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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Oct 23. 2021

언제까지 타올라야 할까 그리고 뭐가 남을까

이창동 감독 <버닝> 후기/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우리의 청춘이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 주고 살 순 없지만 그 값어치가 몹시 소박하고 저렴하다. 푸른 봄이라 불리지만 꽃샘추위는 매섭기만 하다.


버닝을 처음 봤을 때 잔뜩 엉켜버린 결말에 당혹스러웠다. 벤은 해미를 죽였을까. 그 고양이는 보일이가 맞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 찝찝함이 분해서 시작점의 한 가닥을 잡고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 결과 벤은 해미를 죽이지 않았다는 결말과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청춘의 분노를 다룬 영화이다. 분노에 있어 고양이의 이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버닝> (2018)


해미의 이야기

해미는  늘 삶의 의미에 배고팠다. 그 대단하고도 원시적인 답을 찾기 위해 카드 빚까지 내며 아프리카로 떠났지만 세상의 끝에서 바라본 노을은 정답이 되지 못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도시는 더 잔인하게 그녀를 반겼다. 남산타워의 창문에 반사되는 빛만이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북향의 창으로 들어왔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종수마저 그녀에게 창녀라 말한다. 결국 그녀는 우물에 몸을 던졌고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의 끝에서 그녀가 보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끝이었다.


"나도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죽는 건 너무 무섭고 그냥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닝> (2018)


종수의 이야기

종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부족할 것 하나 없으면서 부족한 것 투성이인, 그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해미를 만나는 벤을 보며 개츠비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의문의 남자가 자신의 데이지를 꺾어갔다. 종수는 톰 뷰캐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벤에게는 변치 않는 순수함은 없었고 오히려 진심으로 해미를 원하는 종수가 개츠비에 가까웠다. 다만 위대하지 못했고 가난했다. 그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비추지 못할 만큼 흐릿했고 그 걸음걸이마저 뒤에서 누군가 떠밀어 걷는 듯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의 무게에 걸맞게 무기력했다.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버닝> (2018)


벤의 이야기

벤에게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의 기념품이었다. 그의 다음 여자 친구가 면세점에서 중국인을 상대한다는 게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종수와 해미, 벤 이 셋은 함께 자주 만났으며 벤은 종수에게 자기도 모르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 모든 걸 다 가진 남자가 가진 게 하나 없는 남자를 질투한다. 


"종수씨는 너무 진지한 거 같아. 진지하면 재미없어요. 베이스를 느껴야 돼요. 뼛속에서부터 그게 좀 울려줘야 그게 살아있는 거지"


나의 이야기

버닝을 보며 누구보다 해미가 가장 가깝게 느껴졌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그녀가 낯설지 않았다. 해미는 벤와 그의 친구들에게 '리틀 헝거'가 '그레이트 헝거'가 되는 춤을 보여주지만 그들에게는 하품 나오고 우스울 뿐이었다. 그 장면을 작은 휴대폰 모니터로 보는 나까지 치욕스러움에 손이 떨렸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얘기할수록 나는 사람들에게 우스운 사람이 되어 간다.


문창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고 싶지만 수수께끼 같은 세상 속에서 종수가 쓸 수 있는 글은 탄원서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실패하여 종수의 아버지는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영화에서는 종수의 재능을 다루지 않는다. 그가 어떤 대학을 어떤 성적으로 졸업했고 나이 조차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는다. 파주의 낡은 집과 어린 송아지 한 마리 그리고 낡은 트럭만이 그의 전부였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종수들이 있고 그래서 그렇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해피 엔딩을 꿈꿨다.


벤이 쓸모없고 눈에 거슬려 태운다는 비밀 하우스는 진짜 비닐하우스도 해미도 아닌 미운털이 잔뜩 박힌 우리들이 아니었을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잔뜩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만큼 순식간에 타올랐을 것이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탓에 쉽게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타올라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봄이 끝나 질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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