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타트업 L사의 신상품 개발 워크숍

 “구글의 디자인 스프린트로 해주세요”

설립 4년차 L사에서 신상품 개발 워크숍을 의뢰해 왔다. 

 “ 구글의 디자인 스프린트로 해 주세요” 라는 요청과 함께.

최근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인지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마치 병원에서 의료진에게 “000 약으로 처방해주세요” 하는 것 처럼 셀프 처방전을 들고 퍼실리테이션을 의뢰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CEO를 포함한 전직원이 참여하는 워크숍까지 3주도 안 남은 상황, 1-Day 워크숍을 요청했다.

가장 시급한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워크숍 이후 즉시 개발을 착수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신상품 컨셉을 도출하고 싶어하는데 하루 워크숍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정제된 보고서로 의사결정을 하는데 익숙한 경영진은 워크숍에 필요한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CEO를 설득해서 워크숍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거나 워크숍에 맞게 고객의 기대수준을 조정하는 것이 퍼실리테이터의 임무다.

1Day Workshop과 2Day Workshop에서 기대할 수 있는 워크숍의 산출물을 설명한 뒤, CEO께 선택할 수 있게 했고, 다행히 대표이사께서 2일 워크숍을 선택했다. L사 창립이래 처음으로 전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2일 워크숍 여정이 시작되었다. 


급성장하는 미래기술 사업영역에서 독특한 기술력을 갖춘 L사는, 최근2년여간 자체개발 앱 출시를 하지 못하고 해당 기술을 응용한 B2B 외주 개발만 해 왔는데, 이에 실망한 개발자들이 떠나는 등 분위기가 다소 침체된 상황이었다. 또 신상품 기획은 기획팀이 담당하고, 개발팀은 기획안을 넘겨받아 개발만 하는 형태여서, 작은 조직이었지만, 사내에서 어떤 신상품들이 기획되고 있는지 정보 공유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워크숍의 메인 프로세스는 구글 벤처스에서 신사업 개발 방법론으로 고안한 ‘디자인 스프린트’ 프레임으로 설계 되었다. 디자인 스프린트는 프로젝트 관련 전문가와 의사결정권자로 구성된 7여명이 5일간 집중 워크숍을 통해 신상품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고객 테스트까지 완료하는 프로그램이다.

5일 일정인 디자인 스프린트 프로세스 중, 1일차는 사전작업을 통해서 수행하고 4-5일차는 워크숍 이후 팀이 자체 수행하되, 가장 많은 참여와 토론이 필요한 2-3일차 일정을 워크숍에서 다루는 것으로 전체일정을 디자인 했다.

2일간의 워크숍에서, 우리 프로젝트에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공유하는 Enlightning Demo, 한가지 아이디어를 8가지 다른 방식으로 빠른 시간안에 변형 해 보는 Crazy 8s 등의 활동에 참석자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을 내며 즐겁게 참여했다. 3개의 베스트 아이디어를 선택해서 스토리보드를 작성 할 때에는, 누가 아이디어를 처음 냈는지는 더 이상 찾을 수도 없고 의미도 없을 만큼 아이디어들은 Remix되고 융합되었다. 


디자인 스프린트에서 의사결정은 다수결이나 합의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지지하는 아이디어를 투표를 하지만, 이것은 여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정보일 뿐, 최종 결정은 워크숍 스폰서가 Decider로서 내려야 한다. 


이 워크숍에서 대표이사께서는 3개의 상품 컨셉 스토리보드를 검토하고, Straw Poll 결과까지 확인하고도 유독 의사결정 내리기를 주저하셨다. “혹시 모두 선택하면 안되나요?”라고 하시며 퍼실리테이터와 좌중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시기도 하셨다. 


제한적인 인적 자원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3개 상품을 모두 개발할 수는 없음으로 즉시 개발할 아이템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추후를 위한 아이디어로 남겨 놓아야 했다. 긴장되는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대표이사께서 최종 선정한 상품 컨셉을 말씀하시자,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축하했다. 


목-금의 이틀 간의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다음단계 작업에 들어가야 하니 워크숍 결과 보고서를 주말에라도 최대한 빨리 보내 달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회사의 전직원이 함께 만든 L사의 신상품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들에게 어떤 워크숍을 맡고 싶은 지 선택하게 하면, 아마 대부분 신상품개발 워크숍을 선택할 것 같다. 몇 개월 후, 워크숍에서 간략한 스케치로 봤던 서비스와 상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하고, 그 아이디어가 잉태되던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엄마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로 우리를 놀라게 할 아이디어들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잠들어 있다. 그 아이디어들을 세상밖으로 불러내고, 형태를 갖추도록 돕는 퍼실리테이터들이 믿는 것처럼, 답은 사람안에 (in people) 있다.


작가의 이전글 두 번의 조직문화 워크숍을 되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