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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 Apr 05. 2024

의문사 없이 시작하는 사람이 괘씸하다


의문사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이 괘씸하다. 말하자면 육하원칙을 맞추지 않는 사람. 여섯 가지 중 단 몇 가지만 갖고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 예를 들면 내가(who), 어떤 일을(what), 정도면 충분한 사람. 채우지 못한 나머지 괄호를 불안해하거나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 



그중에서도 으뜸 괘씸한 자는 단연 '왜'를 묻지 않는 사람. 혹은 반대로 '왜'를 묻고 또 물어 끝내 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 '왜'라는 캄캄한 미로 안에서 헤매지 않는 사람. 몸마음을 짓누르는 어둠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그만 미궁 안에 터를 잡고 눌러앉는 짓은 하지 않는 사람. 의문사에 잡아먹히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말하자면, 모 아니면 도, 고 아니면 스톱인 사람. 모와 도가 괘씸하여 대체로 개나 걸, 잘하면 윷 정도인 나는 그만 쪼그라든다.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이렇게 쪼그라들다 빽도조차 되지 못하고 지금 칸에 발이 묶여버릴까봐 두렵다. 윷놀이라면 낙, 부루마블이라면 무인도. 차례를 박탈당하고 한 턴 쉬기.




당위에 잡아먹혀 몸이 멈추는 때가 있다. 움직이기를 잊고 멍해져서 비누칠을 하다가 가만히 물을 흘려보내고 , 걷다가 멈춰 서고, 침대까지 못 가고 바닥에 누워서 마음으로만 종종거리는 때. 그런 때에는 꼭 저 멀리 누군가가 보인다. 나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저이는 나와 달리 산뜻하게 시작하고 우아하게 실패하고 손쉽게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영혼이다. 분명 저이에게도 불안 방황 고민 따위가 있겠지만, 왠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저이에게는 불안 방황 고민을 덜어줄 사람이나 자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능했던 거지. 그러니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여기 있고 저이는 저기 있는 거야. 묵은 미움과 질투가 뒤섞여 범벅이 되고 나는 혼자 멍하니 부끄럽다.





글쓰기 모임, 주제: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질투하는 걸

(*반성도 다짐도 하지 않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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