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Nov 03. 2024

고잉 홈

브리즈번 여행기


어젯밤에 미리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훨씬 전인 새벽 3시에 잠을 깼어.

짐을 챙기고 잠에 든 시간이 12시가 넘었는데 벌써 눈이 뜨이네.

왜냐고? 집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아서?

ㅎㅎㅎ 아니야.

나를 깨운 것은 기침이었어.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기침 때문에 밤잠을 많이 설쳤잖아.

기침하면서 일어나면 소금 가그린하고, 따뜻한 물 마시고, 비타민c 복용, 프로폴리스 목에 스프레이, 용각산을 넣고 자기를 반복했어.

그러고도 하룻밤에 몇 번씩 일어나곤 했어.

목감기에 좋다는 처방을 다하고 잤지만 마지막 날까지 기침을 달래지는 못했지.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창밖을 보니 시폰 커튼 너머로 많은 차량의 경광등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비쳤어.

뭐지?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니 작업이 끝났는지 크고 작은 10여 대의 도로보수 차량이 불을 켜놓은 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간간이 들렸어.

아, 맞다. 어제 저녁부터 많은 불빛의 차량들이 큰 소음을 내며 시작하던 공사였는데 작업이 거의 끝났나 봐.


'무슨 공사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의 발걸음을 베란다로 이끌었지.

자카란다 보라색 꽃잎들은 가로등 불빛아래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어.

나는 아직 밝아오지 않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어.

건너편 도로에서 밤샘 작업하던 사람들이 회의가 끝난 건지 환하게 켜진 차를 끌고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더라. 청소차들도 불을 환히 켠 채 지나가고.

나도 30여분을 더 서성대다 침대로 돌아갔지.


보름 가까이 침대에서 보는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은 늘 예뻤어.

방에서든 거실에서든 주방에서든 보이는 언덕 위의 그림 같은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어.

페일블루, 바이올렛 하늘에 주황인 듯 아닌 듯한 붉은빛이 성당 옆에서 물들기 시작하네.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는 것처럼 하늘빛이 밝은 주황빛으로 물드는 것을 막지막으로 본다.

내년에는 이곳 Woolloongabba가 아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풍경을 보게 되겠지.

애나가 이사할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니까.


아, 챙겨야 할 5시 알람이 울린다.

애나는 30분만 더 자겠다고 하네.

애나가 전날 예약해 둔 우버(Uber)가 6시에 집 앞에 올 거라

바쁘기는 내가 더 바쁠 터이니 서둘러야했어.

시계와 전화기 충전이 끝난 충전기 챙기고, 세수와 양치를 끝내고 썬크림을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어.

체중계를 주방 옆의 타일바닥에 내려놓고 엄청 무거운 캐리어를 양손으로 겨우 들고 올랐어.

기우뚱 거리는 몸을 겨우 세워서 몸무게를 빠르게 쟀어.

ㅎㅎㅎ 내 몸무게를 빼니 23kg 정도 되니 정확한 것은 공항에서 재야겠지.

23kg부터 32kg까지 추가요금이 십만 원이나 된다고 하니 그럴 순 없지.


우버가 도착했어.

애나가 쓰레기를 버리는 동안 계단에서 내가 차를 향해 "Can you help me?"라고 하니 우버기사 내려서 짐을 실어다 주었다. 오? 처음으로 백인의 호주 할아버지? 아저씨였는데 나이를 가름할 수 없었어.

아주 짧은 꼬깃한 반바지는 사타구니 사이로 말려올라가 있고 조금 전에 깬 듯 부스스한 은발머리와 반팔티 위로 패딩베스트를 입고 있었어. 애나와 기사할아버지는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목적지를 말하였다.

저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는 은퇴를 하셨나? 직장을 다니시나? 궁금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로 물어볼 순 있겠지만 여기서는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사적인 질문은 실례라고 하네.

내가 우버를 탈 때마다 거의 대각선으로 기사의 프로필을 보게 돼.

기사의 옷차림, 태도, 차 안의 상태를 보면서 그 사람의 직업 등을 상상해 보기도 했어.

뒷좌석에서 자연스레 벨트를 매는 나를 보고 애나가 "엄마, 적응이 다됐네."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많이 더뎠다. 러시아워인 듯 시티에서 빠져나오니 덜 붐볐지만 공항 근처에서 다시

분비기 시작했어.

공항에서 온라인 체크인하고 짐 부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애나는 가지고 온 사과와 블랙, 레드베리를 내 입에 넣어준다.

나는 아기새 마냥 잘 받아먹었지 ㅎㅎ.

잠을 자지 못해 약간은 어리벙벙하고 애나와 헤어지는 아쉬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출국장과는 반대로 입국장에 들어서는 든든한 사위가 있으니까 걱정이 안 되네.


은근히 복잡한 느낌이 들고 오래 걸리던 입국과는 반대로 수월하게 출국수속을 하였다. 통과하는 동안 "한국인이냐"면서 호감으로 대하는 듯한 직원의 제스처에 기분이 괜찮았어.

면세점에 들어서자 괜찮은 모 제품들이 눈에 띈다.

모자가 괜찮아 보여 써보니 예쁜 직원이 밝은 색이 어울린다고 하였어. 조금 더 작은 거 달라고 하니 한국인이냐고 한국어로 물어보더라. 자기 할머니도 사다 드렸는데 너무 좋아하더라는 말을 하는데 살 마음이 들더라. 괜찮아 보이더구먼 역시 가격은 비쌌어.


보딩타임이 지체되고 내가 지쳐서 그런지 어른이며 아이들도 힘들어 보였어.

한국으로 가는 시간이 10시간이 넘을 것이고, 환승하여 김해공항 그리고 내 집에 도착하려면

아마도 밤 12시는 될 것 같아.

여행은 좋으면서도 수속을 는 시간이 길고 탑승까지 또 기다리고.

비행기 안에서는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일이야.

도착해서는 입국 수속에서 짐을 찾기까지 많은 인내를 요구하고 있잖아.

그런 것들이 주는 여러 가지 힘든 것들이 있지만,

여행은 '설렘'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그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 같아.


옛날 옛날에는 서울 가는 데만도 달이나 걸렸다는데,

하루면 웬만한 곳에 다 가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래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긴 해.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엄청 부러워하는 나로서

이번 브리즈번 여행기를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써볼게.

작가의 이전글 Hide n See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