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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Nov 26. 2018

직장인의 여행법_#5

삿포로 근교_비에이 인생사진 투어

요즘 들어 아침 기상이 힘들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유난히 그렇다. (나이는 역시...) 출퇴근이 들쑥날쑥한 프리랜서라는 직업 덕에 기상시간이 대체로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 와중에도 힘들다. 8시 알람을 맞춰놓긴 했으나 실제로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 건 1시간이 지난 무렵. 나란 인간이 이렇게나 게으른가 한심해 보이면서도 아침에 부지런한 건 역시 어렵다.


그런 내가 아침 일찍.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알람이 채 울리기 전에 기상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여행 일정이 잡혀있을 때!


인스타 갬성 폭발하는 눈의 왕국
비에이의 아이콘 크리스마스 트리

삿포로에서 여행 속의 여행, 근교 원데이 투어를 계획했다. 여기로 말하자면, #눈의 왕국, #인스타 갬성 폭발, #설국, #광고 촬영지 #소녀 취향의 도시랄까. 새벽같이 일어나 투어버스가 기다리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떤 약속이든 10분 지각쯤은 애교로 생각하던 내가, 집결시간에 칼같이 도착했다. (이 사람들은 너무 나를 버리고 갈 것 같았다.)


야외 스튜디오 같은 자작나무 숲

비에이까지는 삿포로에서 거의 3시간은 달려야 한다. 3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도 가니 가까운 거리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꼭두새벽에 출발하면(아침 7시경) 저녁 7시안에 삿포로에 다시 복귀할 수 있으니, 원데이 투어로 인기가 좋다.


역시 비에이의 아이콘 마일드세븐 언덕

삿포로까지 왔는데 눈밭이 기대 이하였다면, 오직 눈 구경 실컷 하고 싶어서 삿포로에 왔다면, 비에이는 필수 코스다. 평생 볼 눈을 하루 안에 원 없이, 아주 남부럽지 않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비에이를 선택했다.


방송사들이 여의도에 모여있던 시절, 출근지는 상암이 아닌 여의도 바닥이었다. 여의도는 한강이 바로 옆이라 겨울만 되면 시베리아 저리 가라다. 피부를 갈가리 찢는 쇠꼬챙이 바람에, 고층빌딩 많고 춥다 보니 눈도 안 녹는다. 3월까지 웬만한 길은 빙판이고, 진흙탕 눈길도 사방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놈의 동네는 아무도 제집 앞 눈은 안 치우는지,  출퇴근길에 오만 짜증이 다 난다. 그래서 눈 좀 제발 그만 와라 기도를 했다. 눈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직장인들이 대게 그러지 않을까? 눈은 창밖으로 내다볼 때나 예쁘지, 출퇴근길에 눈이란 건 지옥문과 다름없다.


그런데 상암 시대가 개막하고 여의도 시절이 까마득한 과거가 되면서, 겨울이면 다시 눈이 그리워졌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제대로 눈 쌓인 설국에 가보고 싶어 졌고, 비에이에서 소원성취를 이룬 셈이다.


화보 촬영 가능한 설국


무릎, 허리 높이는 기본으로 쌓이는 비에이의 눈 클라스. 나무 몇 그루 말고 보이는 거라곤 온통 하얀 눈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아름다운 눈밭의 진수가 여기 있다. 스키장 인공눈의 설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보송보송한 천연의 감촉. 서울보다 따뜻한 공기. 막 찍어도 화보가 되는 풍경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이다. 인생 사진 100만 개는 기본이다.


신비로운 느낌나는 비에이의 흔한 풍경

여기서 잠깐, 비에이 원데이 투어에서 사진 잘 나오는 비법을 몇 가지 풀겠다. 갬성 넘치는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보고 직접 체득한 것들이다.


1) 아우터는 원색 컬러를 입을 것

2) 나만의 시그니처 포즈를 만들 것

3) 모자, 귀마개 등 잔 소품을 다양하게 준비할 것

비에이의 시선 강탈 그녀

내가 보건대, 노랑, 빨강 등 원색 패딩 입은 여자들 사진이 최고로 부러웠다. 사방이 하얗다 보니 원체 돋보인다. 까만 롱 패딩은 지양하는 게 좋다. 또, 사진을 워낙 만장씩 찍다 보니 포즈 소재가 바닥난다. 어린 친구들 보니, 자기만의 귀염 포즈를 개발해서 돌려 막기 식으로 하는데 데 꽤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촬영 포인트가 많아서 포인트가 되는 모자나 방한소품을 활용하면 좀 더 다양한 컷을 완성할 수 있다. 인생 화보 몇 장만 건져도 비에이 투어는 남는 장사다.


솔직히 비에이는 사진 찍으러 가는 데다. 몸을 사리지 않고 눈밭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해 찍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염치 불고하고 부탁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이렇게 밖에서 장시간 동안 사진 찍는 건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다. 만약 방송일로 눈 오는 날 야외 촬영이었다면 불만으로 입이 대빨 나왔겠지만, 여행 와서 나 좋을라고 찍는 건 불만제로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여러 포인트에서 버스에 올랐다 내렸다 하며 정신없이 사진 찍다 보면, 어느새 삿포로로 향하는 버스 안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 안 하던 작품 활동을 과하게 했더니 몸이 노곤 노곤하다.


‘잘했어. 하얗게 불태웠어’


이럴 때 또 생각난다.


‘아...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직장생활은 100%를 다하면 손해 보는 거 같고,  딱 돈 받는 만큼만 일해야지 하면서, 희한하게도 여행만 오면 110%의 에너지를 쏟는다. 여전히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정당화하면서, 여전히 늦잠을 자고 회의 시간에 10분씩 늦는 나를 발견한다.


‘나만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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