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교육분과 안종민
왜 내 인생에 내가 없는 기분일까요?
기업의 방향성과 기업 구성원의 방향성이 일치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잖아요. 저는 회사에 있으면서 스스로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어요. 제가 다니는 기업의 비전과 저의 비전이 일치한다고 생각했죠. 당시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소위 말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했는데요. 저 역시 청년과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퇴사했어요. 왜였을까요? 사실, 단순히 방향성만 맞는다고 해서 기업과 기업구성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회사에서 만족스러운 경험들을 많이 하면서도, 어느 순간 ‘내 인생에 내가 없는 기분’을 느꼈죠. 올해 초엔 대체휴무가 많이 쌓여서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갔었는데요. 그때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사할까?’
회사의 비전과 내 비전이 과연 일치하는지.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길을 달려본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정말 그런지. 애초에 내가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행 동안 생각을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죠. 동시에 걱정도 들었고요. 막상 그만두면 뭐하지? 일이 갑자기 끊겨버리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너무 무기력해질 거 같은데...
결국, 그래도 퇴사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다시 달리더라도 지금은 잠깐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잠깐이라도 멈추지 않으면, 나중에 1년 뒤에 여기 와서 이 고민들을 똑같이 하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마음적인 여유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다시 말하면 일종의 ‘갭이어’가 필요했죠.
직장인 갭이어, 기업과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해요.
사실 지금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올해는 ‘갭이어’ 시간을 가지려고, 일을 안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갭이어가 꼭 일을 쉬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갭이어의 진짜 의미는 ‘진짜 나를 찾는 것’이잖아요. 요즘은 일을 하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꾸준히 갭이어를 실천하고 있지요.
이렇게 “내가 실천하는 갭이어”의 기회가 여러 기업 내에서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우리사회에서 진행되는 갭이어는 대학교를 쉬거나, 종강을 한 학생들에게 최적화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헌데 요즘은, 높은 취업난에도 퇴사율과 이직률이 높잖아요. 갭이어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에게도 필요해요.
기업과 구성원은 같이 가는 거잖아요. 구성원은 회사에 다니면서 성장하고 배워 가는데, 사실 ‘나 자신’이 아닌 ‘업무’로서의 성장은 그 기업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거니까. 삶에서 ‘나 자신’이 없어지면 불만족이 쌓이고, 그 때문에 퇴사율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회사 내에서 ‘나 자신’의 성장이 함께 있어야 하는 거죠. 그게 잘 안 되면 타격은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도 받아요. 어떤 포지션에 구성원을 최적화시켜놓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구성원이 홀연히 떠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면 기업도 새로운 구성원을 뽑아서 처음부터 키워야 하죠.
지금 당장엔 기업 구성원 전체가 자리에 있는 게 업무효율성이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아니라고 봐요. 구성원들이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파악한 뒤에 일을 하면 좀 더 시너지가 날 거라는 생각이에요.
이때 필요한 게 ‘직장인 갭이어’인 거죠. 종사자들끼리 모여서 자신의 방향성을 찾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기업 내에서도 갭이어라는 문화의 필요성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업 내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문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요.
스펙으로서의 갭이어가 아닌, ‘내가 원하는 선택’을 찾기
결국 직장인 갭이어의 핵심은 ‘왜 내가 이것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선택하고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고민이죠.
가령 저도 그랬지만,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보통 사회적 기업으로 많이 가는 추세죠. (제가 사회복지학과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어떤 기업을 선택할 때, 그들이 본질적으로 ‘왜 내가 이것을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선, 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요.
본질에 대한 고민, 결국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거예요.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갭이어’는 본질적인 의미가 흐려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갭이어는 또 하나의 스펙으로 생각돼서, 종종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청년들이 갭이어라는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본질을 찾았으면 해요.
물론 어려운 이야기죠.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진짜 나’를 찾아나간다는 것인데, 보통 “진짜 나”는 죽을 때까지 못 찾는다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죽을 때 내가 어느 방향으로 쓰러져 죽을 것인지 정도는 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갭이어”를 통해서 그 최소한의 방향성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입시, 스펙, 취직까지...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우리가 너무 끌려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후회하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후회를 안 하려면 후회 안 할 선택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선택’을 알아야 하죠. 고정관념, 틀에 박혀있는 사고나, 그 비슷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끌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단비/ 편집. 한예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