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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Sep 03. 2021

돈가스 테라피

 좌절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중 3시와 4시 부근에 찾아오는 좌절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홀로 밥을 먹기에 가장 좋은 시간, 한산한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거리고 나가 사람들 틈에 섞이면 다시 힘이 난다. 그중 최고의 메뉴는 돈가스이다. 먹기에도 편하고 바삭한 튀김옷에 든든하기까지 하나. 돈가스가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경양식 돈가스는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두툼한 고기를 균일하게 썰어 육즙이 가득한 단면이 보이고 밥과 샐러드가 따로 나오는 일식 돈가스여야 한다. 그게 첫 번째 조건이다. 경양식 돈가스가 싫은 이유는 정말이지 너무 많다. 둥든 접시에 경계 없이 담겨 소스가 하얀 밥과 샐러드와 섞이는 게 싫고, 얇은 데다 눅눅해진 고깃덩어리를 써는 것도 싫다. 그때마다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는 공사장 소음보다 싫고, 지저분해진 나이프도 싫다.

 두 번째 조건은 메밀 소바를 함께 먹는 것이다. 반드시 세트가 아닌 단품으로 주문해야 한다. 돈가스 1인분, 소바 1인분 총 2인분이 필요하다. 돈가스가 나오면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옆으로 눕힌 가장 크고 아름다운 조각을 집어 소스에 찍지 않고 반을 먹는다. 남은 반은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데, 씹는 동안 소바를 먹을 준비를 한다. 곱게 갈리 무와 얇게 썰린 파, 와사비 모두를 쯔유에 넣고 면을 잘 적셔 먹는다.

 세 번째 먹을 때는 정말 먹기만 한다. 티비도 유튜브도 보지 않고 모든 감각과 정신을 저작운동에 집중한다. 잘 씹어 음미하고 삼킨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가 여러 가지 문제들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저의 돈가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친애하는 하루키 선생의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보면 굴튀김 이론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자기소개서 쓰기가 의문인 한 독자가에게 하루키 선생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다 보면 자연스레 대상과 나의 관계, 거리가 자연스레 표현되어 끝까지 쓰다 보면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의문이 들겠지만 꽤 효과 좋은 방법 같습니다. 제가 자란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도 없는 작은 소도시입니다. 줄곧 경양식 돈가스만 먹었음에도 이토록 혐오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야 먹어본 일식 돈가스에 왜 이리도 집착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젠장 하루키 선생님. 당신은 역시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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