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매몰 됐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같은 무거운 시련이 찾아올때가 있다. 그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은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안타까운 사연들을 뉴스로 접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순간을 겪게 된다. 시트콤처럼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집에도 말못할 속사정은 있고, 세상 걱정없이 맑기만 한 사람에게도 남모를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날까 싶은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마주치지 말았으면 하는 일생 일대의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순간에 매몰되면 정말 위험하다. 자기 감정에 취해 점점 더 깊이 빠져버리게 된다. 도망가고 싶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일을 겪는 듯한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런 절망의 순간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나약할 수가 없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에서 점점 사라진다는 거다. 항상 그랬다. 그 문제를 왜 그렇게까지 고민했나 신기할 정도로 고민의 크기가 줄어들고 희미해져 있다. 문제가 해결되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당시에는 고민의 크기가 머리속 전체를 차지할 만큼 매몰되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해결되거나 연민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서 차차 현실감각을 되찾았던 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의 고민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우주만했던 크기가 지금은 먼지처럼 작아져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게 일상을 이어가가게 된다.
몇 차례 이런 사건을 겪은 후, 어두운 터널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는 나름의 방법이 생겼다. 내 일을 '남의 일'처럼 보는 거다. 그렇다고 나몰라라하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라는 게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걸 의미한다. 남의 일인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오직 시간에 맡겨버린다. 어차피 시간이 흐른 후엔 절반, 그 절반의 절반쯤으로 고민이 소멸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