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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Dec 22. 2021

이 세상 모든 준비생들을 위한 영화

마이클 니콜스 감독 <졸업> 후기/리뷰

졸업은 준비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제한적 기쁨이다. 미처 새로운 소속을 준비하지 못 한 이들에게는 상실과 막막함을 주는 유예하고픈 기쁨이다. 그 시기를 자유롭게 유영하지 못하는 우리는 '준비생' 꼬리표를 붙이고 깊게 잠수한 뒤 새로운 입학을 준비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지만 어항 속 금붕어가 그렇듯 버둥거리는 게 고작인 '벤자민'을 농축된 세월을 무기로 한 '로렌스 부인'이 전라의 차림으로 유혹한다. 배가 터져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먹이를 무시할 수 없는 금붕어처럼 관계의 끝을 알면서도 '로렌스 부인'이 주는 육체적 기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로렌스'란 성을 가진 또 한 명의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한 남자의 막장 불륜극이 왜 이토록 사랑받는 걸까. 의문이 들 때쯤, 빨간 알파 로메오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이 시대 모든 청춘들을 위한'이라는 홍보 문구가 이해된다.


<졸업>(1967)

"미래에는 좀 달랐으면 좋겠어요."

불과 몇 전만 해도 내일은 다르겠지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내일은 다르겠지. 다를 거야 매일을 속이며 살았지만 어제는 오늘의 연속이었고 내일 역시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고 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은 나를 덮쳤다가고 금방 부서지고 사라지지만 하루를 보내지 못하고 남은 찌꺼기는 그대로 굳어 짓누른다. 그래서 청춘의 불안과 무기력은 방금 포장된 아스팔트처럼 매 순간이 뜨겁고 끈적끈적하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벤자민'의 하루를 아스팔트 위에서 시작해 끝난다. 부모님의 치맛자락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방황과 반항 한 번 없던 그에게는 축하 파티에 온 어른들에게 삐딱하게 구는 것도 쉽지 않다. 그 마저도 정중함 뒤에 가려진다.


<졸업>(1967)

"이번이 처음이니?"

로렌스 부인에게도 청춘이 있었다. 예술을 사랑했고 차 안에서 유독 뜨거웠던 그녀는 만족을 위해 친구 아들과의 동침도 마다치 않을 만큼 궃게 주름졌다. 평범한 대학 생활, 딱 그 시기의 방황과 일탈이 딸이라는 고난을 만들었고 그녀의 성 역시 바꿔버렸다. 그때부터 그녀의 청춘은 지기 시작했다.


<졸업>(1967)


"일레인과 결혼할 거예요"

처음으로 생긴 목표. 나는 그 힘을 알고 있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찍힌 발자국들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기 시작할 때의 경쾌함. '일레인'과 '벤자민'은 서로의 목적이 된다. 금문교를 건 거는 빨간 알파 로메오는 지도와 내비게이션 없이도 주저치 않고 속도를 내어 달린다.


그렇게 도착한 결혼식, 이미 늦었다는 사실은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라는, 괜찮아진다는 위로는 우리를 안아주지 못한다. 곧 죽을 것 같은 아픔에는 힘껏 액셀을 밟고 쉼 없이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래서 '벤자민'은 소리친다. 처음으로 자신의 목표와 목적을 위해 울부짖는다.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버스에 올라탄 두 사람에게 이제 행복한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흥분으로 가득 찬 두 사람을 숨을 돌리며 이 순간을, 어른들에게 반항했다는 희열과 마침내 내 사랑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즐기며 버스 안을 살핀다. 웨딩드레스 입은 여자와 그녀 옆의 어울리지 않는 초췌한 차림의 한 남자 그리고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 두 사람이 있는 장소이다. 돋보기 필요한 그들의 시선이 따갑다. 


<졸업>이 개봉한 1967년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혼란과 히피들로 격변기를 지나고 있었다. 기성세대의 압박과 젊은 세대의 방황 그들의 복잡한 심리와 이걸 이용하는 어른들은 50년이 지난 오늘과도 다르지 않다. 대학에만 가면, 취업만 하면 이제 끝이라는 말을 믿으며 고3과 졸업반을 보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생의 짧은 챕터의 끝을 알리는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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