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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Dec 30. 2021

행복하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편안하다.

행복 평준화 이론

행복하면 불안하다. 짧은 행복 뒤엔 언제나 불행이 따라오고, 불행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아무렇지 않게 웃을 일이 찾아온다. 그래서 불행하면 편안하다. 행복 뒤에는 불행, 불행 뒤에는 행복. 고진감래와 흥진비래 이것이 나의 행복 평준화 이론이다. 겹겹상도 겹흉사도 좀처럼 없는 바트 심슨과 검정 고무신 기영이 두상 같은 그래프를 생각하게 된 건 초등학생 때이다.


잼민이란 말도 없던 시절, 초딩 그 자체 었던 나는 집 앞 문방구의 종이 뽑기에 미쳐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기훈처럼 엄마 지갑에 손을 대서라도 매일같이 문방구로 향했고, 빈 손으로 돌아온 날이 더 많지만 이따금 양손 가득 상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 상품의 출처를 엄마에게 밝혀야 하는 문제는 뒤로 한 채, 게임 CD와 무전기, 스카이 콩콩까지 엄마는 사주지 않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바빴다.


마트에서 산 장난감과 달리 문방구의 경품은 쉽게 부서지고 고장 났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진리를 몰랐던 나는 좋은 일 다음에는 당연하게도 심지어 야속하게도 빨리 불행이 찾아온다 생각했다. 이후 행복할 때면 초초하게 다가올 불행에 대비했고, 불행할 땐 덤덤히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빠짐없이 기재된 낙천적 성격은 전부 문방구 뽑기 덕분이다. 존버엔 최적화되었지만 안 될 일에 쉽게 돌아설 수 있는 용기를 잃은 것도 어쩌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종이 뽑기를 끊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내 삶은 행복 평준화 이론에 근거한다. 내일은 더 나을 거라 믿으며 매일을 버텼고 이만하면 됐다는 친구들의 말을 무시한 채 몇 년째 준비생으로 살아왔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도 없다고 느껴질 때도 결국 저층에서 올라 와 1층 정도의 삶을 누리게 된다. 뭐가 됐든 평준화된 평균치의 행복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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