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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Feb 17. 2024

9월에도 너무 덥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도시

여행 첫째날

월에도 너무 덥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도시

https://youtu.be/JEsWJJbO7-0?si=3RIs0rsywUXzOsQp

여행동안 캠코더로 기록한걸 드디어 영상으로 만들었다..



- 처음 홍콩을 다녀왔다. 나의 첫 홍콩이 2023년이라니 그 점이 아쉽다. 97년 이전이었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 그곳의 역사도 문화도 잘 모르는 채 왕가위의 영화로서만 내게 존재하던 홍콩. 그 중에서도 나에게 언제나 가장 큰 로망이 되어온 중경삼림과 해피투게더. 오로지 이 영화들 때문에 홍콩으로 떠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아직도 영화란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사랑한다...


- 1년, 6개월 이렇게 미국과 독일에서 '살아본' 경험만 있지, (혹은 친구들과 짧게 여행한 적만 있다) 완전히 혼자서 해외여행은 (나도 아직 믿기지 않지만) 이번이 처음이었다. 28살에 첫 홀로 해외여행이 홍콩이라니,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낭만적이다.. (?) 아무래도 홍콩은 나의 운명인걸까...


 - 이 여행계획의 목적은 내가 재밌게 놀아야지, 멋진 사진을 찍어야지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그랬겠다) 그저 홍콩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과거의 홍콩을 상기하면서 현재의 홍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에 꼭 들고다니던 필름카메라 대신 연식이 조금 된 중고 캠코더를 하나 장만하고 데려갔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홍콩의 도시 모습을 담기에는 still image 보다는 video 가 마침 적합한 것 같다. 모든 곳이 언제나 복잡하고 변화하고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9월의 중순, 이제는 제아무리 홍콩이라도 더위가 한풀 꺾였으리라 생각하고 도착했다. 나는 6일간 오롯이 홍콩에만 있었다. 그리고 너무할 정도로 더웠다. 덥고.. 습하고... 내 평생 이렇게 더위에 흠뻑 젖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걷다보면 앞머리칼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나는 손목으로 자꾸만 축축해진 이마를 닦아내야 했다. 나는 원체 더운 것을 못 견디는데 그러나 홍콩이니까, 그것이 홍콩이니까...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그시절 홍콩의 영화들이 홍콩의 여름을 청춘으로 그려냈기에 어느정도 즐길 수 있었다.


- 공항버스에서 내려서 침사추이 역 부근에 도착했을 때의 홍콩의 첫 인상이 정말 강렬하게 남았다. 왜 이렇게 이쁘지? 뭐지? (플러팅 멘트 아님) 가 첫인상이었다. 나는 예쁜 도시를 기대하지 않았다. 복작복작하고 약간은 러프한, 오래된 간판과 네온사인, 시멘트 느낌의 거리만 상상했다. (물론 그렇긴하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첫날, 오후 한시 쯤이었는데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여름하늘 같았다. 이렇게 푸르고 쨍한 하늘을 정말 오랜만에 봤고, 그 쨍한 햇살이 내린 거리의 나무들과 좁은 길을 지나다니는 홍콩 택시의 붉은색이 꿈처럼 느껴졌다.  


- 첫날은 별로 성공적인 날은 아니었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안되어서 캐리어를 끌고 길을 조금 헤매다보면 쉽게 텐션이 다운되었다. 게다가 근처 로컬 식당을 갔는데 내가 메뉴를 대충 읽고 시키는 바람에 주문 실수도 있었다. 운남쌀국수를 파는 동네의 꽤 인기 좋은 식당이었는데, 나는 1번 기본 쌀국수 대신 세트로 보이는 4번을 시켰다. 새우딤섬이랑 쌀국수처럼 보였는데, 알고보니 새우딤섬과 수프였다. (쌀국수에 국수가 없는..) 아무튼 내가 당황한채 직원과 대화를 하고있는데, 옆에 앉아서 혼밥 중이던 어떤 예쁜 언니가 중간에서 설명해줬다.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그 예쁜 홍콩 언니의 기억으로 어쨌든 주문실수 에피소드도 추억이 될 것 같다. (결국 수프에 누들을 추가했고, 맛은 그냥 괜찮았다. 하도 더워서 VLT 레몬티가 제일 만족스러웠다.)


- 첫 이틀은 침사추이 역 부근 게스트하우스였다. 그저 시내랑 가깝고 저렴해서 예약한 곳이었고, 정말 그 장점만 있는 곳이었다. 라커 사용법이 친절하게 안내되어있지 않아서 몇분 헤매다가 혼자 알아냈고 (호스트는 연락이 안되었다) 그래서 이후에 라커 사용에 끙끙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 뿌듯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아무도 도움을 요청 하지 않았지만 어 저 사람도 못열고 있는데 싶으면 바로 달려가서 이거 이렇게 해봐 ~ 나도 그랬어~ 이거 어렵더라~ ㅋㅋ 하면서 어깨 으쓱하는 게 그 게하에서 유일하게 재밌는 순간이었다. 내가 알려준 방법으로 마침내 라커문이 열리는 순간, 그들의 표정이 진짜 재밌었다. 처음엔 별로 신뢰하지 않는 표정이다가, 갑자기 얼굴의 모든 구멍이 확장되면서 감격의 눈빛으로 고마워하는데, 거기다 나는 쿨-하게 욜웰컴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 어딜가볼까 하다가 근처에 카오룽 공원을 산책했고, (홍콩은 도심에 공원이 꽤 많고 잘되어있다.) 내가 생각한것 보다 훨씬 다문화 다인종의 풍경이었다. 특히나 카오룽 공원은 바로 옆에 이슬람 사원이 크게 있어서 그런지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정말 모두가... 흥에 달아오른 모습이어서 나는 무슨 행사를 준비하나 했는데, 딱히 그런것 아니었다. 그냥 일상이 흥겨워 보였다.


- 공원을 몇바퀴 돌고 항구쪽 산책가로 걸어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점점 기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조용한 곳에서 약간 쉬고싶어서 종루가 있는 쪽으로 갔는데, 거기는 진짜 홍콩 시내에서 제일 시끄러운 곳이었다. 말하자면 시장통? 아니다. 전국 노래자랑이 열리는 시장통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시장통처럼 사람이 붐볐고, 그 와중에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노래에 취한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정말 많았다. 심지어 그 동네 아티스트들의 무대 간격도 아주 좁아서 그냥 몇걸음 만 띄운채 각기 다른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홍콩은 왜 이렇게 흥겨운 도시가 된 걸까?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한국도 음주가무하면 빠지지 않는데, 여기서는 이 거대한 흥의 분위기에 한국인의 흥이 좀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 항구쪽에 앉아서 건너편 홍콩섬의 풍경을 구경했다. 한눈에 봐도 확실히 부흥한 도시임에 틀림없는 풍경이었다. 대기업의 큰 빌딩들이 가지각색으로 응축되어있었고, 그 사이에 난 물 위에서 많은 요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면서 감동을 하진 않았고 더이상의 더위를 견딜 수 없어서 바로 앞에 있는 홍콩 예술관으로 피서갔다.


- 생각보다 홍콩 예술관은 볼만하지 않았다. (주관적인 평) 주로 현대 이전의 중국-홍콩의 전통 미술과 예술작업들이 전시되어있었고 광둥지역이 상권이 발달할 즈음의 당시 도시상과 거래되던 예술 상품들이 눈요기는 되었다. 그러나 나는 현대예술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열심히 읽지는 않고 대부분 슬-쩍 보면서 지나가기만 했다. 아 그 중에 옛날 광둥지역에서 만들어지던 부채가 전시된 쪽이 있었는데, 어떤 귀여운 할머니가 본인의 쿠로미쨩 부채를 펼쳐보이며 '그리고 이것은 내거지' 라고 하는걸 옆에서 보게되었는데 그 순간이 정말 웃음이 나고 맘에 들었다.



- 해가 질때쯤 예술관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려는데 저녁이 되어 푸르스름하게 변한 홍콩의 거리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서양식의 건축물들 사이로 은은하고 노란빛을 내는 거리 조명이 낭만적이었다. 낮에 봤던 그 붉은색의 홍콩 택시들도 채도가 더 낮은 색이 되어 또 다른 분위기였고, 베이지색과 청록색이 귀엽게 칠해져있는 버스들도 붕붕붕 이렇게 다니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때 가장 크게 느낀것이 바로 이것인데, 홍콩은 거리의 색이 다채롭다는 것이다. 도로와 간판들이 형형색색으로 자리잡고 있고 지다나니는 차들도 정말 귀여운 색을 띄고있다. 모서리가 둥근 건물들과 그리고 차분한 거리 조명. 게다가 밤이 되면 그 때 그시절을 연상케하는 네온사인들도 아직은 쉽게 볼 수 있다. (예전만큼 즐비하진 않지만) 저녁의 이런 운치를 느끼면서 다시 들뜬 마음이 되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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