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i Nov 22. 2019

내 체질이 아닌 직업인데?

지방지 수습기자 일지

사회부 심화 교육

나의 하루는 오전 7시 30분 담당 경찰서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흔히 기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 '마와리(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를 도는 일)'을 하고 있는데, 담당 경찰서가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이기 때문에, 적어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눈을 떠야 된다. 


아침잠을 줄여가며 도착한 경찰서에서는 위기가 계속 찾아온다.

형사과장님과 팀장님들 그리고 형사분들과 친해져야 된다는 미션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현실은 나를 쳐다보는 냉랭한 눈빛들만이 존재한다.


사실, 예전 피의사실 공표죄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사건을 물어와야 되는 역할을 경찰기자들이 도맡아야 됐지만(그래 봤자 막내인 수습에게 오는 정보는 알맹이 없는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피의사실 공표죄가 생김으로 형사분들이 사건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대화는

"안녕하세요 형사님. 혹시 어제 별일 없었나요?" "없었어요" 

선배도 그런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굳이 사건에 대한 부담을 주진 않는다. 


사건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고 해도 경찰서 출입은 여전히 어렵다.

형사분들과 친해지기란, 말 한번 걸기란 왜 그리 어려운지 

나는 변호인 접견실을 내 대기실처럼 사용하고 있는 데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호시탐탐 형사님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노리지만 사실 쉽지 않다. 

(형사 6팀까지 있지만, 아직 제대로 말을 해본 형사팀장님은 2분뿐이라는 거 ㅠㅠ)


혹시나 말할 기회가 생기면, 

갖가지 연결고리를 다 사용한다. 본인의 친오빠가 경찰이라는 거(나보다 2달 먼저 경찰 시험에 합격해 경찰학교에서 열심히 교육받는 중이다), 모 경찰서에 정보관님이 삼촌처럼 따르는 친한 관계라는 거(삼촌 없으면 큰일 날 뻔) 등 최대한 나의 주변과 경찰을 연결시켜 난 경찰과 친근한 존재라는 걸 강조한다.


사실 이런 말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날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나오는 게 대부분인데, 매일 나의 업무를 다하지 못한 거 같은 무거운 마음뿐이다.


그렇게  9시에서 9시 30분쯤, 이미 진이 다 빠진 체로 경찰서를 나온다. 

경찰서 앞에서 큰 한숨을 내쉬며, 내 체질이 아닌 직업인데? 내 성격과 너무 달라, 나는 뻔뻔하지 못해 그러니 이건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수습기자의 아침은 춥고 시리고 차갑다. 


*상단 이미지 출처: 구글(google) '차가움' 이미지 검색

작가의 이전글 한 달하고 반, 나 버틸 수 있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