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 여행기
N 야.
애나가 만든 터키식 아침인 메네멘을 먹으면서 요즘 재미에 빠진 드라마 '정년이'를 넋 나가게 보았어. 그런 거는 말 안 해도 맘이 통한다고 저도 엄마를 닮아 드라마를 좋아하는 거라네.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되감기 또 되감기를 하는 나를 보고 우스워 죽겠단다.
우버를 타고 산 같은 언덕인지 언덕 같은 산인지 모를 마운틴 쿠사에 갔어. 전망대에 올라가서 구경하고 브리즈번을 빙 둘러보았어. 멀리 시티와 우리가 매일 가다시피 하는 사우스뱅크가 보였어. 나이를 불문하고 제법 많은 남녀노소가 오고 가고 하네. 단체 여행객인 듯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무리들도 있고, 무거운 배낭을 멘 여행객, 혼자서 오는 젊은 사람들도 있어. 제법 높은 언덕 같은 산을 걸어서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내려와 보타닉가든에 있는 카페에 들러 점심으로 Chilli prawn linguine 파스타랑 Decaf 롱블랙을 마셨어.
너무도 파란 하늘에 몇 점의 흰구름이 떠 있고 숲이라 그런지 공기는 더욱 맑아 호흡을 하는데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거 있지. 하늘 아래 숲 속 식물들은 봄향기를 마음껏 뽐내는 거 같았어. 우리는 사진 속의 풍경 같은 보타닉가든 구역의 번호를 따라 이동하였지. 1번 구역을 구경했는데 또 다른 경치의 1번 나오고 1번을 벗어났는가 하면 다른 1번이 나와서 미로 같았어. 조경을 최대한 자제한 듯한 꾸안꾸 정원은 기분 좋은 편안함이 느껴졌어.
연못에는 새 떼가 와서 놀고 다른 곳에는 수련의 무리가 있더니 또 한 곳에는 조망할 수 있는 나무데크 난간을 설치해 놓았네. 내려다보니 연꽃이 피기 전이라 봄빛에 넓은 잎이 반짝이고 봄바람에 살랑대고 그것을 보는 나는 '이보다 평화로울 수는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어.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애나가 저쪽 풀숲을 가리켰어. 그쪽을 보니 잔디밭에 앉아 작은 호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이더라.
산책하는 동안 어디서나 보이는 크고 작은 도마뱀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엄마야" 하며 놀라니 애나는 그것이 더 우스운지 깔깔댄다. 그리고 터어키라고 불리는 칠면조와 쓰레기새라고 불리는 아이비스도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보이니 놀란 가슴 또 놀라게 되니 참으로 익숙해지지가 않았어 ㅎㅎ. 낯설고 신기한 식물도 많았지만 우리들이 자주 보는 외래종 꽃이나 나무들도 있어서 친숙하게 느껴져 괜히 한 번 더 가까이 가서 아는 척해보기도 하였어.
천천히 산책을 하는 동안 어떤 젊은 아빠가 혼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호수를 보고 있었어. 아기는 돌이 지나지 않아 보였는데 아기 아빠는 새를 보는 것인지 꽃을 보고 그러는 것인지 아기와 열심히 교감하고 있더라. 우리는 엄마는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아기와 아기아빠랑 스치면서 인사를 했어.
호수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가는데 잎은 푸르고 대통이 노란 대나무군락이 여기저기 있는 거야.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향해 뻗어서 서로 잎을 마주하고 있는 신기한 노란 대나무를 보면서 사진도 찍었어. 푸른색 대나무는 봤지만 노란색의 대나무는 처음 봤어. 또 우리나라에도 오죽이 있는데 하나 여기 있는 대나무는 거의왕죽 같았어. 여러 나라에서 들여온 대나무 종류들이 많더라.
정원은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았어. 숲의 어딘가로 접어드니 일본식 정원이라 하여 일본풍의 지붕을 한 벤치를 지나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놓은 곳을 건너서 분재를 전시한 건물로 들어갔어. 숲 속을 거니는 동안 석재로 만든 동물이나 곤충 모양을 많이 보았어. 그런데 동물이나 고충의 크기가 실제보다 백배는 크게 만들어서 산책하는 동안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 동물 모양들은 계곡 같은 곳에도 있고 음습한 숲에도 드러 드러 놓여 있고 큰 나무에도 걸려있는 크고 시커먼 박쥐를 보고는 혼비백산을 했지.
땅이 넓어서 그런지 모든 게 큰 거 같다고 했더니 애나는 큰소리로 웃었어. 카페에 드나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보타닉가든 어느 곳을 구경하고 있는지 드문드문 보였어.
우리는 5번까지 있는 것을 건너뛰기로 2번 3번 조금 보고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지더라. 천국 같은 풍경도 많이 보니 거기가 거긴 것 같아 그만 보기로 했어. 3시 19분 버스를 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학교가 있는지 여학생들이 많이 탔어. 어린 듯한 혹은 성숙해 보이는 학생들이 섞여 있었어. 중학생인 듯한 여학생들 모두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어. 책가방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양쪽어깨에 메는 배낭형 가방이 아니라 여기 학생들은 운동가방 같은 것을 한쪽 어깨로 무겁게 매고 있었어. 그리고 보조가방이나 도시락가방까지 꽤나 무거워 보였어. 그러나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들의 이야기에 빠져 웃거나 심각한 대화를 나누거나 아니면 혼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았어.
옛날하고 아주 먼 옛날이 되어버린 여학생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좋을 때다."라는 속말과 미소가 절로 나오더라.
차가 언덕에서 내려와 시내로 진입을 하니 하교시간인지 여러 종류의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삼삼오로 지나가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애나가 몇 번 가본 적 있다는 골프장을 갔어. 내가 애나에게 유일하게 일정 하나를 넣어달라고 한 것은 골프장에 가자고 한 거였어. 파크골프를 함께 치자던 A친구의 말이 생각이 나서 부탁했지.
빅토리아 파크라고 골프장과 연습장, 미니골프장이 있었어. 시원스레 펼쳐진 푸른 잔디를 지나면서 나는 미니골프를 치고 싶다고 했어. 애나는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쳐보길 권유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니골프장에서 Putt Putt 미니골프 치고 있었어.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가족들하고 미니골프를 쳤어. 특히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이 몇 팀이나 있더라. 나도 어릴 적에 공원에서 미니골프를 쳐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 미니골프는 나인홀까지 있더라. 아이언을 잡고 치는데 홀인원을 두 번 넣고 애나보다 점수가 좋았어. 사람들이 골프 내기를 많이 하더니 딸 하고도 승부욕이 생기는데 좀 우스웠어 ㅎㅎ.
저녁으로 좋아하는 망고와 사과 등의 과일 애피타이저와 애나의 딤섬, 들깨수제비는 완전 건강식이었지.
그리고 요즘 속 시원한 파이팅이 넘치는 '지옥에서 온 판사'를 보면서 오늘 일정의 피로를 풀었어. 여기 온 이후로 나는 청소도 안 한다. 아니 못하게 해. 내가 하는 일이라면 나를 씻기는 일 외에 매일매일 좋은 거 보러 다니고 맛난 거 먹고 하는 것이 내 일이야. 약간의 자율성이 결여된 천국을 느끼는 기분? 한동안은 싫지 않을 거 같아.
안녕,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