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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Aug 15. 2020

어느날 갑자기 환경예민가가 되었다

콜린 베번의 <노 임팩트 맨>의 커다란 임팩트


 변화의 발단은 어디일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모호하다. 

 원래 성격상 많은 물건을 거느리기 싫어했고 인간이 섭취할 단백질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에 대한 연민이 어느 정도 있던 게 다였다. 재활용에 대한 순진한 믿음으로 더울 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 잔에 마셨고 분리수거를 꼬박꼬박 했다. 다른 것보다 고기반찬이 더 반가웠고 바뀌지 않은 내 입맛으로는 여전히 고기는 맛있다. 가끔씩 마주하는 환경문제에 대한 기사에는 큰일이네, 걱정하면서 '결국 세상이 바뀌어서 개선되겠지'했다. 


 그렇지만 내 낙관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환경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점점 그 심각성이 세상에 다양한 현상으로 실체를 드러내 내 심기를 건드렸다. 그렇게 환경에 대해 걱정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사이트를 찾아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셀 수 없는 작은 동기들이 모인 후 결정적 한방은 이 책 한 권이었다. <노 임팩트 맨>이라는 책 속에 작가의 시행착오로 채워진 현실적이고 열정적인,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도전 기록이었다. 책 한 권에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의 부분이 변하기에는 충분했다. 


 콜린 씨의 기록으로 인해 나는 이제야 '확실한' 환경예민가가 되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작성한 실천리스트는 이렇다.


1.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배달음식 포함) 

2. 새 상품에 대한 소비 최소화 (소비할 시 친환경 제품을 사거나 중고 거래하기)

3. 가지고 있는 텀블러, 용기, 재사용 가방, 손수건 활용하기

4. 휴지, 물티슈, 키친타월 사용 줄이기

5. 에어컨, 난방 최소화

6.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돼지고기보다는 닭고기. 불완전한 비건으로 식습관 개선하기. 

7. 책을 사고 싶을 때도 중고 거래, 중고 서점 이용하기 

8. 급하지 않을 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9. 생활용품을 지속 가능한 제품으로 하나씩 바꾸기 (-> 샴푸바, 삼베 샤워타월, 대나무 칫솔..)

10.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하여 꾸준히 알아보고 참여하기


 실천 사항이 10개나! 되는 것 같지만 사실 내 하루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이 점이 나는 놀라웠다. 막연히 생각만 했을 때는 너무나 거창한 것 같았지만 막상 살아보면 큰 어려움도 큰 변화도 결코 아니었다. 내 삶에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이 정도 실천들 쯤은 할 만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것이 완벽한 환경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어두울 때는 전기를 써서 불을 켜고 추울 때는 집에서 난방도 돌릴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나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제공해주는 티슈나 일회용품을 군말 없이 받아야 할 것이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사용해야 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도 온갖 자원을 쓸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환경에 0의 영향만을 주고 살자면 사실상 사는 것을 중단해야 하거나 현대사회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제로 임팩트가 아닌 레스 임팩트를 목표로 한다. 나는 이제껏 성실히 도 환경을 파괴해오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이상 그 정도를 개선할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환경에 예민해진 초보 환경 보호자는 자주 좌절한다.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고자 알아보는데 선택지가 없거나 너무 적을 때, 산책 다녀온 강아지의 발을 닦여야 해서 물티슈를 하루에 몇 장이나 써야 할 때.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어 총알배송 택배를 시킬 때, 생리가 시작되어 매장에 갔는데 플라스틱 애플리케이션으로 구성된 탐폰들이 최선일 때. 급하지 않을 때도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나 출출한 밤에 야식을 주문하자는 다른 사람의 제안에 고민할 때 등 너무나 많다. 개인적인 실천에서도 어려움이 수시로 들이닥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회용 컵을 쓰고 버려 그것들로 가득해진 쓰레기통을 볼 때나  텀블러나 에코백이 원래 목적을 잃고 패션의 용도로 계속해서 구매되는 것을 볼 때, 뜯어서 듣지도 않을 시디를 몇 십장, 몇 백장씩 사들이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렇다. 사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지만 슬프게도 일반적인 양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그린 라이프'에 가장 큰 어려움이 이런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많다.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환경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리고 공장도 많다. 환경문제는 기업과 국가의 영향 아래 있고 그렇기에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기후 변화가 극심하고 오랫동안 고수해온 우리의 산업화된 삶의 방식이 환경을 눈에 띄게 악화시키고 있는 현재에도 세상은 믿을 수 없게 그대로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의 경영 사이클이 환경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 시시각각으로 보고되는 동시에 기업들은 재활용되지 않는 제품들을 계속해서 찍어내고 제작과정과 분해과정에서 환경을 악화시키는 제품들도 계속해서 찍어내며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긴다. 이 앞에서 한 명의 환경 보호자는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점이 개인적인 노력을 더 성실히 임해야 하는 구실을 준다. 환경에 무책임한 기업과 정책들에 몸을 맡겨서는 상황이 악화될 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개인의 삶의 모습들이 변하고 소비 방식이 변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작은 실천을 하면서 사회구조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실천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매우 크기 때문에 사회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의 실천으로는 사실 나조차도 느끼기 힘든 작은 영향이지만 그것이 내가 가진 파이의 전부라고 인지하면 조급함이 한결 나아진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실천할 내 마음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인지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아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자꾸 가져야만 나도 지치지 않고 환경보호에 대해 타인에게 강요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은 환경에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내가 알게 된 것 중 가장 큰 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의 개인은 너무 많은 자원으로 둘러싸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쉽게 누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물건이 우리에게 더 큰 행복과 위안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미디어에 하루 종일 파묻혀있다. 그로 하여금 우리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자원 소비의 절제와 내 행복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개인적 판단을 거쳐야 한다. 내가 필요한 것과 만족하는 정도를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그만큼만 자원을 소비해야 한다. 그 이상은 자원낭비가 된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극심한 기후 악화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모두의 소관'이라고 느끼고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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