서 다음 게임로그는 <섀도즈 오브 로즈>입니다.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겜알못의 게임로그 #2: <툼 레이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