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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Feb 10. 2020

변화를 원해요? 커텐을 바꿔보세요.

광고는 아닙니다. 무기력과 게으름을 물리치기위한 저만의 방법입니다.




 연말을 지나 연초가 되어도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웠다. 하나 둘 늘어난 구독자에 대한 부담감은 차지하고,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알바생에서 부점장이 되고 난 다음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는 달랐다. 알바생 시절의 기본 근무 외에 발주와 입금, 직원 관리에 고객 컴플레인 처리까지. 괜히 월급이 오른 게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퇴근후 집에 오기가 무섭게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아무런 의욕이 들지 않았다. 멍때리며 이미 본 드라마를 재탕하고, 따분하게 뉴스와 모바일 게임에 매진했다. 도피처만 찾았다. 내가 한심했다. 편의점은 투잡으로 생각하고, 제 1의 직업인 작가가 되려면 내가 매달릴 것은 '글쓰기'뿐임에도 무기력에 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좀 조용히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퇴근한 나에게는 층간소음과 새로온 스텝의 도움 요청 전화가 빗발 쳤다. 도망치고 싶다.



이대로라면 작가가 되기는 커녕, 스트레스에 치여 화병이 날 것 같다. 돌파구의 필요성을 깨달은 건, 나도 모르게 자주 울컥하고 눈물이 줄줄 흐르고나서 였다. 마음에 여유가 전혀없으니 계속 감정만 쌓이고 쌓였다. 피로가 무기력을 불러오고 무기력이 다시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을 불러왔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싶었다.


우선 원인부터 파악해보자. 


왜? 집에 오면 자꾸 난 퍼질까? 

내가 여덟시간 동안 너무 쓸데없이 열정적인가? 그래서 너무 피곤한가?

꾸준한 피드백에도 변화가 없는 몇몇 직원들 때문일까? 

글쓰기의 잠정적인 목표가 없어서 일까? 


아님 이 모든게 해당되는 걸까?


여전히 침대에 누워 게으르게 고민했다. 가만 보니 내방은 한 낮에도 어두침침했다. 암막커텐 때문이었다.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방. 자연히 늘어지고, 쉬고 싶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이 어둠의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문득 커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커텐을 바꾸고, 밝은 방에서 다시 한 자라도 쓰기 시작하자.' 



 소심한 나는 새 커텐을 고르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다. 커텐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떠오른 디자인은 밝은 블루톤의 쨍쨍한 체크무늬 커튼이었다. 경쾌한듯 발랄하면서도 파랑색이 주는 이성적인 안정감이 내게는 필요한것만 같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내가 생각한 예산은 비싸봐짜 5만원 선인데. 맘에 드는 체크 커튼은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게다가 고민하는 사이 커텐은 판매 중지되었다. 어쩔수 없다. 다른 옵션을 선택하자.


 이번에는 내 예산에 맞는 가격대의 커텐 사이에서 맘에 드는 디자인을 찾아봤다. 여러 브랜드의 50% 세일 상품들이 검색 되었고, 그나마 맘에 드는 디자인들은 대부분이 플라워 패턴이었다. 빨강 꽃이냐 노랑 꽃이냐 아님 초록 풀밭이냐 중에서 선택해야했다. 

 

 난 지독한 선택장애자다. 5만원짜리 커텐에 무슨 큰 기대를 하고, 실망해봐짜 얼마나 실망하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바닥을 친 현재의 상태에서는 이 커텐 선택에서도 실패하고 말면, 정말 인생의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것 같았다. 일주일 이상을 하루에 두세번씩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서 고민하고, 또 찾아보며 대략 3가지로 압축 시킨다음 이미지를 캡쳐해 엄마와 아빠, 남자친구에게까지 물어봤다. 



구매후기를 쓰려고 찍어둔 사진이 이렇게 사용되다니?!


결국 내가 선택한 커텐은 빨강과 노랑, 초록 풀떼기가 어우러진 디자인이다. 커텐의 디자인은 무난하다. 설렐 정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떼어버리고 싶을만큼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정도의 감흥이 적당하다 싶다. 배송을 받고 세탁을 하자마자 커텐봉에 걸어 널었다. 널고나니 광목 특유의 잔주름이 심해서, 잘 쓰지도 않는 스팀 다리미까지 꺼내 다렸다. 공들여 다림질까지 하니, 정말 잘 해낼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자마자 들어와본 방은 환하디 환하다. 

커텐까지 바꿨는데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가면, 변화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까봐. 옷을 갈아입자 마자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변화의 다짐과 커텐의 상관관계를 지난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커텐을 바꾸는 건 자기암시적인 역할이 강하다. 





여전히 변화가 목마르다. 식습관과 글쓰기 습관, 이 두가지 영역에서 스스로 감시자이자 행동자가 될거다. 

올해 12월에는 부디 변화된 나로 거듭나길. 



 나에게는 커텐이 결심에 대한 의미부여 장치가 되어주었다. 적어도 커텐값 5만원에 부응하는 효과까지는 꼭 뽑아내야지. 돈X랄 하지 않으려면.


 나처럼 소심하고, 결심을 하고도 자꾸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면 꼭 커텐이 아니어도 주변환경을 변화 시킬 장치를 두는 건 어떨지. 감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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