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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un Cho Feb 08. 2021

워킹홀리데이 잘 갔다 왔냐?

2장

언어를 배운 다는 것


 1997년 실시된 제6차 교육과정 2차 일부개정으로 초등학교 3학년 과정부터 우리는 영어를 정규 및 의무 과목으로서 배우게 된다. 총 10여 년의 의무교육인 영어는, 10년이라는 그 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말하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문법 위주의 수험영어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고, 막상 외국인 앞에서 대화는커녕 오히려 겁을 먹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 또한 겁을 먹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쪽이었다. 단어를 왕창 외우고 문단의 주제를 찾고 구별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은 기억이 난다. 단어를 많이 안다는 것은 언어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심지어 런던에 있는 엘리트 학교를 졸업한 마이크는 나와 같이 살던 1년간 실생활에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종종 구사하는 나를 보고 감탄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워홀 초기의 나는 영국의 전형적인 펍 스타일 식당에서 보조 요리사로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 주방장의 말이 너무 빨라 나에게 일을 시킬 때마다 반 남짓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가끔 실수를 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왜 이해를 하지 못했을까 곱씹어보니,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의 발음이 내가 여태 배워왔던 발음과 너무나 달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말을 구성 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나 절의 조합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라는 문장을 우리는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아도 “안녕하세요” 다음에 “잘 지냈어요?”가 흔히 나오기에 톤의 높낮이, 뉘앙스로 우리는 명확하지 않은 문장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영국은 상위계층의 교육을 받지 아니하고선 미국에 비해 단어의 발음이 또박 하지 않고 흘기는 방식의 구사를 많이 한다. 이 방식은 좀 더 음악적이고 발음하기 편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는 장점이 있다. 빠른 말의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에게는 흘기는 방식의 말투는 상당히 익숙했었는데, 흘기는 발음을 구사하는 영어에 한껏 매료되어 있던 나는, 직장동료인 마이클의 유창한 흘김 영어를 1년간 듣고 따라 하였다. 그러고 나니 나도 모르게 현지인처럼 스웩 넘치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더라. 

 브리스톨은 어학연수를 하는 동양인 학생들에게 유명한 도시였는데, 그에 비해 워홀러는 나와 영국 워홀 커뮤니티를 통해서 알게 된 친구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한국말을 할 기회는 많지 않았었다. 가끔 한국말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워홀러들끼리 재미있게 말하는 ‘3,6,9개월마다 찾아오는 향수병’을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울 가자’라는 유일한 한식점과 ‘오리엔탈 마켓’이라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 가서 혹시나 나의 한국말이 닳았을까 봐, 주섬주섬 꺼내곤 했다. 런던과 달리 한국 손님이 많지 않던 그곳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방문할 때마다 나를 크게 반겨 주었다. 식료품점에 플랏 메이트(룸메이트와 같은 개념)와 종종 방문하는데, 한국인이라고 매번 사장님은 나에게 과자를 챙겨 주셨다. 그것을 본 친구는 그저 한국인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반응했었다. 그럴 때마다 ‘정’의 개념을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주었지만 마땅히 정의할만한 영단어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순은 말이나 글이 배열되는 순서를 이르는 말이다. 영어는 한글과 다른 어순을 가졌는데, 예를 들어 ‘인수는 수진을 사랑한다.’를 영어의 방식으로 직역하면 ‘인수는 사랑한다 수진을’이라는 말의 순서가 된다. 영어는 주어 다음 동사가 오는 반면 국어는 주어 다음에 목적어 또는 보어가 온다는 사실이다. 이 점과 나의 워홀 경험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영어는 말이나 글 자체의 명확함에 집중한 언어이고 한글은 전달하는 이에 대해 집중, 다시 말하자면 배려를 하는 언어로 느껴졌다. 두 가지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서 우리가 배우는 언어체계에 따라 행동의 성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끔 한글을 먼저 머릿속에 구상하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말을 내뱉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의미는 같더라도 말이 가지는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한글을 쓸 때 나의 행동이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리스톨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정이 정말 많았는데, 그들 또한 한글과 영어를 오가며 한글의 뉘앙스, 배려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적 성향을, 타지에 살면서 다시금 상기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워홀을 가기 전 반드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가라는 글, 후기들을 블로그, SNS에서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여행을 하기 위해, 언어 향상 등 우리가 워홀러 자격으로 목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 판단하여 워홀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명확한 목표를 정해놓았었고 수행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타지 생활에 싫증이 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해놓은 목표를 수행하는데 혈안이 된 워홀은 아름답지 못했다.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은 빠듯하게 계획한 여행을 가는 것과 같았다. 여행지를 이동하다 보면, 순간 마주친 풍경이 아름다워 멈춰서 자세히 보고 싶은 곳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꽉 찬 일정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정해놓은 목표를 잊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하고 이루어낸 것들은 뭔가 특별했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계획할 수 없는 재밌는 것들로 가득했다. 나의 워홀은 시간이 갈수록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계획성과 즉흥성 사이의 줄을 타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여행 많이 가기, 영어 능통해지기, 영국 밴드 활동 등. 기존에 목표하던 것들이 자연스레 달성되고 있었다.

 우리들의 워홀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리고 각각의 경험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깨달음이 있다. 나의 워홀 또한 계획하지 않았던 소중한 경험들과 깨달음으로 빛이 난다. 그것들은 종종 돌발적으로 다가오고, 사소하기에, 쉽게 지나칠 수 있다. 

 아침에 차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유리병을 분리수거할 때 겉면의 종이를 떼는 습관이 생겼다. 산과 바다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되어 보았다. 친구들과 오랫동안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다.




 여태 워홀을 통해서 얻은 것만 쓴 것 같다. 다음 장부터는 잃은 것,  부정적인 면에 대해 쓰려고 한다. 외교부에서 주관하는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에서는 매년 수기, 사진, 영상들을 공모하고 시상을 하는 '워킹홀리데이 콘텐츠 공모전'을 시행한다. 당선된 작품들은 워킹홀리데이 홍보물로 쓰인다. 당선된 사진들을 보면 누구나 워홀을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진, 이국적인 자연을 만끽하는 워홀러의 사진으로 수두룩하고 수기들을 보면 문화체험, 워홀의 장점을 부각하여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는 SNS에 돌아다니는 효과 보장 100%라는 사기 광고와 같은 다소 편협한 글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긍정적인 워홀을 표현해야지만 워홀 인포센터는 당선 작품을 홍보에 쓸 수 있다. 문제는 비판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검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워홀 권장 홍보에 기여할만한 작품들만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어 수상을 하는 행태에 있다. 워홀이라는 상품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하고 싶은 예비 워홀러들에게 긍정적임만을 강조하는 홍보물을 도배하는 행위가 외교부의 주관에 이루어진 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워킹홀리데이 콘텐츠 공모전'이라고 읽고 '워킹홀리데이 홍보물 공모전'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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