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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 May 04. 2024

반복되는 코바늘 패떤뜨기는 일상을 평화롭게 해

코바늘 패턴뜨기에 빠져있다.


실로 그림 그리기, 가장 아래부터 한 줄씩 쌓아 올려 직사각형 편물을 엮는 일. 거기다 어떤 그림을 새겨 넣을지 떠올리는 것부터가 큰 즐거움이다. 약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핀터레스트에서 패턴을 서치하고 저장해 둔다. 예를 들면 회사 화장실이나 출퇴근 지하철.



패턴뜨기는 ‘짧은뜨기’만 반복하기 때문에 매우 단순하다. 단순 반복 행위만이 주는 평화와 안심이 있지. 58코를 빠짐없이 뜨고 있는지, 숫자 세기에만 집중하면서 하루치 잡념을 깨끗하게 씻어 내릴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다고 ‘킬링타임’ 취미라 부르긴 싫다. 시간을 죽인다니, 그런 말은 억울하다. 이만큼이나 충실한 시간 보내기가 또 어디 있다고.


패턴뜨기는 매 코 성실하게, 누구라도 예외 없이 지름길 없이 정직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실수로 한 코라도 건너뛰면, 그 이후로 뜬 모든 코를 풀고 되돌아가 빈칸을 채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억울하리만치 성실한 일. 모든 실이 제 자리에, 단 한 칸도 건너뛰지 않고, 제때 실 색을 바꿔주어야만 언젠가는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뜬 서로 다른 크기의 가지각색 패턴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 글쎄! 계획 없다.


긴 막대를 달아 벽에 포스터처럼 걸어두어도 좋을 것 같고, 여러 장을 요리조리 엮어서 북커버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크기를 조금 손보면 카드지갑 같은 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렇게도 활용하지 않고 그저 손바닥 만한 편물인 채로 남을지도. 그저 낱장인 채로 냉장고나 벽에 붙을 수도 있겠다.


이것을 해서 나중에 무엇에 쓸지, 이것이 앞으로 유용한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런 다음의 쓸모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쓸모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진다. 온당한 쓸모란 찾기가 어렵고, 나아가 그 쓸모가 과연 최선이냐 묻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나는 그 막막함에 쉽게 잠식되고 만다. 다음을 생각하지 않아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뜨개는 일종의 수행, 테라피••• 뭐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58x59코의 대장정 진행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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